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5.28 10:02

서울 올림픽 유치(2)

☜ 1편에서 계속

다음은 1987년 정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을 이임하면서 가졌던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직접 밝힌 88 서울 올림픽 유치 일화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내가 전경련 회장을 하며 이렇다 하게 내놓고 얘기할 것을 굳이 찾는다면 경제 외적인 일로 88올림픽을 체육계의 협력을 얻어서 전경련이 주도해서 우리 경제인들이 유치했다고 얘기해도 크게 잘못된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88올림픽이 여러분도 잘 아시지만 일본에 이겨서 한국에 가져온다는 것을 아무도 생각 못했을 겁니다. 그런 얘기를 왜 할 수 있느냐 하면 대한체육회가 김집 부회장을 동경에 보내서 일본측에 제의하기를 88올림픽을 우리하고 일본이 경쟁하고 있는데 우리가 취소하고 일본이 하도록 해줄 테니까 86아시안게임을 우리가 하도록 해달라고 얘기했답니다. 체육계 비사지만 일본이 퇴짜를 놨습니다. 88올림픽은 자기네가 된 걸로 다 자축 건배까지 했는데 우리가 왜 구질구질하게 86년 아시안게임 한국 개최 지원이라는 짐을 지느냐면서.
1984년 10월 13일 정주영 당시 전경련 회장 등 4개 경제단체장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조선일보DB
1984년 10월 13일 정주영 당시 전경련 회장 등 4개 경제단체장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조선일보DB
그러니까 그것은 대한체육회가 포기한 거나 같죠. 그때는 문교부에 체육국인가가 하나 있을 때에요 올림픽 개최국이 1981년 9월 30일에 결정되는 일인데 그렇게 생각한 것이 그 해 4월 달이었어요. 물론 내가 전경련 회장으로 있을 때입니다. 문교부 장관이 대통령 결재까지 맡았다고 하며 민간 7인 위원회라는 것을 누런 종이에 시커멓게 프린트한 것을 들고 나한테 왔어요. 국장이 정부의 체면이 서도록 해주면 좋겠다고. 그런데 거참, 88올림픽을 어떻게 유치하는지, IOC위원이 누구인지 알기나 합니까? 그래서 한번 회의를 갖자고 했지요. 88올림픽은 대한민국 국가가 유치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시가 유치하는 것이므로 서울시장, 그리고 문교부장관, 대한체육회, KOC위원들 다 나오라고 해서 롯데 호텔에서 회의를 했습니다. 서울시장은 안 나오고 국장이 나왔고, 조상호 KOC회장, 최만립 총무가 나왔습니다.

유치하려면 서울시가 올림픽을 유치할만한 여러 가지 환경과 제반 여건이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30분짜리 영화를 만들어서 전시장에 가서 선전을 해야 됩니다. 경기장 모델을 만들고 그것을 가지고 IOC위원회가 열리는 나라에 가서 활동을 해야 합니다. IOC위원을 모셔다가 다 보여주고 해야 하는데 그때 이런 영화를 만드는데 1억 7천 몇 백만 원 정도가 들고, 그것을 서울시가 줘서 즉각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서울시가 예산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국회가 예산 주는 것이 아니라 국무총리에게 추가 예산을 받으면 되는 것 아니냐 했더니 그렇게는 안 하겠다고 해요. 가봐야 비용만 나고 돈만 없어진다 그런 뜻인지 모르겠어요. 그러면 예산은 언제 세우는 거냐니까 명년에 세운다는 겁니다. 명년에 예산을 세워서 내가 입체(나중에 받기로 하고 돈을 대신 지급함)를 하면 주겠느냐고 하니까 그렇게 할 수 있다 못하겠다 말을 않드라고요. 그러나 내가 입체해서 만들었고, 그 후에 예산 세워 내돈 돌려줄 줄 알았지만, 기부체납 도장 찍으라고 해서 내돈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거기에 가서 활동을 하는데 민간측인 전경련에는 유럽 각국 경제협력위원장이 있어요. 한영 경제협력위원장은 그때 내가 겸임을 했고, 한불은 조중훈씨 등 각국이 다 있습니다. 그것을 동원하고 그 다음엔 국제적 감각이 있고 안면이 있는 유창순씨께 부탁해서 동원하고 그 다음엔 건설회사들, 가령 동아가 스웨덴에서 무엇을 했다 하면 스웨덴을 책임지고 건설업자를 통해서 그 나라 IOC위원을 만나고, 전부 각 위원들이 자기네가 친한 그 나라 업자를 통해서, 그리고 경제협력위원장을 통해서 그 나라 IOC위원을 만나는 것입니다. 올림픽을 한 나라는 IOC위원이 2명이고, 안 한 나라는 1명입니다. 우리나라는 1명이고 일본은 2명이죠. IOC위원이 82명인데 몰라서 그렇지 얼굴만 알면 82명 쫓아다니고 표만 모으면 또 되는 거죠.

그래서 난 그때 거기 가서 영국, 벨기에 쫓아다녔습니다. 그때 남덕우총리가 스칸디나비아 쪽에 회의가 있어 그 길에 영국으로 왔는데 스칸디나비아국 IOC위원들이 안 만나주더랍니다. 한국은 머리 속에 없다 이거죠. 난 영국,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몇 나라 돌고, 전상진 대사는 남미쪽, 또 김운용 IOC위원도 몇 나라 돌고 했습니다. 그러나 IOC위원 쫓아다니고 점심 사주고 저녁 사주고 해야 하는데 자동차 없이 걸어 다닐 수는 없죠. 정부에서는 1전도 안 주니까요. 어쨌든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열흘동안, 참, 아마 내 생애에 그렇게 계획적으로, 그리고 열심히 뛰어 다녀보긴 처음이었습니다.
1988년 6월 29일 올림픽조직위원회는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주한 외교사절 부부를 올림픽 공원으로 초청해 각종 시설물과 공원 내부를 관람시켰다./조선일보DB
1988년 6월 29일 올림픽조직위원회는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주한 외교사절 부부를 올림픽 공원으로 초청해 각종 시설물과 공원 내부를 관람시켰다./조선일보DB
거기와 있는 모든 사람들이 특파원들까지 동원하고, 각국 대사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오고 해서 현지에 한 6~70명 왔는데 그렇게 한 덩어리가 되어서 한 표라도 주워 모으는데 합심해서 노력한 것은 일생에 처음이에요. 분위기가 그렇게 되었어요. 자유진영 표중 한 20표라도 얻으면 나라 체면유지가 된다고 했지요. 새벽부터 밤까지 뛰고 10시에 모여서 표를 점검하는 거에요. 매일 그렇게 했는데 첫번째는 체면유지고 그 다음엔 어떻게 하면 가능성이 있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에요. 일본 친구들이 전시장 만들고, 한국도 만들고, 동계올림픽 신청국도 세군데 만들었고, 참 혼신의 정력을 기울이는 거죠.”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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