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5.26 08:39 | 수정 : 2014.05.26 10:18

서울 올림픽 유치(1)

88 올림픽 이야기가 나왔던 1981년 초, 이것을 한국이 유치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믿었던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아니 온 천하에서 정 주영 회장 한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거기에는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한국은 올림픽 유치 얘기가 나오기 10여 년 전 1974년 아시안 게임을 유치했었다. 아시안 게임은 개최국의 능력, 그리고 참가국 수나 동원되는 자원의 규모면에서 올림픽에 비하면 지역 행사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한국이 개최 능력이 안 된다는 이유로 포기하고 반납한 적이 있다. 이것은 국제 스포츠계에 약속을 부도 낸 일종의 ‘전과’ 기록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또 하나의 복병이 있었다. 그것은 북한이었다. 한국이 올림픽 유치를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지지표라도 많이 나오면 상대적으로 남한에 비하여 북한의 국제적 위상이 떨어질 것이라는데 대하여 그들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이 시기는 북한이 남한의 신군부 권력을 강력히 비난하며 세계 비동맹국들을 중심으로 북한의 위상 강화를 위해 적극적인 외교전을 펼치고 있었던 때였다. 그들은 한국에서 올림픽이 개최될 경우 대대적인 테러를 감행하겠다는 말을 암암리에 국제 사회에 퍼뜨리고 있었다. 아랍 무장 게릴라 검은 구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을 습격하여 집단 사살한 1972년 뮌헨 올림픽의 악몽 때문에 올림픽에서 테러 가능성은 개최국 선정에서 배제해야하는 절대적 금기 사항이었다.
1972년 9월 5일 새벽4시, 무장한 '검은 9월단'소속의 테러범들이 뮌헨올림픽 선수촌에 난입, 이스라엘선수중 2명을 살해하고 9명을 인질로 삼았으나 서독경찰과 테러범들간의 총격전으로 인질들은 모두 숨지고 테러범들도 사살 또는 생포되어 세계를 경악케 했다./조선일보DB
1972년 9월 5일 새벽4시, 무장한 '검은 9월단'소속의 테러범들이 뮌헨올림픽 선수촌에 난입, 이스라엘선수중 2명을 살해하고 9명을 인질로 삼았으나 서독경찰과 테러범들간의 총격전으로 인질들은 모두 숨지고 테러범들도 사살 또는 생포되어 세계를 경악케 했다./조선일보DB
서울은 이러한 위협을 가하는 북한과는 불과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었다. 남북을 가르는 비무장지대 양측에는 엄청난 살상무기로 중무장한 양진영이 살벌한 긴장 속에 대치하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올림픽 개최지로는 생각하기 힘든 선택임이 분명했다. 이에 더하여 한국에게는 실력 면에서 비교가 안 되는 라이벌 일본이 있었다. 나고야를 개최지로 내세우고 나선 일본은 기반시설, 넘치는 자금력, 과거 도쿄 올림픽 개최 경험, 국제스포츠계에 막강한 인맥과 로비력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면에서 한국은 라이벌이 안 된다고 단정지었다. 일본은 자기들의 88올림픽 유치를 기정사실화하고 대대적인 유치 성공 기념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부정적인 시각은 한국 국내에도 팽배해 있었다. 유치에 성공할리도 만무하지만 유치한다 해도 턱없이 부족한 재원과 엄청난 시설건설에 따른 재정 적자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높았다. 올림픽 개최 후 막대한 적자 부담을 겪은 이전 개최국들의 낭패 사례들을 예로 들고 나왔다. 정부도 소극적 이었다. 그러나 국가 체면상 개최국을 결정하는 올림픽위원회 참가는 해야 했다. 승산이 없는 결과가 뻔했지만 누군가는 이 달갑지 않은 일에 앞장서야했다.

이 역할을 떠밀려서 맡게된 것이 정주영 회장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는 성사되게 하기 위하여 없는 길도 찾아 만들었다. 특유의 발상력과 기치를 발휘했다. 산재한 걸림돌들을 디딤돌로 만들며 유치 작전에 앞장섰다. 그는 이런 논리를 폈다.
올림픽대회가 열리는 88년의 서울모습. 서울시가 3천5백만원을 들여 제작, 1월23일 시청을 8천분의 1로 축소해 만든 것./조선일보DB
올림픽대회가 열리는 88년의 서울모습. 서울시가 3천5백만원을 들여 제작, 1월23일 시청을 8천분의 1로 축소해 만든 것./조선일보DB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무력 개입에 항의하여 미국과 그를 지지하는 국가들이 불참하여 반쪽 올림픽이 되었다. 그리고 4년 후 개최되는 미국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을 이번에는 소련이 보복 차원에서 그 지지국들과 함께 불참하기로 해서 또 반쪽 올림픽이 되게 됐다. 그런데 올림픽 정신이 뭐냐? 인종, 종교, 정치적 이념을 초월한 세계 평화와 친선, 화합이다. 한반도는 아직도 동서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는 분단지역이다. 올림픽 정신이 두 번이나 손상되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차기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은 올림픽 정신을 회복하고 실현할 수 있는 큰 역사적인 가치와 의미가 있는 일이다.
북한이 테러 위협을 하고 있지만 막상 그렇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온 세계로부터 지탄을 받게될 터인데 그것이 그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손해를 끼칠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은 국제사회와 협조하여 그들도 서울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88올림픽 유치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사람은 온 천하에 정주영 회장 뿐이었다
올림픽 개최 후 재정적자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 중의 하나로 외국 선수들의 숙소를 처음부터 일반 시민용 아파트로 지어 사용한 다음 후에 시민을 대상으로 일반분양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88 서울 올림픽이 확정된 직후 한 세계적인 시사 주간지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기사를 실었다.
“5000년 역사를 가졌다는 한국 - ‘고요한 아침의 나라’ 그리고 ‘은자의 왕국’이라는 정체와 퇴영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와 함께 일본의 식민지 지배, 참혹했던 한국 전쟁, 빈곤, 끊임없는 사회 소요로 점철되었던 한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이라는 세계적인 축제로 범세계 사람들의 긍정적 관심의 대상이 되게 되었다.”
맞다. 조금 자존심을 가렵게 하긴 하지만 사실이었다. 세계 사람들이 한강의 기적이라 일컫는 한국의 경제성장과 산업고도화의 명성에 한 차원을 더하여 88 서울 올림픽은 한국 사람들의 역량을 세계에 새롭게 부각시킨 우리 역사의 중요한 이정표의 하나가 되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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