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7.03 05:32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얼마 전 학회 참석을 위해 유럽에 갔다가 흥미로운 발견을 했다. 공해 없는 파란 하늘과 따뜻한 햇살, 자동차가 없는 도로, 아이들과 여유롭게 산책 나온 부부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나. 비싼 물건을 사지 않아도, 큰 차를 타지 않아도 우리 모두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정말 행복한 오후를 보낼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은 행복하길 원한다. 미국 독립선언문에선 행복의 추구를 삶과 자유와 더불어 이유가 불필요한 인간의 자명한 권리라고까지 주장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행복은 50%는 유전, 10%는 환경, 40%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비슷한 조건에서 행복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보다 덜 아프고 더 오래 산다. 행복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만약 나의 행복이 다른 사람 불행의 원인이 된다면?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내 자유는 타인의 자유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끝난다"고 말했고, 폴란드 출신 정치이론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유란 언제나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의 자유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비슷하게 진정한 행복 역시 타인의 불행을 최소화한다는 조건 아래 최대화할 수 있는 나의 행복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행복한 인생일까?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국민의 임무로 삼았던 공산주의 국가들. 국민 모두 신(神)의 의지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믿었던 중세기 유럽과 오늘날 이슬람 테러 단체들.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 중 하나는 아무리 좋은 의도로 시작한다 하더라도 국가와 사회가 '행복한 삶'을 정의하는 순간 대부분 국민의 삶은 언제나 불행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결국 행복 그 자체를 찾는 것은 타인에게 절대 아웃소싱해서는 안 될 개인의 숙제다. 그렇다면 국가는 '레세-페르(laissez-faire·자유방임주의)'식으로 손 놓고 있어도 된다는 말일까? 물론 아니다. 국가 역시 아웃소싱해서는 안 되는 어려운 사명을 가지고 있다. 바로 모든 국민이 자신이 원하는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가장 공정하고 비용이 적게 드는 행복의 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대식 | KAIST 교수·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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