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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이상 파란 하늘을 볼 수 없다면

입력 : 2014.04.11 05:47
김석훈 배우·FM 라디오 진행자
김석훈 배우·FM 라디오 진행자
최근 고(故) 신상옥(1926~2006) 감독의 영화 '성춘향'(1961)과 '폭군 연산'(1962)을 볼 기회가 있었다. 원로 배우들의 연기와 감독의 역량도 뛰어났지만 내 마음을 먼저 사로잡은 것은 영화 속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단오절 그네 뛰는 성춘향보다 더 예뻤던 것은 그네 너머로 펼쳐진 말간 하늘이었다. '폭군 연산'에서도 경복궁을 감싸 안은 북악산과 인왕산 위로 펼쳐진 한양의 하늘이 아름다웠다. 전북 남원이든 서울이든 1960년대의 하늘은 더없이 청아했다.

얼마 전 이륙하는 비행기 안에서 서울을 내려다봤다. 도시는 황사와 미세 먼지로 가득 차 힘겨워 보였다. 밑에서 숨 쉬고 있을 사람들을 떠올리니 덩달아 내 가슴도 답답해졌다. 생각에 잠길 때 흔히 쓰는 '먼 산을 바라본다'는 말도 곧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눈으론 먼 산이 잘 보이질 않으니 말이다.

지금의 하늘을 카메라에 담는다면 어떤 색일까. 영화나 드라마 촬영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분위기 탓이다. 미세먼지주의보가 내려진 날, 남녀의 달콤한 데이트 장면을 찍는다면 그 장면의 맛은 반감될 게 분명하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만든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에서 보이는 2019년의 하늘은 우중충한 잿빛이다. 애니메이션 '월E'(2008)에서는 쓰레기로 뒤덮인 지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영화 속 이야기가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달 28일엔 서울 기온이 107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서울 벚꽃이 3월에 핀 건 1922년 벚꽃 관측 이래 처음이라는 신문 기사도 봤다.

[일사일언] 더 이상 파란 하늘을 볼 수 없다면
봄이 빨리 왔는데, 기분이 께름칙하다. 하늘이 자꾸 병드는 느낌 때문일까. 이런 추세라면 모든 드라마와 영화에서, 예전의 맑은 하늘을 표현하기 위해 CG(컴퓨터 그래픽)를 써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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