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5.16 09:55 | 수정 : 2014.05.23 11:35

한국 조선업에 신천지를 개척하다(下)
정회장 "된다고 생각하면 안 보이던 길도 보이고
안 된다고 생각하면 있는 길도 안보이게 된다"

☜ 상편에서 계속

3개월 인도시기를 앞당긴 계약은 정 회장의 “이봐, 해봤어?” 한 마디로 끝났지만 조선소 현장 임원들에게는 앞이 캄캄했다. 조선사업은 건설이나 토목 공사와 마찬가지로 공기의 단축이 채산성의 중요한 요소를 이루고 있다. 특히 조선사업에서는 계약한 인도 기일이 지연될 경우 지연된 일수에 따라 지연 배상금을 원래의 계약상의 배 값에서 깎아 나가게 되어 있는 것이 통례다. 이러한 조건을 노린 약삭 빠른 선주들은 의도적으로 그들이 실제 필요한 것 보다 인도기일을 빠듯하게 요구하기 일쑤였다. 이렇게 해서 무리하게 앞당긴 인도기일에 배가 인도되면 크게 불리할 것이 없는 반면, 만약 조선소가 인도 기일을 못 맞추면 지연 배상금을 제하고 그만큼 배를 계약가격보다 싸게 인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조선소 현장 책임자들에게는 모든 사정으로 보아 3개월이나 인도기한을 단축한다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였다. 또한 무리한 공기를 맞추기 위한 건조 과정에서 현장 맨 정 회장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작업 현장에서 소매를 걷어부치고 그들을 무섭게 몰아 부칠 것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해짐을 느꼈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이른 새벽 아들들과 함께 삼청동 자택에서 계동 사옥으로 도보로 출근하고 있다. 왼쪽에 몽구씨와 오른쪽에 몽헌씨가 호위하고 있다. 1988년 1월 6일/조선일보DB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이른 새벽 아들들과 함께 삼청동 자택에서 계동 사옥으로 도보로 출근하고 있다. 왼쪽에 몽구씨와 오른쪽에 몽헌씨가 호위하고 있다. 1988년 1월 6일/조선일보DB
정 회장은 후일 이런 상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소회를 밝혔다.
“물론 해 내기가 벅찬 일이다. 그러나 어떤 일이 힘들다는 것은 그것이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고 그것을 해 내면 그 대가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 큰 용량의 크레인을 수입하는 문제만 해도 그렇다. 제작회사가 정해놓은 관례대로 발주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제때 조선소에 도착시키기가 어렵다고 하면 안 된다. 어차피 우리가 중요한 고객인데 주문을 해놓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직접 사람을 보내어 특별히 부탁하여 제작해서 가지고 온다든가 그래도 안 되면 웃돈을 줘서라도 앞당겨 선적하게하면 될 것이다. 왜 일상적인 관행이나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인원이나 장비가 부족하면 더 늘리면 되고 그래도 시간이 부족하면 작업시간을 늘리면 된다. 우리가 기술이나 경험이 뒤져있는데 선진국 근로자들이 어떤 일을 일 년 걸려 완성하는 일이라고 우리도 일 년 걸리면 어느 세월에 그들을 따라 잡을 수 있겠는가? 열 달, 여덟 달, 아니 할 수 있으면 그 보다도 더 빨리 완성할 수 있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서 앞당긴 납기를 맞추면 이익도 많이 나고, 그 과정에 우리의 역량도 늘어난다. 또 이런 소문이 세계 선주들 사이에 퍼지면 우리 조선소가 좋은 배를 가장 싸고 빠르게 만드는 회사로 알려져 다음 수주를 하는데도 크게 도움이 된다. 만사는 된다고 생각하면 안 보이던 길도 보이고 안 된다고 생각하면 있는 길도 안보이게 되는 것이다.”

정 회장의 이런 발상력과 도전정신은 앞서 조선소 건설 때 조선소 도크 건설 완공과 동시에 26 만톤급 대형 선박을 최단 시일에 가장 저렴한 가격에 완성·진수시키는 초유의 기록을 달성하게 만들었다.

“정 회장이 조선소 사업을 성공시키면 나는 내 열 손가락에 장을 지지고 하늘로 오르겠소.” 정 회장이 대형 조선소 사업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국내외로 동분서주하고 있을 때 국제 감각이 뛰어났던 해외 유학파 경제 전문가 출신인 한국 정부의 한 경제 각료가 한 말이다. 합리적 잣대로 볼 때 당시 열악하기 그지없던 한국의 기술, 경험, 자본, 인력수준 형편과 선진국들이 장악하고 있는 국제 조선업계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그의 그런 생각에 무리가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 세계 바다에 떠다니는 대형 선박 3척 중 한척은 한국에서 건조한 것이라고 한다. 세계 10대 조선소 중에 상위 7위까지가 한국 조선소라고 한다. 근래 일부 저가 대형 조선 일감이 싼 임금 때문에 중국으로 가고 있다고는 하나 그것도 엔진이나 주요 장비와 부품을 현대 중공업이나 삼성, 대우 등 여타 한국업체 것을 탑재하도록 선주가 지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동안 선박 엔진 등 주요 선박 장비들에 대한 기술 개발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해 놓은 결과다. 특수 기술을 요하는 고부가가치 선박이나 해양 플란트 분야에 우리 조선 업계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한국 조선 공업의 성공은 포철 등 한국 철강 산업발달의 젖줄 역할을 해 주었다. 정 회장의 “이봐, 해봤어?” 정신으로 성취한 한국 조선 공업은 한국 경제가 선진 공업국 대열에 진입하는 데 막중한 역할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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