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4.26 07:37

[학생 구하다 실종 고창석 교사]
원일中 재직 때 학교에 화재… 학생 대피시키고 홀로 불 꺼
제자들 "세월호 소식 듣고 가장 늦게 나오실거라 생각…"

세월호 침몰 당시 제자들을 탈출시키다 실종된 안산 단원고 체육 교사 고창석(43)씨의 원일중 재직 당시 모습. 고씨는 2005년 안산 원일중의 학생 휴게실에서 불이 나자 가장 먼저 달려와 불을 끄고 학생들을 대피시켰다
세월호 침몰 당시 제자들을 탈출시키다 실종된 안산 단원고 체육 교사 고창석(40)씨의 원일중 재직 당시 모습. 고씨는 2005년 안산 원일중의 학생 휴게실에서 불이 나자 가장 먼저 달려와 불을 끄고 학생들을 대피시켰다. /안산 원일중 교감 제공
안산 단원고 체육 교사 고창석(40)씨는 세월호에서 제자 한 명 한 명에게 구명조끼를 챙겨주며 탈출을 돕다가 정작 자신은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생존한 제자들은 "선생님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치시며 우리의 탈출을 도왔다"고 입을 모았다. 자신을 던져 제자들을 살려냈던 고씨는 생존 학생들이 있는 학교로도, 이미 천국으로 떠난 제자들을 위한 분향소로도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 상태다.

"9년 전 그날도 선생님은 아이들을 먼저 내보내고 불 속에 뛰어드셨어요." 24일 경기 안산 올림픽기념관 분향소를 찾은 그의 옛 제자들이 울먹이며 말했다. 이제는 대학생이 된 제자들은 고 선생님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을 어제 일처럼 기억했다. 2005년 안산 원일중학교 3층의 학생 휴게실에서 갑작스러운 불이 났다. 당시 3학년 담임교사였던 고씨는 가장 먼저 달려와 휴게실에 있던 아이들을 모두 대피시켰다. 학생들이 119에 신고하는 동안 고씨는 "어서 피하라"며 소화기를 들고 혼자 휴게실로 들어가 불을 껐다. 분향소를 찾은 원일중 졸업생 류호성(24)씨는 "스포츠 머리에 재를 하얗게 뒤집어쓰고 나온 선생님이 한참 뒤 거울을 보고 크게 웃으신 게 생각난다"고 했다. 류씨는 "처음 침몰 소식을 들었을 때 선생님이 제일 늦게 나왔을 것 같았는데 결국 이렇게…" 하며 울먹였다.

단원고 교무실 문엔 '아침마다 신발장 앞에서 인사해 주시던 고창석 선생님, 보고 싶어요' 같은 메모가 고씨의 무사 귀환을 염원하고 있다. 고씨의 카카오톡 메신저 프로필엔 수학여행 목적지였던 제주도 바닷가 사진과 함께 '가고 싶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고씨는 역시 교사인 아내와 초등학생, 유치원생 두 아들을 두고 있다.

2000년 안산 원일중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한 고씨는 상록중·원곡중을 거쳐 올해 3월 단원고등학교에 부임했다. 2학년 담임교사는 아니었지만 인성생활부 교사로 수학여행에 동행했다. 고씨의 도움으로 세월호를 탈출했던 제자들은 그의 마지막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구조된 금동철(17)군은 "선생님은 충분히 자신이 먼저 탈출할 수 있었는데 끝까지 우리를 챙겼다"며 "바로 제 옆에 계셨는데 계속 '탈출하라'며 아직 못 나온 아이들을 찾고 구명조끼를 던져 주셨다"고 말했다.

원곡중에서 2년간 고씨와 함께 근무했던 체육 교사 정민호(43)씨는 "원래 정이 많으셨다"며 "재작년 선생님과 길을 걷다 우연히 예전 제자를 만났는데 '결혼했다'고 하니 바로 지갑에서 5만원을 꺼내 주시더라"고 말했다. 정씨는 또 "학생들에게 시간을 많이 쏟고 책임감이 무척 강했다"며 "학교에서 운동 대회가 열리면 점심때마다 아이들을 불러 모아 손수 축구 심판을 맡아주셔서 애들이 무척 좋아했다"고 말했다. 고씨를 기억하는 원곡중학교 제자들은 "전교생이 다 이름을 알 만큼 재밌고 다정하신 선생님이라 다른 학교로 가셨을 때 다들 무척 아쉬워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고슴도치처럼 머리가 짧은 선생님과 마주치면 '또치쌤' 하고 불렀어요. 생활 지도 선생님이라 매일 아침 교문에서 엄한 표정을 짓고 계시면서도 인사하면 손을 크게 흔들어주시던 모습이 생생해요." 단원고 1학년 박모양이 기억하는 고 선생님의 모습이다.

김민정 | 기자(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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