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5.29 11:31
강화도령으로 불린 철종은 비명에 간 사도세자와 후궁과의 사이에 태어난 왕자, 즉 정조대왕의 서출 아우였던 은언군의 손자입니다. 그러니 왕손으로서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는 것이 당연했었지만 전혀 그러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가 세도정치가 이루어지던 상황인지라 왕의 가까운 친척으로 똑똑한 사람은 누구나 역모로 몰려 귀양을 가거나 사약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철종의 아버지인 전계대원군도 왕족의 유배지였던 강화도에 유배되었기에 가족 모두 강화도에서 살아야만 했고, 큰형인 회평군은 사사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철종은 19세에 용상에 올랐습니다.
철종의 어진. 6.25당시 훼손된 부분이 1987년 복원됐다(오른쪽)./문화재청
철종의 어진. 6.25당시 훼손된 부분이 1987년 복원됐다(오른쪽)./문화재청
왕이 되기 전까지는 매우 힘들게 살았던 강화도령

철종은 19세가 되도록 군의 칭호도 받지 못했고 장가도 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천애고아로 살았습니다. 나무를 해서 팔거나 남의 집 일을 도와 겨우 먹고사는 처지였던 겁니다. 그래서 별명이 ‘강화도령’이었고, 그냥 ‘원범’이라고 불리던 떠꺼머리 총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헌종 임금이 갑자기 죽자 안동 김씨 측에서 내세우는 바람에 졸지에 왕이 되었던 것이죠. 권력을 자기네 마음대로 주무르고자 무식한 왕족을 왕으로 옹립한 것입니다. 그러나 철종은 불과 33세에 요절하고 말았는데, 어떻게 해서 한창이었던 나이에 그 좋은 자리를 마감했어야만 했을까요? 건강하던 분이 최고의 주거 환경에서 최고의 음식과 온갖 귀한 보약을 드시고도 겨우 14년 만에 세상을 떠난 이유를 분석해보겠습니다.

철종이 요절한 까닭은?

첫째, 강화도에서 편하게 멋대로 살아가다가 온갖 법도가 엄격하고 까다로운 궁중에서 지내다보니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왕은 국정의 전반에 걸쳐 중요 사항에 최종 결제를 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었기 때문이죠. 입법, 사법, 행정을 모두 관장해야 했기에 일이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왕의 할 일을 ‘만기(萬機)’라고 했는데, 만 가지나 된다고 풀이할 수 있죠. 실제로 왕은 빡빡한 스케줄에 따라 매우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왕의 하루 일과는 해뜨기 전인 새벽 5시 전후에 일어나 의관을 정제하고 왕대비전이나 대비전에 문안 인사들 드리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아침에는 ‘조강(朝講)’이라고 하여 신하들과 공부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유학 경전이나 중국 또는 우리나라의 역사책 등을 교재로 하여 그 해석에 대하여 신하들과 열띤 토론을 벌인 것으로 ‘경연(經筵)’이라고 하였죠. 학문 토론장이었고, 때로는 정치 토론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침 경연이 끝나면 아침식사를 하고, 이어서 ‘조참(朝參: 대조회)’과 ‘상참(常參: 약식 조회)’ 그리고 ‘윤대(輪對)’가 있었습니다. 조참과 상참은 정기 조회로서 대신들의 알현을 받았고, 윤대는 각 부서별로 돌아가며 왕에게 업무보고를 하는 것이죠.

점심 식사 뒤에는 낮 공부시간, ‘주강(晝講)’이 있었죠. 그리고 지방관으로 내려가는 관리나 지방에서 중앙으로 복귀하는 관리들을 만나 여러 가지 당부를 전하고 지방의 민심을 들었습니다. 오후 서너시 경이 되면 대궐을 지키는 야간 호위대장과 숙직 관료들을 만나 명단을 점검하고 암구호를 정해줘야 했습니다.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다시 ‘석강(夕講)’에 들어가 공부하고, 저녁 식사를 하고는 낮 동안에 미처 처리하지 못한 밀린 업무를 봐야 했죠. 그러다가 11시 경에 왕대비전이나 대비전에 저녁 문안을 드리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마감했습니다. 그야말로 숨가쁘게 하루를 보낸 겁니다. 그러니 잠자리에 들기 전 두세 시간 정도가 자신만의 한가로운 시간이었죠. 그렇지만 제례를 비롯한 비공식 행사에도 참여해야 했고, 상소문이나 탄원서를 읽고 검토해야 했으니 한가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물론 경연을 빼먹는 경우도 많았고 조회를 자주 하지 않기도 했고, 승지에게 많은 일을 시키기도 했었죠.

