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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개구리 월 10만 마리 납품할 분~" '총력 수출' 시대 별난 모집 공고

입력 : 2014.04.16 05:34 | 수정 : 2014.04.18 09:59
'개구리 수집 대행업자 모집.'

1964년 6월 25일 조선일보 1면에 3단으로 실린 '삼양수산냉동'의 광고는 당시 매스컴에서도 '진기(珍奇)하다'며 화제로 삼았다. '개구리를 매월 10만 미(尾) 이상 수집·조달할 수 있는 분을 전국 지역별로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냉동 수출하여 외화 획득하는 것임으로 국민학교 등에서 단체로 잡아 거래함도 환영'한다고 했다. 대체 그렇게 많은 개구리를 어느 나라에 무슨 용도로 수출하는 것인지, 한 마리에 얼마씩에 사들이겠다는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수출 증대'를 위해 온 나라가 힘을 쏟았던 시대의 단면이 읽힌다. 개구리 매입 공고가 실리기 6일 전, 박정희 대통령은 '정부 시책을 수출 제1주의로 집중하라'고 관계 부처에 지시했다(조선일보 1964년 6월 20일자). '수출의 날'을 11월 30일로 제정한 해도 1964년이다.

수출용 개구리를 대량 납품할 업자를 찾는광고.‘ (마리당 무게) 35그램 이상’‘살아 있어야 함’이라는 글자는 크게 인쇄했다(조선일보 1964년 6월 25일자 1면).
수출용 개구리를 대량 납품할 업자를 찾는광고.‘ (마리당 무게) 35그램 이상’‘살아 있어야 함’이라는 글자는 크게 인쇄했다(조선일보 1964년 6월 25일자 1면).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첫해인 1962년, 정부는 연 5만달러 이상 수출한 146개 회사엔 나일론 수입권 등 혜택을 준 반면, 연 5000달러도 수출 못 한 295개사는 등록을 취소하는 등 당근과 채찍을 휘두르며 수출을 독려했다(1962년 10월 17일자, 1963년 12월 13일자). 업자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외국에 팔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팔았다. 엿장수가 모아온 동네 아줌마들 머리카락으로 만든 가발은 매년 2000만달러 안팎 수출돼 1965년엔 합판, 스웨터에 이어 단일 품목 중 수출 실적 3위를 기록했다. 너도나도 가발업에 뛰어들어 머리털이 모자라자 한국가발수출조합은 '원료난 타개'를 위해 '여학생들 머리 기르기 운동'을 적극 추진하기로 결의했고, 가발업자들은 부산 시내 여학교 교장들을 만나 간곡히 '협조'를 요청하는 진풍경도 빚어졌다(1968년 9월 15일자). 1960~70년대 수출용 화물선에 실린 건 공산품만이 아니다. 가을에 떨어진 은행잎으로부터 솔방울, 수세미, 갯지렁이, 고양이 가죽, 뱀장어, 메뚜기, 번데기, 모래, 자갈까지 온갖 동식물과 광물을 수출했다. '강원도산 다람쥐 655마리가 외화 획득을 위하여 4일 서북항공기 편으로 일본으로 수출되었다'는 기사가 아침 신문 사회면에 실렸다(1962년 4월 5일자). 1970년대에는 유로키나제라는 약용 성분을 추출해 수출하기 위해 공중 화장실에 소변 채취 용기도 설치됐다.

지난 11일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 보도에 따르면, 북한 농민들이 외화 벌이를 위해 개구리를 마구 잡아 멸종이 우려된다고 한다. 북한의 경제활동 시계가 50년 전에 멈춰 있는 듯하다.

♣ 바로잡습니다
▲16일자 A29면 '그 시절 그 광고 [16]-개구리 월 10만 마리 납품할 분~' 기사 중 '연 5억달러 이상 수출한…'에서 '연 5억달러'는 '연 5만달러'로 바로잡습니다.
김명환 | 사료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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