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4.21 08:34
‘망둥이 제 새끼 잡아먹는다.’
동류(同類)나 친척 간에 서로 싸우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김정일 독재정권을 돌이켜보면 매일 매시각 간부들과 주민들에 대한 숙청이 끊이는 날이 없었다. 특히 김정일이 뇌출혈로 쓰러지기 직전에는 횡포가 더욱 심해졌다. 북한에서는 김정일이 뇌출혈로 쓰러진 것을 초특급 비밀로 하였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 명 없었다. 설사 아는 사람들도 기밀 발설죄로 처형될까 두려워 입을 열지 못했다.

이 때문에 2008년 9월 9일 공화국 창건 60돌 기념행사에 김정일도 나타나지 않고 사상 처음으로 노농적위대 열병식이 오후 3시에 열리는 일이 벌어졌다. 오죽했으면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가 죽었기 때문에 김정일이 너무 슬퍼서 못 나온다는 유언비어가 돌았겠는가. 유언비어 발설자를 잡겠다고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부 10호실이 나섰으나 잡지 못하였다.

요즘 와서 김정일이 죽기 전에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려는 정신착란증이 왔었다고 많은 간부들과 주민들이 말하고 있다. 2007년 초에 김정일은 갑자기 당시 중앙당 조직지도부 1부부장이자 중앙당 본부 당 책임비서이었던 이제강을 불러 지금 중앙당이 너무 비대해졌으니 한 사람이 두 가지 이상의 직무를 겸직하도록 하고 사람들을 많이 축소하여 중앙당에서 내보내라는 지시를 내렸다.
조선중앙TV가 2012년 1월 8일 방영한 기록영화에서 북한 김정일(오른쪽)이 김정은(제일 왼쪽)과 함께 군사훈련 참관도중 담배(동그라미 안)를 손에 쥐고 있는 장면이 공개됐다. 김정일은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에도 담배를 계속 피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중앙TV가 2012년 1월 8일 방영한 기록영화에서 북한 김정일(오른쪽)이 김정은(제일 왼쪽)과 함께 군사훈련 참관도중 담배(동그라미 안)를 손에 쥐고 있는 장면이 공개됐다. 김정일은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에도 담배를 계속 피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중앙당 조직지도부에서는 중앙당 각 부서들을 재검토하고 부원 이상부터 부부장까지 약 100명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와 내각 성 기관을 비롯한 각급 중앙기관들에 그들의 급수에 맞게 재배치하였다. 범죄나 과오 때문이 아닌 단순한 기구조정이기 때문에 동일한 급의 간부로 배치해준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중앙당에서 그들이 해임·전직되는 다음날 즉시 그들이 살던 집을 회수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북한에서는 중앙당, 인민무력부,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 등 특수 성급 단위들은 비밀보장을 위해 다른 기관 사람들과 한 아파트에서 살 수 없다고 하면서 각기 자기 기관의 아파트를 따로 건설하여 관리하고 있다.

중앙당에서 다른 기관으로 이동 배치된 사람들은 겨울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집을 잃고 한지에 나가게 되었다. 그들이 배치된 기관들에서는 당장 배정해 줄 집은 없다며 기관 청사 안에 방을 하나씩 내주어 거기에서 그들이 가족들과 같이 살도록 조처해주었다.

이동 배치된 사람들은 시멘트 바닥의 냉방에서 추운 겨울을 가족들과 같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족들을 볼 면목도 없고 참으로 난감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하여 중앙당에서 해임 이동배치된 과장급 이상 9명의 사람들은 이 조치를 재정경리부에서 하였다며 공동으로 김정일에게 연명 탄원서를 올리었다.

탄원서를 받아본 김정일은 그들이 집단적으로 자기와 당에 도전하였다고 하면서 이제는 자기 곁에 없는 사람들이니 처형하라고 지시하고 온 가족을 15호 정치범관리소에 보내라고 하였다.

그들의 가족들은 아버지가 중앙당 간부로 일하다가 왜 전직이 됐고, 억울하게 죽고, 자신들이 정치범관리소에 가게 되었는지 영문도 몰랐다. 처벌된 가족 중 한 사람은 원통함을 참지 못하고 끝내 김정일과 김정은에 대한 반항의 표시로 북한을 탈출하여 2013년 대한민국에 입국하는데 성공하였다.

김정일은 또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리제강에게 탄원서에서 비판받은 재정경리부를 집중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조사 과정에 재정경리부에서 23개의 무역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을 보고받은 김정일은 ‘중앙당이 무슨 무역회사를 많이 운영하는가’라며 서경회사와 같은 큰 회사는 39호실 산하 대성지도국에 이관하고 나머지 회사들은 해산하여 재정경리부는 회사운영을 못하게 하라고 지시하였다.
리제강 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김정은과 손을 잡고 찍은 기념사진. 리제강은 김정은은 공식 등장하기 전인 2010년 6월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발표됐으나 사실은 김정일에 의해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리제강 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김정은과 손을 잡고 찍은 기념사진. 리제강은 김정은은 공식 등장하기 전인 2010년 6월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발표됐으나 사실은 김정일에 의해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재정경리부는 거의 모든 과에서 무역회사를 직접 운영하고 있었는데 조사 과정에서 많은 부정부패가 드러났다. 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김정일은 자기가 재정경리부장을 직접 겸하겠다고 나서 사업보고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재정경리부 과장 이상 급의 많은 간부들이 해직되어 지방으로 추방되었다. 부장으로 있던 리봉수는 함경북도 김책시 농장원으로 쫒겨갔고 부부장급에서는 15과 담당 김형 부부장만 제외하고 모두 해직되거나 강등됐다. 북한에서는 이 사건을 ‘2007년도 중앙당 숙청 사건(일명 봉수 부장 사건)’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리제강은 재정경리부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 중앙당 3호 청사(대남사업 담당)의 비리가 더 심하다고 보고하였다. 이에 다시 중앙당 3호 청사에 대한 집중 조사가 시작되고 김정일이 그렇게 사업을 잘한다고 칭찬하던 통일전선사업부 부부장 최승철을 비롯한 11명의 과장급 이상 간부들이 한국 정보기관의 검은 돈을 받아먹은 간첩 혐의로 잡혀가 처형됐다. 김정일은 3호 청사를 당장 해산해버리라고 불호령을 내리었다.

3호청사 담당 중앙당 비서이었던 김용순은 간부들과 주민들 속에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처형하지 못했다. 대신 교통사고라는 비극을 조작하여 죽이는 교활한 수법을 사용했다. 2010년에는 자기에게 그렇게 충성하였던 리제강도 교통사고를 일으켜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다른 죄를 씌워 처형하려 했으나 마땅한 범죄 사실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집권 전 기간 간부들과 주민들에 대한 숙청사업을 끊임없이 했다. 하지만 위의 사례들에서 보듯 죽기 전에는 더욱더 광기를 부리며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처형하는 피바람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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