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4.10 05:21
샴페인을 음악을 통해 ‘듣는’다면 어떤 맛일까? 샴페인과 클래식음악이 만났습니다. 만남을 제안한 건 샴페인 쪽입니다. ‘샴페인계의 롤스로이스’라고도 불리는 프랑스 최고급 샴페인 크루그가 영국 런던 더 로딩 베이 갤러리에서 ‘런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크루그 음악 체험(Krug Music Experience with the London Philharmonia Orchestra)’ 행사를 오는 11일까지 열고 있습니다. 지난 2일 열린 이 행사의 언론 프리뷰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2일 런던에서 열린 '런던 필하모니아와 함께 하는 크루그 음악 경험' 행사 장면. 크루그 제공
2일 런던에서 열린 '런던 필하모니아와 함께 하는 크루그 음악 경험' 행사 장면. 크루그 제공
크루그 6대 계승자인 올리비에 크루그는 “크루그를 처음 맛봤을 때의 감흥은 위대한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와 다르지 않다”며 “음악을 통해서 샴페인을 ‘맛’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런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의 이번 협업을 마련했다”고 말했습니다. 필하모니아 지휘자이자 음악감독인 에사-페카 살로넨은 “오케스트라건 샴페인이건 완벽한 블렌드(조합)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같다”고 했습니다.

샴페인은 기포가 들어있는 와인의 한 종류입니다. 와인은 매년 포도 작황에 따라 맛이 달라집니다. 샴페인도 마찬가지죠. 크루그의 창업자는 이게 싫었습니다. 빈티지(생산년도)와 상관없이 일관되게 최고의 샴페인 맛을 구현하기를 원했습니다. 이를 위해 크루그에서는 와인저장고 최고책임자 에릭 레벨(Lebel)과 올리비에 크루그를 비롯 6명으로 구성된 시음위원회가 400종 이상의 와인을 반복 시음해 최종적으로 선택된 120여 가지 베이스와인(base wine·샴페인의 원재료가 되는 와인)을 블렌딩(섞기) 합니다.

크루그는 자신들의 이 독특한 샴페인 블렌딩 과정을 이해시키기 위해 필하모니아와 협업을 시도했습니다. 올리비에 크루그는 이 블렌딩이 “100여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서로 다른 악기로 하나의 화음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오케스트라와 달리 샴페인은 ‘단원(베이스와인)’이 매년 바뀐다는 점이죠. 매년 수확하는 포도로 생산하는 와인이 지난해와 다를 수밖에 없고, 이들을 하나의 ‘오케스트라(블렌딩)’로 조율해 훌륭한 ‘심포니(샴페인)’를 연주하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그래서 크루그에서는 그해 생산된 와인뿐 아니라 멀게는 10여 년 전 생산된 와인도 보관하고 있다가 블렌딩합니다.”
'런던 필하모니아와 함께 하는 크루그 음악 경험' 행사.
'런던 필하모니아와 함께 하는 크루그 음악 경험' 행사.
지난 2일 갤러리에서 만난 관객들은 샴페인 잔을 손에 들고 화랑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군데군데 밝게 빛나는 빔프로젝터 불빛을 제외하면 갤러리 내부는 캄캄했습니다. 빔프로젝터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연주하는 필하모니아를 촬영한 영상을 스크린에 비췄습니다. 영상에는 바이올린, 첼로, 타악기 등 오케스트라 파트별 연주자들의 연주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갤러리 곳곳에는 파트별 연주자들이 실제 연주를 하기도 하고, 관객들에게 자신이 연주하는 악기를 설명하거나 악기를 연주하라고 권하기도 했습니다. 스크린 앞에는 투명한 사각형 유리 상자가 설치돼 있었고, 그 속에는 베이스와인이 담긴 유리병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특정 악기와 각각 비슷한 성격을 가졌다고 판단한 베이스와인들이었죠.

스크린에 비춰지는 영상은 필하모니아가 제작한 영화 ‘리라이트(Re-Rite) 프로젝트’입니다. 공연장 곳곳과 연주자들의 머리에 설치한 고성능 HD카메라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Rite of Spring) 연주 장면을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한 영화입니다. 필하모니아는 그동안 영국 여러 갤러리에서 이 영화를 상영했습니다. 갤러리 관람객들이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자들 사이를 걷듯 청각뿐 아니라 나머지 오감(五感)을 이용해 음악을 체험을 하도록 기획됐습니다. 이번에는 여기에 미각(味覺)이 더해진 것입니다.

에사-페카 살로넨은 미리 촬영된 영상을 통해 “스트라빈스키는 음악의 요소들을 모듈(module·구성단위)로 나눈 다음 이를 조합해 작곡한 최초의 작곡가”라고 설명했는데, 이는 크루그가 블렌딩을 통해 샴페인을 완성하는 것과 동일한 구조입니다. 곡도 이번 행사의 취지와 잘 들어맞았다는 거죠.
'런던 필하모니아와 함께 하는 크루그 음악 경험'은 파격 그 자체였다.
'런던 필하모니아와 함께 하는 크루그 음악 경험'은 파격 그 자체였다.
크루그는 4월 중순부터 자사 앱(애플리케이션)과 홈페이지에 자신들의 샴페인과 어울리는 음악 목록을 올리고 무료 스트리밍으로 들을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술과 음식의 궁합을 맞추듯, 샴페인과 음악의 조합을 찾은 것이죠. 이 음악 목록 작성에는 그루지아 출신 피아니스트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와 나이지리아 출신 싱어송라이터·기타리스트 케지아 존스가 참여했습니다. 샴페인과 심포니는 그렇게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도록 돕는 ‘협주’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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