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4.18 05:37

[눈물·탄식·통곡의 진도 팽목항 르포]
- 아이들 상당수가 '외동'
붙들고 있던 실낱같은 희망 아니라고 확인될 때마다
부모 가슴엔 대못 하나 더… "잘못되면 전 어떻게 살아요"
- 충격과 절망이 분노로
"구조작업 현황 제때 알려주는 시스템 하나도 없다…
국민한텐 의무 다하라면서 나라가 국민 생명 지켜주는 의무는 왜 다하지 않나요"

부모는 표가 났다.

세월호 침몰 이틀째인 17일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은 전쟁터 같았다. 낚시 가게 한둘 서 있는 진입로부터 선착장 남쪽 끝 방파제까지 전체 길이 수백m에 불과한 시골 부두에 우비 입은 어른이 수천명 서성거렸다. '해남소방서' '해양구조대' 등 각종 기관 이름이 찍힌 임시 천막 수십 개가 부두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빽빽하게 들어섰다.

수천명이 그 밑에서 바닷바람 맞으며 새벽부터 밤까지 새 소식을 기다렸다. 군·경·공무원, 민간단체 자원봉사자, 실종자 가족이 뒤섞여 있었지만 그중 누가 부모인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핏발 선 눈으로 회색 물결을 바라보던 중년 남자가 짤막하게 한마디했다. "묻지 마세요."

아직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사람이 총 276명. 그중 240여명이 열일곱 살 고등학생이다. 이날 부두에 서 있던 학부모들은 전날 생존자 명단이 나왔을 때 자기 자식 이름이 없는 걸 확인하고 이미 한 번 극한의 절망감을 맛본 사람들이었다. 살아남은 아이들이 안산으로 돌아간 뒤 실종된 아이들 부모만 남아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밤새 울었고, 그중 상당수가 날이 밝기 무섭게 담요를 둘러쓰고 부두로 뛰어나왔다. 체력이 떨어지면 체육관에 돌아와 링거를 맞고 요기를 했다.

그런 사람들 머리 위로 이날 오전 9시부터 밤중까지 쉬지 않고 빗방울이 떨어졌다. 처음엔 가랑비였다가 오후 들어 장대비가 됐다. '배 안에 갇힌 아이들이 카톡을 하고 있다'는 내용을 포함해 수많은 미확인 정보가 나돌았다. 아니라고 확인될 때마다 비 맞으며 부두에 선 부모들 가슴에 대못이 하나 더 박혔다.

17일 전남 진도군 앞바다에서,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실종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학부모 등 가족들이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를 바라보며 오열하고 있다.
17일 전남 진도군 앞바다에서,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실종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학부모 등 가족들이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를 바라보며 오열하고 있다. /김영근 기자
부모는 대부분 40대였다. 그들 상당수에게 세월호에 갇혀 있는 아이는 '세상에 하나뿐인 내 새끼'였다. 그들은 목쉰 소리로 울먹이며 "요즘 다 하나 아니면 둘 낳잖아요?" 했다.

"외아들이에요. 자식 하나 있는 부모, 저 말고도 여기 많이 있어요. 하나밖에 없는 애가…. 이건 뭔가 크게 잘못됐어요. 말을 못 하겠어요."

"저도 아들 하나예요. 얘 하나 있는 거 잘못되면 전 어떻게 살아요."

김재철(44)씨도 외동딸 키우는 아빠였다. 그는 전날 밤새 팽목항에서 구조 상황을 지켜봤다. 이튿날은 차마 바다를 보기 힘들어 체육관에 머물렀다. 그는 또박또박 띄엄띄엄 말했다. "아빠인 나는 추우니까 담요 하나 걸치게 되고, 밥 먹게 되고…. 맨 처음 300여명 구조됐다고 했을 때 그걸 믿었어요. 그래서 진도에 올 때도 애 데리고 가려고 왔어요."

실종자 가족이 현장 관계자에게 빨리 구조해줄 것을 요구하며 무릎 꿇고 빌고 있다.
실종자 가족이 현장 관계자에게 빨리 구조해줄 것을 요구하며 무릎 꿇고 빌고 있다. /뉴스1
부모들은 "우리가 이렇게 현장에서 눈 부릅뜨고 있어도 아무 소용없는 것 같아 너무 화가 난다"고 했다. 구조가 더딜 뿐 아니라 구조 현황을 제때 정확하게 알려주는 시스템이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가령 이날 구조 작업은 낮 12시쯤 중단됐지만 팽목항에 서 있는 대다수 학부모가 오후에도 계속 진행 중인 것으로 오해했다. "왜 아무런 진전이 없느냐"는 질문이 곳곳에서 튀어나오자 학부모 김영호(가명·57)씨가 참다못해 상황실에 뛰어갔다. 그가 돌아와서 "중단됐을뿐더러 재개된 적도 없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 말이 천막에서 천막으로 퍼져 나가면서 곳곳에서 욕설이 튀어나오고 울음소리가 났다.

"TV로 보는 사람들은 구조 작업이 잘되고 있는 줄 알겠지요. 현장에선 아무것도 되는 게 없어요. 정부가 '수색 시작한다' 소리는 얼른 발표하더니 왜 '수색 중단한다' 소리는 발표 안 하나요? 왜 뭐든지 우리가 여기저기 쫓아다니면서 물어봐야 알려주나요?"

"사실 저희는 마음이 너무 급해요. 전기 안 들어오는 차가운 물속에 아이가 있어요."

숙연한 야구장… 17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LG와 넥센의 경기 시작 전 전광판에 세월호 침몰 사고를 애도하며 응원 및 이벤트를 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표시돼 있다. 이날 경기는 숙연한 분위기 속에 펼쳐졌다.
숙연한 야구장… 17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LG와 넥센의 경기 시작 전 전광판에 세월호 침몰 사고를 애도하며 응원 및 이벤트를 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표시돼 있다. 이날 경기는 숙연한 분위기 속에 펼쳐졌다. /송정헌 기자
정부가 우왕좌왕하면서 사고 초기의 충격과 절망은 억누르기 힘든 분노로 바뀌어가는 것 같았다. 이날 온종일 대통령, 국무총리, 교육부장관이 진도 실내체육관에 차례로 찾아와 "잘되고 있다"고 했다. 부모들은 그 말을 꾹 참고 다 들어줬다. 그런 사람들 귀에 30분~1시간 간격으로 "시신이 추가로 인양됐다"는 뉴스가 잇달아 들어왔다. 한 엄마가 "사고 직후 바로 육·해·공군, 경찰 총동원해서 구조했어야지…. 정부가 평소에 국민한테 의무 다하란 소리만 하더니,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의무는 왜 다하지 않느냐"고 울먹거렸다.

전날에 이어 이날도 한국구세군 직원들과 국민은행 직원들이 팽목항에 밥차를 세우고 하루 1200명분 육개장을 나눠 줬다. 구세군 서준백(43) 사관이 "부모님들이 하도 못 잡수길래 죽을 300인분 쒔는데, 그것도 반이 남았다"고 했다. 그도 3남매 키우는 아빠라 육개장 푸다 여러 번 울었다.

진도=김수혜 |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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