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4.28 09:17 | 수정 : 2014.04.28 11:28

빈사 상태의 한국 경제를 구한 기상천외한 발상

"형님,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갖춘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에 우리가 잘 모르고 덤볐다가 큰 손해를 보고 겨우 마무리한 태국 고속도로 공사와는 비교도 안 되게 어려운 여건이 너무 많습니다. 절대 안 됩니다."

그룹 내 2인자인 큰동생 정인영 부회장이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정 회장에게 감히 이런 반대의 말을 하며 맞설 사람은 정인영이 유일했다.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인 정 회장과는 달리 그는 일본 유학까지 한 학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6·25 전쟁 발발 전 동아일보 공채 1기 기자로 일했다. 전쟁 중 형 정 회장과 함께 부산으로 피란을 갔다가 일거리를 찾던 그는 능통한 영어 실력 덕분에 미군 부대 공병대의 영선반 통역 일자리를 얻게 된다. 역시 일거리를 찾던 정주영 회장은 동생의 주선으로 일자리를 얻게 된다. 물밀듯 부산으로 입항하는 참전 미군병사들의 막사를 짓는 일이었다.

정 회장은 이를 시작으로 전후 복구공사에 참여하며 현대건설의 토대를 만들게 된다. 그 후도 정인영씨는 명실공히 2인자로서 형을 도와 그룹 내의 국제통으로 회사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고 정인영 한라그룹회장(왼쪽)과 이명박 당시 현대건설 회장(오른쪽)
고 정인영 한라그룹회장(왼쪽)과 이명박 당시 현대건설 회장(오른쪽)
그런 그가 이번에는 정 회장의 야심찬 중동 건설 계획을 필사적으로 반대하고 나서니 정 회장으로서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때 현대건설 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

"이 사장, 오늘 오후 회장님이 주재하는 중동진출회의 때 말이지 자네도 반드시 반대해야 돼. 자네도 알다시피 말도 안 되는 일 아냐?"

부탁이 아니라 협박에 가까왔다. 정인영 회장은 이명박 사장뿐 아니라 그룹 내 주요 사장 및 임원급 간부들에게 같은 어조로 중동건설 반대 대열에 동참할 것을 윽박지르며 강요하고 나섰다. 형 정주영 회장의 중동 시장에 대한 야망은 국제 사정과 경제에 밝은 그에게는 그만큼 터무니없는 일로 보였던 것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회사를 위해서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은 좀처럼 생각을 바꿀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정 회장은 주위를 놀라게 하는 결단을 내렸다. 그룹 내 알짜 기업으로 건설 중장비와 발전 설비 등을 만드는 현대양행(후에 한국중공업을 거쳐 오늘날 두산중공업이 됨)을 떼어 주어 그를 그룹에서 내보냄으로써 그룹 내 중동진출 반대 세력을 제거해버리는 극단의 선택을 했다.

"아직 해보지 않아서 모르는 부분은 배우며 하면 되고, 길이 없으면 만들며 해결하면 돼. 사막이 뜨겁다고 하지만 밤에는 서늘하다고 하니 일하는 사람들을 낮에는 에어컨 켜놓은 데서 재우고 밤에 불 켜놓고 일하게 하면 되잖아. 또 물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차로 길어오면 되고, 어차피 건설장비는 임대해서 쓰는 거니까 문제없어. 자금도 현대신용 가지고 빌려서 해결하면 돼."

그의 해답은 간결하고 단호했다.

한편 그가 내심 품고 있던 비장의 승부수는 입찰가격이었다.

"오라 그거였구나. 정 회장이 수주 욕심에서 무리한 최저가로 낙찰은 받았으나 그 가격으로는 턱도 없는 공사야. 보나마나 엄청난 손해로 손을 들고 말거야. 공사이행 보증을 선 한국 은행들도 큰 손해를 볼 걸."

초기 정 회장이 중동 건설 사업 낙찰에 성공한 수주 가격을 보고 그와 입찰을 놓고 겨뤘던 세계의 건설회사 대표들은 혀를 찼다. 그리고 결과를 벼르고 있었다. 그러나 정 회장은 그의 승부수를 성공으로 실현할 또 하나의 필살기를 가지고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장을 돌아보는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장을 돌아보는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
그것은 공사기간 단축이었다. 건설사업에서 공기(工期)는 바로 돈이다. 공기를 단축하여 완공을 앞당기면 공사대금을 빨리 받게 되고, 장비임대료·인건비·융자금의 금융비용은 절감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게 돈이다. 정 회장의 이런 자신감은 약 7~8년 전 경부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체험한 한국 건설인력 특유의 근면성과 적응력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이와 함께 정 회장은 경부고속도로를 만들면서 악조건 하에 체득한 장비와 물류 조달, 현장관리 경험을 중동에서 백분 활용하여 엄청난 수익을 내며 공사를 완공함으로써 세계 건설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한편으로는 중동 각국의 지도자들이 눈을 부비며 한국 건설사업 능력을 다시 보게 하고 신뢰를 갖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중동 건설이라는 황금 기회를 향하여 건너야만 하는 다리, 그러나 수많은 불확실성과 위험요소로 아무도 감히 엄두를 못 내던 그 위험천만한 지푸라기 다리. 정 회장은 그 다리를 과감하게 먼저 건너가 지푸라기가 아닌 돌다리임을 확신시켜 줌으로서 한국의 많은 건설업체들이 중동 건설 시장에 뒤따라 뛰어들도록 만들었다. 이들이 당시 한국 경제가 그토록 갈구했던 외화를 벌어들인 주역들이다.

정 회장의 당시 중동 진출은 여러 면에서 많은 극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우선 당시 에너지파동으로 대책 없이 빈사상태에 놓여 있던 우리 경제가 회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3000만달러도 안 되던 절박한 외환보유액 위기에서 1975년 중동 진출 첫해에 1억 3000만달러를 송금해왔고, 다음해에는 9억 3000만달러라는 실로 꿈같은 규모의 외화를 본국에 송금해왔다. 이는 당시 우리나라 총 예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여기에 더해 우리가 짚어야 할 의문들이 있다.

첫째, 그 당시 중동 건설 진출이라는 활로가 없었다면 우리 경제는 어떤 길을 걸어가야 했을까.

둘째, 겨우 가발과 싸구려 섬유제품, 봉제완구 등 저기술 노동집약적 제품을 싼 임금에 의존하여 수출 발돋움을 하고 있던 우리 경제가 그 때 부도가 났더라면 20여년 후 우리가 자동차, 조선, 반도체, 고급가전 제품, 철강, 중화학 제품을 수출하는 능력을 갖춘 상태서 맞았던 1997년 외환 위기와는 그 양태와 후유증이 어떻게 달랐을까.

셋째, "정 회장이 무식하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모두들 매도했던 그때의 정황으로 보아 그가 아니었다면 중동 건설 진출이라는 위험천만한 모험을 감행할 한국의 다른 건설업체가 과연 있었을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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