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6.30 05:49
나지홍 뉴욕 특파원
나지홍 뉴욕 특파원
미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매년 선정하는 자산 10억달러(약 1조원) 이상 억만장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자수성가형과 상속형이다. 올해 순위에 오른 1645명 가운데 66%인 1080명이 '자수성가형'이다. 부모로부터 부(富)를 물려받은 '순수 상속형'은 13%, 물려받은 부를 당대에 더 키운 '혼합 상속형'은 21%로 소수에 불과하다. 760억달러의 자산으로 세계 최고 갑부(甲富)인 빌 게이츠 MS(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를 비롯,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과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겸 CEO(최고경영자) 등 상위권 대부분이 자수성가로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이들은 땀 흘려 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기부 순위에서도 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는 말을 남긴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 이후 자수성가형 갑부들의 기부는 미국 사회의 오랜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자신의 성공을 일구어준 미국 사회에 보답해야 한다는 일종의 '부채(負債) 의식'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빌 게이츠의 아버지인 빌 게이츠 시니어는 "성공은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얻게 된 선물이다. 미국에선 질서정연한 시장이 있으며 공공 부문의 투자 덕분에 민간 부문에 있는 개인들이 엄청난 이득을 거두고 있다"며 아들에게 재산의 사회 환원을 독려했다. 빌 게이츠는 재산의 99%를 사회에 환원하고 자녀에게는 각각 1000만달러씩만 남겨주겠다고 공언하고, 이 약속을 지키고 있다.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의 롤모델(role model)로서 자수성가형 갑부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존속·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16일 미국 대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전 직원에게 대학 학자금을 무상 지원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밝힌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이 좋은 예다. 그는 비싼 학비 때문에 대졸자 비율이 30~40%대에 불과한 미국 사회에서 대학 졸업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본인 스스로도 대학 졸업장을 발판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했기 때문이다.

그는 뉴욕의 빈민가에서 트럭 운전이나 공장 막일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대학에 갈 형편이 못 됐던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 운동에 전념했고, 미식축구 장학생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진학 후엔 운동 대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졸업 후 대기업인 제록스에 입사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면 대기업에 입사하지 못했을 테고, 오늘날 성공도 거두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지금 미국에 던져진 과제는 점점 희미해지는 아메리칸 드림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50대 부호 가운데 자수성가형이 15명으로 30%에 불과하다. 일본과 중국은 50대 부호 가운데 자수성가형이 각각 43명(86%), 49명(98%)에 달한다. 부의 대물림이 고착화된 사회에선 자수성가형 롤모델이 나오기 어렵다. 다음 세대에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희망의 대물림을 안겨주려면 자수성가형 갑부들이 양산(量産)될 수 있는 기업 생태계 조성이 절실하다.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