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5.29 06:24
김대식 KAIST 교수 사진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먹고살 걱정 없이 부모님 보호 아래 자라던 어린 시절. 첫사랑과의 달콤한 추억. 새로운 직장에 출근하며 희망찬 미래를 꿈꾸던 첫날. 우리는 대부분 지난날 아름다운 추억들을 기억하며 한탄하곤 한다. 예전엔 모든 게 더 좋았다고. 삶도 덜 빡빡하고, 사람들 간 인정도 더 많았고, 더 행복했었다고. 하지만 과거가 그렇게 좋기만 했을까?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가 정말 우리가 경험한 과거와 일치할까?

얼마 전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연구팀은 뇌가 과거 기억을 계속 편집한다는 결과를 소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첫 번째 실험에서 연구팀은 피험자들에게 컴퓨터 화면 속 여러 위치에 있는 168가지 물건을 기억하게 했다. 이때 새로운 물건이 나타날 때마다 배경화면 역시 '사막' '해변가' '정글' 같은 새로운 그림들로 변한다. 두 번째 실험에선 전에 보지 못했던 배경화면에 물건을 다시 원래 제 위치에 올려놓도록 한다. 워낙 다양한 물건을 기억해야 하기에 대부분 피험자는 이때 물건을 원래 위치가 아닌 새로운 장소에 올려놓는 실수를 한다. 마지막 실험에선 다시 처음 보았던 배경화면에 물건을 3가지 장소, 즉 ①원래 위치 ②두 번째 실험 당시 피험자가 잘못 골랐던 위치 ③랜덤으로 선택된 새로운 위치를 보여준다. 그리고 피험자에게 물어본다. 처음 경험했던 물건의 원래 위치는 어디였냐고? 결과는 확실했다. 피험자들은 항상 자신이 잘못 선택했던 두 번째 위치를 물건의 원위치로 착각하고 있었다.

기억은 비디오테이프도, 컴퓨터 하드디스크도 아니다. 한번 저장된 정보를 필요할 때 다시 꺼내오는 게 아니다.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는 게 아니다. 기억은 항상 업데이트된다. 지금 이 순간의 경험·느낌·생각이 우리의 과거를 계속 편집하고 있으며, 현재의 변화가 클수록 우리의 과거 역시 더 많이 편집된다는 말이다.

지구에서 가장 가난하던 나라에서 오늘까지 오게 된 대한민국. 그 어느 나라보다 더 많은 변화와 사건이 있었기에 우리는 어쩌면 그 누구보다 더 심한 집단 기억 편집과 왜곡에 시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대식 | KAIST 교수·뇌과학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