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평양 징용 韓人 아들, 아버지 나라 大使되다

입력 : 2014.06.13 05:34 | 수정 : 2014.06.13 06:52

[마셜제도 공화국 케조 비엔 대사]
어머니는 원주민, 아버지는 실종돼… 길옥윤 선생이 國歌 작곡… 큰 인연
손주까지 30여명 올여름 한국 여행, 마셜 잇는 항공노선 개설이 목표

"정부로부터 '초대(初代) 한국 대사로 내정됐다'는 통보를 받고 가슴이 쿵쿵 뛰었습니다. 내 친아버지의 나라로 간다니. 내 인생의 피할 수 없는 도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 생활 14개월 차인 케조 비엔(70) 주한 마셜제도 공화국 대사의 눈이 검은 테 안경 너머로 반짝였다. 인구 7만의 태평양 작은 섬나라 마셜제도에서 태어나 자란 그의 몸에는 마셜인과 한국인의 피가 함께 흐른다. 일제강점기 고국에서 이역만리 섬으로 끌려온 한국인 청년이 원주민 처녀를 만나 태어난 2세다.

비엔 대사는 섬나라 대사답게 한국 생활 동안 섬을 즐겨 찾았다. “제주도와 거제도 등을 가봤는데 서울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죠. 제가 아들이 다섯, 딸이 넷, 손주가 20명이 넘는데 이번 여름휴가 때 총집합시켜 한국의 섬으로 대가족 나들이를 떠나려고 합니다.”/허영한 기자
비엔 대사는 섬나라 대사답게 한국 생활 동안 섬을 즐겨 찾았다. “제주도와 거제도 등을 가봤는데 서울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죠. 제가 아들이 다섯, 딸이 넷, 손주가 20명이 넘는데 이번 여름휴가 때 총집합시켜 한국의 섬으로 대가족 나들이를 떠나려고 합니다.”/허영한 기자
'강제 징용자의 아들'이라는 이력을 지니고 작년 4월 부임한 그를 최근 대사관·관저가 나란히 있는 서울 마포의 아담한 오피스텔에서 만났다. 미국의 신탁통치를 거쳐 1983년 독립한 이 나라는 미국·일본 등에 이어 지난해 한국에 여섯 번째 상주 공관을 개설했다. 비엔 대사는 국회의원과 공공근로부 장관을 지낸 중진 정치인이다.

"1940년대 원주민과 징용 한국인들은 일본군 노역에 동원돼 동병상련하는 처지였어요. 코코넛 열매 하나도 나눠먹을 정도로 돈독했습니다. 일본인이 떠난 지금은 100명 정도의 한국인이 무역업·자동차판매업 등을 하며 나라 경제의 든든한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가(國歌) 작곡자가 누군지 아세요? 고(故) 길옥윤 선생입니다. 초대 대통령의 부탁을 받고 흔쾌히 곡을 써줬어요. 두 나라 인연은 보통이 아니죠."

비엔 대사는 친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가 태어난 1944년은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때다. 아들이 태어나기 몇 달 전 아버지는 다른 한국 청년들과 함께 종적을 감춘 뒤 소식이 완전히 끊겼다. '유복자(遺腹子) 아닌 유복자'인 셈이다.

마셜제도 지도와 개요 표
"아버지에 대해선 가족과 친척의 얘기를 들은 게 전부입니다. 성이 '김'이라는 것, 비행장 활주로 건설 작업장에서 일했다는 것, 그리고 굉장히 온화한 성격이었다는 정도죠. 참 괜찮은 분이었던 것 같네요. 하하." 아버지 행방에 대해 비엔 대사는 "전쟁에 희생됐을 수도 있고, 극적으로 귀향했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어쩌면 부자(父子)가 지금 같은 땅(한국)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이따금 한다"고 했다.

마셜제도는 최근 국제사회에서 화제가 됐다. 미국 등 핵무기 보유 9개국에 대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한 나라기 때문이다. 마셜제도는 1946~1958년 미국이 비키니섬 등 일부 영토에서 67차례 실시한 핵실험으로 주민이 강제이주 당하고 영토가 오염되는 고통을 겪었다. "핵실험은 엄청난 재앙이라는 걸 직접 경험한 입장에서 국제사회에 이를 알릴 의무가 있습니다. 인류의 행복을 위한 재판이죠."

이 나라는 아름다운 산호초 등 수려한 풍광 덕에 관광객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재임 중 그의 목표는 인천공항과 마셜제도를 잇는 항공노선 개설이다. 현재의 인천~피지 노선을 활용, 중간에 마셜제도 수도인 마주로를 경유하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두 나라를 잇는 하늘길이 열리면 한국인들이 더 편하게 올 수 있고, 우리 바다에서 나는 싱싱한 해산물도 한국에 더 많이 소개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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