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보엠' 代打로 갔다가… 빈을 사로잡은 남자

입력 : 2014.04.17 05:45

[작년 12월 빈 국립오페라극장 깜짝 데뷔… 삼육대 출신 테너 강요셉]

한국서 맡았던 '라보엠'의 로돌포… 펑크낸 테너 대신 공연해 찬사받아
이어진 빈 오페라극장 러브콜… 다음달 '호프만 이야기' 무대에 서

"아무리 몸이 아파도 공연을 펑크낸 적 없다. 남의 역을 해준 적은 있어도…."

작년 12월 세계적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와 '라 보엠'으로 빈 국립오페라극장에 깜짝 데뷔한 테너 강요셉(36)의 신조다. "그날 오후 3시에 무대에 설 수 있느냐는 연락이 왔어요. 비토리오 그리골로(로돌포 역)가 아프다며 공연을 펑크냈다는 겁니다. 베를린에서 오후 5시 비행기로 빈에 날아가 공연 시각 5분 전에 극장에 도착했어요."

상대역 게오르규와 눈길 한번 제대로 맞추지 못한 채 곧장 무대에 투입됐다. 하지만 강요셉은 미미로 나선 게오르규와 환상적 호흡으로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게오르규는 노련한 성악가답게 강요셉을 배려했다. "아리아가 없을 때도 이것저것 말을 걸어 편하게 해주더라고요. 서로 껴안는 대목에선 입술 대신 이마를 맞대 상대방이 소리를 잘 낼 수 있도록 '원 포인트 레슨'도 해주고요."

강요셉은 악바리다. 도이치 오페라극장 단원 시절 캐스팅 매니저를 매일같이 찾아가 배역을 달라고 졸랐다고 했다. 그렇게 얻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 계단씩 올라가 독일 정상급 테너로 우뚝 섰다.
강요셉은 악바리다. 도이치 오페라극장 단원 시절 캐스팅 매니저를 매일같이 찾아가 배역을 달라고 졸랐다고 했다. 그렇게 얻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 계단씩 올라가 독일 정상급 테너로 우뚝 섰다. /이덕훈 기자
강요셉은 2012년 4월 정명훈이 지휘한 국립오페라단 '라보엠'에서 로돌포를 처음 맡았다. "1년 반 만에 부른 건데 국립오페라단에서 데뷔한 로돌포가 빈에서도 통하더라고요. 덕분에 지난달 빈 국립오페라극장에서 '라보엠'을 또 불렀습니다."

강요셉은 악바리다. 지난달 30일에도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극장의 베를리오즈 '트로이 사람들'에 갑자기 섰다. 원래 맡은 테너가 펑크를 냈기 때문이다. 재작년 뮌헨 국립오페라극장에선 몰타 출신 테너 요셉 칼레야를 대신해 '리골레토'의 만토바 공작을 맡았다. "그날은 저도 아팠거든요. 하지만 했습니다. 덕분에 2015년 시즌 로시니의 '윌리엄 텔'에 출연하게 됐어요."

강요셉은 국립오페라단이 24일부터 올리는 '라 트라비아타' 주역 알프레도로 나선다. "연출가들이 알프레도는 양념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버지에게 휘둘리고, 연인에게 무책임한 나약한 인물로 그리기 쉽거든요. 이번 연출은 분명한 캐릭터를 요구하니까 기대해보세요." 강요셉은 지난 2월 도이치 오페라극장에서 알프레도를 불렀고, 다음 시즌 함부르크 오페라극장 출연도 예정돼 있다.

작년 12월 빈 국립오페라극장에서‘라보엠’에 출연한 뒤 게오르규와 찍은 사진.
작년 12월 빈 국립오페라극장에서‘라보엠’에 출연한 뒤 게오르규와 찍은 사진. /강요셉 페이스북
강요셉은 삼육대 음악교육과를 나와 음악 교사가 될 생각이었다. 고1 때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셔서 유학 갈 형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졸업 직전 잘츠부르크에서 열린 마스터클래스에 참석했다가 그곳 선생님의 권유로 유학을 결정했다. 어머니와 누나가 근근이 조달해준 학비로 1999년 12월 베를린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생활은 어려웠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귀국을 생각했을 즈음 쾰른 오페라극장에서 입단 허가가 났다. 2002년 도이치 오페라극장에 장학생으로 들어갔고, 이듬해 정식 단원이 됐다.

온종일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연습했지만 배역이 돌아오지 않았다. "가만있으면 평생 단역만 하겠더라고요. 캐스팅 매니저를 매일같이 괴롭혔지요. '한 번만 기회를 달라.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는 안 써도 좋다'…." 그렇게 해서 처음 맡은 주역이 2003년 '팔스타프' 펜톤이었다. 도이치 오페라극장의 확실한 주역 가수가 된 건 2010년 이후라고 했다.

강요셉은 작년 8월 도이치 오페라극장에서 독립했다. 한 극장에 매이지 않고 유럽과 미국 등 더 넓은 무대에 서기 위해서다. 빈 국립오페라극장의 러브콜은 계속된다. '라 트라비아타'가 끝나면 다음 달 '호프만 이야기'에 나선다. "콩쿠르에서 1등 하는 후배는 많지만 오페라극장에서 살아남는 숫자는 매우 적어요. 가끔 후배들이 성공 비결을 묻습니다. 극장에서 악바리처럼 생활해야 한다고 말해주지요. 그런데 실제로 도전하는 이들은 없네요."


▷국립오페라단 '라 트라비아타', 24~27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02)586-5282


김기철 |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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