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3.24 05:34

北 인권에 대한 국제 관심 증폭, 한국은 국민적 관심 끌지 못해
無思惟의 극치이자 국제적 수치… 주인의식 갖고 적극 발언하며
지속적 감시 후속 제도 마련하고 인권 각도에서 통일을 준비해야

김성한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前 외교부 차관 사진
김성한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前 외교부 차관
북한의 인권 참상을 총체적으로 고발한 보고서의 반향이 심상치 않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본문 21쪽, 부속서 372쪽에 이르는 보고서를 지난달 17일 발표한 직후부터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증폭되었다. 세계 주요 언론은 COI 보고서가 북한의 인권 탄압을 '반(反)인도 범죄(crime against humanity)'와 '집단 학살(genocide)'로 간주하고 국제법상 '보호 책임(R2P)'을 발동하여 국제사회가 개입할 것을 주문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자고 한 데 대한 찬성도 만만치 않다.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의 반인권 범죄는 오늘날 유례가 없으며, 수용소 운용과 정치적 탄압은 히틀러와 스탈린 방식에 필적할 만하다"고 개탄했다. 미국·영국·프랑스·캐나다·호주 정부는 후속 조치 구체화를 위한 논의에 분주하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높아진 것은 그동안 북핵 문제에 가려 있던 북한의 비인도적 실체가 작년 말 장성택 처형을 계기로 가시권에 들어온 가운데 COI 보고서가 인권 탄압의 잔혹성을 적시에 폭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대한민국에선 북한 인권 문제가 국민적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2005년 국회에서 발의된 북한인권법안은 10년째 표류 중이다. 작년 8월 북한 인권 공개 청문회 개최를 위해 서울을 방문했던 마이클 커비(전 호주 대법관) COI 위원장은 3개월 후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서울의 텅 빈 공청회장을 보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런던과 워싱턴 공청회에서 청중이 눈물을 닦으며 증언을 경청했던 것과 비교된다. 독일 통일 전 서독은 이러지 않았다"며 분개했다.

독일 태생의 유대계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Arendt·1906~1975)는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惡)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에서 나치 친위대 장교 출신인 아이히만이 예루살렘 법정에서 잔혹성을 숨긴 사이코패스의 모습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모습으로 진술하는 것을 보면서 "악은 강하고 사악하고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평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히만은 본성이 악한 것이 아니라 이성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사유(無思惟·thoughtlessness)'야말로 악행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없다고 아렌트 교수는 갈파했다. 자신이 수행한 명령이 유대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상부의 명령을 수행한 것은 '무사유'의 비극적 결과물이다.

통일 한국의 주인을 자처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근면하고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핑계로 북한의 인권 참상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면 이야말로 무사유의 극치이자 국제사회에 대한 수치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지만 북한의 인권 참상을 별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대한민국 국민은 아무 생각 없이 상부의 명령으로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아이히만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한다면 지나친 자학(自虐)일까?

이제 우리는 국제사회와 더불어 북한의 인권 참상에 대해 제대로 사유해야 한다. 3월 31일 COI가 해산된 후에도 북한 인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제도적 후속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유엔 인권이사회 결의안이 나오게 되면 COI 보고서의 권고 사항 이행을 촉진하기 위해 가칭 '북한 인권 권고 사항 이행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을 주요국과 함께 검토할 수 있다. 4월 중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프랑스·영국·캐나다·호주 등이 계획하고 있는 북한 인권에 관한 '비공식 논의(arria formula)'에 유엔안보리 이사국인 우리도 주인 의식을 갖고 참여해 적극적으로 발언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북한 핵 문제와 인권 문제를 어떻게 연계할 것인지에 관해 한·미 양국이 긴밀히 협의하는 일이다. 두 사안을 서로 연계하지 말고 별도 트랙에서 다뤄나가면 된다. 유엔을 비롯한 다자 외교 현장에서 COI 보고서 이후의 모멘텀을 지속적으로 살려나가 북한 정권이 인권을 탄압하면서 핵을 개발하는 것이 얼마나 정권 안보에 부담이 되는지 느끼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인권 각도에서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다. 통일이 '대박'인 것은 경제적 측면만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에 자유와 인권이 살아 숨 쉬게 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동북아의 평화를 지향한다는 우리의 진정성을 국제사회에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선 북한 동포의 인권을 개선하고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도모할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국제사회가 대한민국을 존경하게 되고, 이를 매개로 한반도에서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다.
김성한 |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前 외교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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