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6.26 05:32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나벨샤우(Nabelschau)'라는 독일어 단어가 있다. 'Nabel'(배꼽)과 'Schau', 그러니까 '바라본다'를 합쳐 만든 단어다. 세상엔 중요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여전히 자신의 과거와 심적 상처에만 집착하는 비생산적인 태도를 비꼴 때 쓰는 말이다.

단어의 근원은 후기 비잔틴 시대에 있다. '헤시카즘'이라 불리는 그리스정교회 수사들은 일평생을 명상과 침묵으로 보내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후기 비잔틴 시대가 어떤 시기였나? 오스만 터키인들에게 밀려 제국은 몰락하고, 나라는 빈곤과 분열에 시달리고 있지 않았던가? 나라가 망해가고 있는데, 자신의 내면적 세상에만 집착하던 헤시카즘파 신도들을 비난하며 만들어진 단어가 바로 'omphaloskepsis' 그러니까 '배꼽 바라보기'였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역사의 희생자였던 우리의 과거를 분노하고…. 물론 다 중요하다. 하지만 2014년 대한민국의 현실이 이런 '배꼽만 바라보기'를 허락할까? 우선 우리는 지구 최악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북한이라는 비정상적인 나라 하나 감당하지 못하던 판에 초강대국으로 커가는 중국, 거기다 고약한 옛날 버릇을 포기하지 못한 일본까지 이웃으로 두고 있다. 참 운도 없다. 경제도 비슷하다. 선진국 모방만을 통한 성장이 불가능해지는 오늘, 우리 모두 '창조'가 무엇인지 제대로 배워보지도, 실천해 보지도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수많은 환경 문제가 발생할 것이고, 미래 인공지능에 밀려 사라질 수백만개 일자리 역시 우리가 준비해야 할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배꼽만 바라보기'는 발달심리학적으론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아버지가 실업자가 되건 나라가 망하건 다섯 살짜리 어린이에겐 까진 무릎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어른이 된다는 말의 의미는 결코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잊으라는 말이 아니다. 아픔과 상처를 누구보다 더 잘 기억하지만, 같은 상처를 또 한 번 받지 않기 위해서는 감정보단 이성, 분노보단 차분함, 과거보단 미래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제 대한민국도 슬슬 어른이 돼야 할 때다.

김대식 | KAIST 교수·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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