입력 : 2014.07.10 05:39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라는 책으로 유명하다. 게으름을 찬양한다니?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라는 노래만 들어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빨리, 빨리' 문화에 적응된 한국 사람에겐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우리뿐만이 아니다. 러셀의 고향인 영국. 18~19세기 전 세계를 지배하며 '기독교 노동 윤리'를 가장 찬양하던 나라가 아니던가? 그런데 갑자기 웬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란 말인가?

종일 스트레스 받고, 숨 한번 제대로 쉴 수 없이 바쁜 현대인들. OECD 국가 중 가장 바쁘고 피곤하게 사는 대한민국의 행복지수는 꼴찌 수준이다. 스트레스는 물론 건강에도 해롭다. 심장병, 뇌졸중, 우울증의 원인이 되고, 불면증과 기억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미국 듀크대학과 국립 싱가포르대학은 얼마 전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한 성인의 뇌는 비교 그룹보다 더 먼저 노화되며, 더 빨리 치매 증세를 보인다는 결과를 소개했다. 뇌의 노화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쉽고 '저렴한' 방법은 충분한 휴식과 수면이라는 말이다.

국민의 행복지수 높이기, 그리고 뇌의 초기 노령화 막기. 물론 다 중요한 어젠다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게으름'을 '찬양'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는 따로 있다. 4단 수동 변속기를 단 자동차를 상상해보자. 만약 변속기 레버를 '중립'에 놓고 무조건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면? 엔진은 헛돌고 뜨거워진다. 소리는 요란하고 휘발유를 계속 먹는다. 차를 '운전하는' 운전자 역시 바쁘게 무언가 했다라는 느낌이 들 것이다. 하지만 막상 차는 한 치도 움직이지 않는다. 소란스럽고, 모두 바쁘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까지 들지만 막상 중요한 문제 하나 제대로 풀지 못하는 우리. 어쩌면 '대한민국'이라는 자동차 역시 레버를 '중립'에 놓고 죽도록 액셀러레이터만 밟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러셀의 메시지는 바로 이거다. '꼭 해야 할 일을 미루는 게으름을 찬양하자는 말이 절대 아니다. 필요 없는 일을 생략하는, 무조건 액셀러레이터만 밟아대는 비효율적 바쁨을 피해가는 현명한 게으름이 절실하다'는 말이다.

김대식 | KAIST 교수·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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