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6.04 05:37

軍, 주변국과 여론 눈치 보느라 미사일 방어 등 韓美 군사협력 얘기도 제대로 못 꺼내… 그런 한국을 누가 존중하겠나
객관적·과학적 근거를 安保 논의의 제1 기준 삼아야

박두식 논설위원
박두식 논설위원
한국 국방부와 군(軍)은 요즘 한·미(韓·美) 군사 협력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잔뜩 움츠러든다.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그러나 미국은 최근 작심한 듯 한·미 간 미사일 방어(MD) 협력 문제를 들고나왔다. 미국 정부와 군·의회·언론이 총동원됐다. 미국 하원은 얼마 전 한·미·일 미사일 방어 협력 강화 방안을 찾을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법안을 통과시켰다. 곧이어 "미국 MD의 핵심인 사드(THAAD)를 한국에 배치하기 위한 부지 조사를 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미국 고위 관계자들은 이 내용을 부인하기는커녕 '사드의 한국 배치를 검토 중'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한국 국방부는 이에 대해 "우리와 어떤 협의도 없었으며 미국 내에서만 나온 이야기로 보인다"고 했다. 미국이 한국과 아무런 사전 협의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대놓고 일방적 주장을 펴고 있다는 얘기다. 이 설명대로라면 한·미 동맹은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당사자이자 핵심 동맹국인 한국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미국이 한반도 방어 체계의 큰 틀을 바꾸겠다고 나선 것이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한 미군의 주요 전력(戰力) 변화와 관련된 사항은 한·미 간 사전 협의를 거치도록 돼 있다. 그런데도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 문제를 밀어붙이고 있다면 정색을 하고 문제를 삼아야 한다. 그것이 정상적인 동맹의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 국방부와 군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사드 문제는 미국이 주도하는 MD에 한국이 참여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돼 있다. 한국은 김대중 정부 시절 미국 MD 불참을 결정했고 그 후 이 입장을 그대로 지켜왔다. 한국이 미국 MD 불참을 결정한 이유는 크게 보면 두 가지다. 첫째, 엄청난 비용에 비해 실익(實益)이 적다는 것이다. 미국은 MD 개발에 총 100조원을 투입했고, 일찌감치 MD에 들어간 일본도 10조원 이상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언제 무슨 일을 벌일지 알 수 없는 북의 위협을 막는 데 꼭 필요한 조치라면 비용은 부차적인 사안이다. 한국이 추진 중인 한국형 미사일 방어 체계(KAMD)에도 15조원 넘는 돈이 들어간다. 사드 1개 포대 배치 비용은 2조원 안팎이다. 지금은 미군이 자체 부담으로 주한 미군에 배치하겠다고 나선 상태다.

일각에선 주한 미군에 사드를 배치하게 되면 결국엔 한국이 미국 MD로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무조건 그렇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한국은 그 정도의 독자적 판단을 내릴 능력이 있다. 결국엔 미국의 '압박'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굳이 우리가 먼저 스스로를 비하할 이유가 없다.

한국이 MD에 불참하는 둘째 이유는 중국의 반대다. 중국은 미국 MD를 대(對)중국 포위망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에 사드가 배치되는 것을 한국의 미국 MD 참여로 간주할 태세다. 그러나 한국이 미국 MD에 끝내 들어가지 않았다고 해서 중국이 북의 미사일 위협을 대신 막아주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은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유엔 안보리에서 북의 핵·미사일 제재 결의를 채택하는 것에도 반대했던 나라다. 중국은 북한 문제만 나오면 "중국의 대북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을 거듭하고 있다. 그런 중국 눈치를 보느라 대한민국의 안보가 걸린 사안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드 논란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한국형 미사일 방어 체계만으로 핵·생화학 탄두를 장착한 북의 미사일 위협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KAMD의 주축이 될 패트리엇(PAC-3) 미사일의 요격 고도는 40㎞ 이하다. 사드는 40㎞ 이상 150㎞ 이내의 높이에서 날아오는 적(敵)의 미사일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KAMD만으로 북의 미사일 위협에 충분히 대처할 수 없다면 사드 아니라 그 이상의 것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의 반대 때문에 우리가 사드 배치에 반대할 경우 중국이 한국을 존중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얕잡아 볼 것이다.

우리는 지금껏 강국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건을 저주(詛呪)인 양 여기고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느 길을 가느냐를 미국·중국·일본·러시아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우쭐해서도 안 되지만 요즘처럼 나라의 안보와 직결된 사안에서까지 주변 강국의 반응을 최우선 고려 사항처럼 떠받드는 태도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군은 사드 논란뿐 아니라 한·미·일 정보 공유 문제에서도 여론과 주변국 눈치를 살피느라 바쁘다. 이 문제에서 제1 기준은 우리 안보에 도움이 되느냐에 관한 객관적·과학적 근거다. 안보와 관련된 결정은 이런 토대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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