강화도에서 자유롭게 살던 철종이 만기를 처리하려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옛날에 돈이 많은 상민이 양반이 되고 싶어 많은 돈을 주고 양반을 샀는데, 막상 양반 노릇을 해 보니 너무 힘들어 도저히 못하겠기에 그만둬버린 경우도 있다지 않습니까? 철종이 받은 스트레스는 그보다 훨씬 더했을 것이고, 게다가 임금 자리는 그만둘 수도 없었으니 더 힘들었다고 봐야겠죠.

둘째,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할 수 없었던 데서 오는 스트레스입니다. 철종은 졸지에 왕이 되어 대왕대비의 수렴청정을 3년 거쳐 친정을 했지만 제대로 글 공부를 한 적이 없으니 정사를 보기 어려웠죠. 게다가 정치의 실권이 안동김씨 측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이 훤’처럼 똑똑한 왕이 합리적인 정책을 제시하고 관리들의 부패를 조목조목 지적하는 경우에도 신하들은 “아니옵니다, 통축하시옵소서”하며 단체로 반대하고 나섰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철종은 민생을 돌보는데 남다른 애정과 성의를 나타냈습니다. 가뭄이나 수재를 당한 백성들에게 구휼미를 내려 보내고 자금을 대출해 주는가 하면 탐관오리를 징벌하라고 엄명을 내리기도 하였으며 민란 수습에 진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안동김씨들의 세도정치 앞에서 기를 펴지 못하여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던 겁니다.

셋째, 마음 붙일 곳 없는 궁중에서 외로움에 시달렸습니다. 강화도에 살 때 사랑하던 여인이 있었는데, 왕이 되고 나서도 그 여인 생각이 간절했다고 합니다. 생소한 궁중생활에 적응하기 힘든 만큼 자유롭게 지냈던 강화도 시절에 대한 향수에다 연인에 대한 상사병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슬쩍 대비마마께 연인을 궁으로 데려오면 안 되겠느냐고 해 보았지만 궁중의 법도가 상민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싸늘한 답변이었습니다. 이 스토리를 작고한 신상옥 감독이 60년대에 신영균, 최은희 주연의 영화로 만들었는데, 제목이 ‘철종과 복녀’입니다. 철종에게 왕비도 생겼지만, 왕비는 법도에 충실했던 냉철한 여인이었고 안동 김씨로서 왕의 편이 될 수 없었죠. 오죽했으면 철종은 궁궐에서 강화도 쪽의 하늘을 쳐다보며 ‘북쪽에서 온 말은 북쪽 바람을 향해 서고, 남쪽에서 온 새는 남쪽가지에 둥지를 튼다’는 말을 입속에서 속삭이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곤 했다고 합니다.
영화 <철종과 복녀> 포스터
영화 <철종과 복녀> 포스터
넷째, 결국 철종은 밤낮으로 술과 후궁들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안동 김씨 일족에서도 철종이 주색에 탐닉하고 자기네들이 정치를 오로지하기를 바랐던 겁니다. 결국 과도한 음주와 성생활로 인해 폐결핵에 걸렸고, 그래도 절제하지 않고 주색을 계속했기에 죽음을 재촉한 것이죠. 잦은 성생활로 인해 정액을 도가 넘치게 내보내면 ‘방로상(房勞傷)’이 오게 됩니다.

방로상은 신장의 정기가 부족해져 성교하지 않고도 정액을 저절로 흘리게 되고 밤에 잘 때 식은 땀을 흘리며 목이 마르고 허리가 아픈 등의 증상이 나타납니다. 심해지면 머리가 어지럽고 정신이 맑지 않으며 귀에서 소리가 나고 가슴이 뛰며 뼛속까지 열이 달아오르고 몸이 마르는 음허화동(陰虛火動) 상태가 되는데, 폐결핵도 여기에 속합니다. 또 일을 하면 견디기 힘들며 성생활을 하면 땀을 크게 흘리고 다리가 약해서 오래 걷기 힘든 증상이 나타나는데, 철종은 말년에 그런 상태였습니다. 내분비 기능이 실조되고 면역기능이 떨어져 각종 병증이 출현하고 조로(早老) 현상이 가속화되는 상태이죠. 그러니 수명에도 영향을 줄 정도이죠. 요즘은 성생활이 과도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오히려 부족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한데, 역시 성생활도 적당해야 좋습니다.

철종의 후사는?

철종은 왕비를 비롯하여 7명의 후궁들로부터 왕자 5명과 옹주 한 명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왕자들의 명이 유난히 짧아서 모두 어린 나이에 죽고 말았고, 겨우 딸 하나만 살아남았을 뿐입니다. 그나마 남은 딸도 어려서부터 몹시 허약했는데, 그 딸이 바로 ‘영혜옹주’입니다. 영혜옹주는 14살에 갑신정변의 주역이 되는 ‘금릉위 박영효’에게 시집을 갔지만 시름시름 않다가 불과 석 달 만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철종 시절에 궁중에는 왕이 허약해서 후사를 얻지 못한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주색이 과도하면 튼튼한 아기를 얻을 수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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