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4.15 04:50

"길이 없으면 만들어라" 경부고속도로 건설(上)

정주영은 한국경제 성장신화의 대명사이다. 그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고, 국민소득이 80달러에서 2만6000달러까지 오르는 물꼬를 텄다. 참혹하고 열악한 당시 현실에서 엄두도 못낼 일을 기획하고 실행했다. 자동차 독자 개발, 조선사업, 중동 진출, 올림픽 유치 등이 모두 그랬다. 그가 희대의 사업에 출사표를 던질 때마다 사람들은 “초등학교 밖에 못나와 뭘 몰라서 그런 무모한 일에 달려드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도전했고 창조했다. 그리고 한국경제 성장의 초석을 다졌다. 내년 정주영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이 역사적인 인물의 업적을 시리즈로 짚어본다./편집자

“정 사장, 지금 진행하고 있는 공구가 난공사라고 하는데…”
고속도로 공사현장 상황을 들어보기 위해 현장에 있던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당시 현대건설 사장)을 청와대로 불러들여 얘기를 건네던 박정희 대통령은 순간 말을 멈추었다. 앞에 앉아서 얘기를 듣던 현장 작업복 차림의 정 회장이 고개를 떨구고 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이 모자란 데다 겹친 피로로 몰려오는 수마에 대책 없이 깜빡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대로 조용히 정 회장을 넌지시 바라고만 있었다. 몇 십초가 지났을까.
“아이고 이런, 각하 정말 죄송합니다!”
정 회장이 소스라치게 놀라 깨서 당황하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아니요 정 사장, 내가 미안하오, 그렇게 고단한데 좀더 자다 깨었으면 좋았을 것을.”
역사적인 경부고속도로 건설 사업을 놓고 두 사람이 함께 쏟았던 열정과 집념, 그리고 그 둘 사이의 관계를 잘 말해 주는 일화이다.
박정희 대통령(가운데)과 정주영 당시 현대건설 사장 부부(1964년)./조선일보DB
박정희 대통령(가운데)과 정주영 당시 현대건설 사장 부부(1964년)./조선일보DB
아스팔트를 섞고 콘크리트를 개는 일부터 암반 굴착기를 쓰는 일까지 어떤 현장 인부들보다 실무를 잘 알고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고속도로 건설 경험을 가진 현장맨 정 회장에게는 공사 현장이 일터일 뿐 아니라 밥 먹는 곳이고 잠자리였다. 당시 50대 초반의 강철 사나이 정주영은 공사를 독려하고 공사 현장에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하여 밤낮 가리지 않고 거의 하루 종일 현장에서 보냈다. 미군의 폐지프차를 개조해 만든 비좁은 탑차에서 그 큰 체구를 웅크리고 잠을 때우는 일도 다반사였다. 터널 굴착 시 수맥을 잘못 건드리면 폭발적인 강력한 힘으로 한꺼번에 토사가 섞인 이수(泥水·흙탕물)가 분출되어 사람이 매몰되어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따르게 된다. 이럴 때 인부가 머뭇거리면 정 회장은 직접 착암기를 뺏어들고 앞장 서는 혈기를 보였다.

한편 청와대에서는 박 대통령이 고속도로 공사 현황이 적힌 상황판을 집무실 뿐 아니라 침대 머리맡에도 비치해놓고 점검하며 수시로 착안점과 지시사항을 메모하는 열정을 쏟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예고 없이 현장으로 정 회장을 찾아가 현장을 함께 점검하고 막걸리를 나누며 격려해 주기도 했다.

5·16 군사 혁명 이후 5년이 남짓한 1960년대 중반,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정권 기반 자체도 아직 불안정한 시기였다. 당시 우리의 절대 부족한 식량은 미국 잉여 농산물 공여 계획인 PL 480 원조에 의존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춘궁기에 끼니를 거르는 세대가 많은 형편이었다. 국방 부분에 있어서도 무기, 탄약, 차량, 연료는 말할 것도 없고, 많은 부분의 일반 보급품과 군 의료 부분에서도 붕대, 아스피린, 간단한 소화제까지 미국의 군사원조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였다. 더욱 상황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은 이러한 미국이 박정희 대통령의 군사정권을 그 태동기부터 껄끄럽게 여기고 있는 점이었다.

이러한 시기에 박 대통령이 서울과 부산, 한국의 종축을 연결하는 경부고속도로 건설계획을 들고 나온 것이었다. 따라서 미국은 물론 미국의 영향권에 있는 세계은행도 고속도로 건설의 타당성을 부정하고 나섰다. 명분은 한국의 경제 수준에 비해 아직 시기상조이고 민생 부분 등 더 시급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었다. 당시 국제 정치에서 오늘날 보다 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미국, 더우기 그토록 경제 국방 등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한국 정부가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판단을 외면하고 재원 확보 대책도 없이 밀고 나간다는 것은 경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엄청난 모험 요소를 안고 있었다.

그러나 박대통령의 의지는 집요했다. 빈곤을 탈출하기 위해 산업발전 기반을 조성하는데 있어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무엇보다도 선결되어야 하는 과제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이러한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된 동기로는 2차 대전 이후 독일의 소위 라인강의 기적을 가능케 한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이들이 가지고 있던 기술 기반에 더하여 잘 구축된 아우토반 고속도로였다는 것을 독일 방문 시 확인했기 때문이다. 또 군 시절 뛰어난 작전통 이었던 그가 전쟁에서 주 보급로 (MSR)구축이 얼마나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인가를 절실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도 고속도로 건설에 집착한 이유였다.

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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