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4.11 08:01
경기 수원시 팔달구 한 주택에 피의자 두 명이 침입했다. 이들은 집에서 훔친 체크카드로 30만원 상당의 물품을 샀다가 붙잡혔다. 수원남부경찰서는 두 명의 피의자들이 혹시 이전에 다른 사건을 저질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DNA데이터베이스 검색을 의뢰했다.

현장 증거물 DNA데이터베이스(현장 증거물에서 검출된 유전자형 중 아직 해결되지 않는 사건의 유전자형을 관리하는 데이터베이스)에서 같은 유전자형이 검출되는 사건이 있는지 검색했다. 그 결과, 피의자 중 한 명인 배모씨는 이전에 해결되지 않는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이전에 다른 두 건의 범행을 저질렀으나 아직 발각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건은 모두 강간 사건이었다. 한 사건은 수원중부경찰서에서, 또 다른 사건은 화성서부경찰서에서 의뢰했던 사건이었다. DNA 데이터베이스 검색에서 일치하는 결과가 나오면 지난 사건의 일반적인 정보 즉, 의뢰된 경찰서, 의뢰 일자, 감정물, DNA 번호, 피해자, 사건 유형 등의 정보들이 같이 검색 결과에 기재된다. 이 검색 결과를 바탕으로 사건을 확인하기 위해 일치하는 사건의 감정서, 의뢰서 등을 꼼꼼하게 재확인한다. 이렇게 확인한 후 정확하게 정보가 맞으면 그 결과를 감정서로 작성하게 되는 것이다.

일러스트 김도원 화백
일러스트 김도원 화백

두 사건의 감정서와 의뢰서를 모두 복사해 검색 결과 내용과 비교했다. 모두 검색 결과의 내용과 일치했다. 사건 개요를 읽어보니 범행 시간대, 범행 수법 등도 비슷했다. 채취된 증거물도 비슷했다.

하지만 검토 작업을 하던 중 의아한 점을 발견했다. 범행 시기나 의뢰된 경찰서는 다른데, 피해자의 이름이 같았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혹시, 다른 사람인데 우연히 이름이 같은 건 아닐까?’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건 개요를 다시 차분히 읽어 내려갔다. 분명히 범행이 일어난 장소가 같았다. ‘그렇다면 동명이인이 같은 집에 사는 걸까?’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확인하지 않고 감정서를 쓴다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았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수사관들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담당 경찰들은 분명히 두 사건의 피해자가 같은 사람이고, 자신의 집에서 두 번 똑같은 사람한테 강간당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자신들도 희한한 사건이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같은 범인이 동일한 사람을 두 번씩이나 강간을 한 것이다. 경찰 조사 결과, 범인은 특정 개인에 대한 성적 감정을 잊지 못하고 범행 장소를 기억해두었다가 다시 그곳에 침입해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단순한 카드 절취 사건에서 시작했지만 유전자은행 덕분에 영원히 미제로 남을 수 있었던 두 개의 강간 사건 범인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행이었지만 사건 내용은 너무 어처구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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