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4.09 05:27
중국음식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거나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만한전석(滿漢全席)을 들어봤을 겁니다. 중국 음식의 화려함과 다양함을 집대성한 연회라는 건 대충 알겠는데, 정확히 뭔지는 알기 힘들었습니다. 인터넷에도 워낙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설명과 근거가 있어서 쉽게 무엇이 맞는지 가리기 어렵더군요.

그러던 중 롯데호텔 서울에서 중국 최고의 만한전석 전문가를 불러다가 만한전석 대표 메뉴를 선보이는 행사를 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로 인터뷰를 신청했습니다. 탕시펑씨는 중국 공영방송 CCTV 인기 프로그램 ‘만한전석 요리대회’ 우승자(2006년)이며 TV에 자주 등장하는 스타 요리사입니다. 베이징에서 길을 걷다가 알아보는 사람이 많은 정도랍니다. 자기 식당도 대여섯 개나 가지고 있는 오너셰프이기도 하고요. 그를 만나 만한전석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강희제 회갑연 최초의 만한전석(滿漢全席)

만한전석의 사전적 의미는 ‘만족(滿族)과 한족(漢族)의 모든 진미를 모은 연회’라는 뜻입니다. 원래 이름은 ‘만한석(滿漢席)’인데, 연회의 호화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전(全)’자가 추가됐다고 합니다.

중국 최전성기를 이끈 청나라 제4대 황제 강희제(康熙帝) 때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강희제는 1714년 회갑(回甲)을 맞습니다. 평균수명이 40세가 채 안되던 시절이니 회갑은 대단한 장수(長壽)이자 축복이었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강희제는 전국 65세 이상 노인을 2800명이나 궁궐로 초청해 이틀에 걸쳐 대대적인 연회를 개최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황제가 속한 만주족과 피지배계층인 한족의 귀한 음식이 모두 모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강희제의 회갑연이 최초의 만한전석이란 것이죠.
중국 만찬전석 요리 전문가 탕시펑 주방장이 8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 도림에서 요리 시범을 보이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중국 만찬전석 요리 전문가 탕시펑 주방장이 8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 도림에서 요리 시범을 보이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탕시펑씨는 “만한전석이 강희제 때 시작됐다고 알려졌지만 정확한 근거는 없다”더군요. “청나라 때 만한전석이란 이름의 궁정 연회는 없었어요. 정사(正史)에는 나오지 않고 관청 연회에 ‘만한석이라는 잔칫상이 있었다‘는 기록이 개인 문집에 남아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궁정에서 열리는 잔치에 황제와 만주족 관리들, 한족 관리들이 참석했으니 당연히 만주와 중원 음식이 차려졌겠죠.” 이름이 없었을뿐 만한전석은 존재했다는 소리다.

만한전석에는 108가지 음식 차려져… 준비기간 3개월, 비용 10인상 기준 3400만원

그는 “역대 기록에 나온 음식을 모두 더하면 200여 종의 산해진미가 된다”며 “큰 규모의 만한전석에는 108가지, 작은 규모로 치뤄질 경우는 68가지가 차려졌다”고 말했습니다. “108가지가 차려질 경우에는 하루에 다 못 먹고 사흘에 걸쳐 먹었습니다. 준비기간은 3개월, 비용은 10인상 기준 대략 20만위안(약 3400만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만한전석이란 막연히 청나라 때 먹던 최고급 요리들이란 생각이 있었는데, 그렇지는 않더군요. 탕씨는 “만한전석에 반드시 포함되야 할 요리나 식재료가 정해져 있거나, 청나라 때 연회 요리를 재현하는 건 아니다”고 설명했습니다. “상상도 못할 환상적 요리들일 것 같지만, 제비집·상어지느러미·전복·해삼·자라탕 등 대부분 아는 요리들입니다. 게다가 오늘날의 만한전석은 과거 청나라 때의 그것과 100% 같을 수 없어요. 우선 요리법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래된 사료와 박물관을 뒤져봤지만 요리 이름은 있어도 정확한 레시피는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곰발바닥, 표범 태반(胎盤) 등 당시 사용한 식재료 중 요즘은 ‘1급 보호동물’로 지정돼 식용할 수 없는 게 허다하고요.”

나아가 탕씨는 “과거의 만한전석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도 없지만 그럴 필요도 없다고 본다”고 하더군요. 요리법이나 조리도구는 과거와 비교해 훨씬 발달했습니다. 오늘날 일반인이 먹는 음식이 과거 황제가 먹던 음식보다 더 나을 지도 모른단거죠.

과거 식재로 곰발바닥, 표범 태반을 썼던 만파한석…지금은 ‘현재 가능한 최고의 맛 모아놓은 것’ 의미

그러면서 탕씨는 만한전석을 “현재 가능한 최고의 맛을 추구하고 모아놓은 것”으로 정의했습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재현할 수도 없는 옛날 음식이나 요리법에 얽매이지 말고, 현대에 맞는 만한전석으로 끓임없이 ‘업데이트’ 해야 한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중국 만찬전석 요리 전문가 탕시펑 주방장. 그는 中CCTV 만찬전석 요리대회 우승자이다. 김연정 객원기자
중국 만찬전석 요리 전문가 탕시펑 주방장. 그는 中CCTV 만찬전석 요리대회 우승자이다. 김연정 객원기자
그가 출연해 우승한 CCTV 만한전석 요리대회가 궁금했습니다. 탕씨에 따르면 이 대회는 매주 일정 인원이 탈락하는 개인 서바이벌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중국을 5개 지역으로 나누고 지역마다 6명의 대표 요리사가 매년 출전합니다. 해산물·육류·가금류 등 매주 1가지 주제가 주어지면 거기에 맞춰 각각 요리를 만듭니다. 이 대회 역시 ‘최고의 요리’를 만드는 요리사가 우승하는 대회이지, 옛날 만한전석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요리사를 가리는 대회는 아닌 겁니다.

탕씨가 출전한 2006년 대회의 결승전은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春節·설)에 방영됐다고 합니다. “결승에서 닭·중국햄·관자 등 다양한 재료를 넣고 진하게 우린 육수인 ‘라오탕(老湯)’으로 쪄낸 생선요리, 그리고 노루힘줄을 볶아서 자라 등껍데기 테두리에 붙은 쫀득한 젤라틴질로 감싼 요리로 최종 우승을 차지했지요.”

베이징의 만한전석 식당들은 경기가 예전만 못한 모양입니다. 탕씨는 “만한전석을 재현하는 음식점이 최근들어 대부분 문을 닫았다더군요. 시진핑 주석이 반(反) 부패 드라이브를 걸면서 찾는 손님이 뚝 떨어졌지요.”
부정부패에 대한 대대적인 반속이 벌어지면서 공무원 접대가 크게 줄어들어 만한전석 식당들도 불경기란 거죠. 만한전석이 사치와 접대의 대명사란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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