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3.22 05:05
전쟁을 방임하다

각 나라의 지존들이 서로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으면 국가 간의 우호 유지와 안전 보장에 상당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사실 이런 목적 때문에 유럽에서 각국 왕실 간의 통혼은 보편적이었고, 그렇다보니 새로 독립한 약소국들이 통치 체제로 왕정을 선택할 때, 외국 왕실에서 군주를 수입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고 이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도 적었다. 하지만 정작 이런 생각과 달리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실 부자지간 혹은 형제지간에도 나눌 수 없는 것이 권력이고 이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 때문에 국가가 분열 되었던 사례는 너무 흔하다. 따라서 형제보다 먼 친척간이라면 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들은 제국주의 시대라는 세계사의 흐름에 휩쓸려, 더 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총칼을 꺼내들고 서로를 죽이는데 앞장섰다. 과연 그들이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대학살의 참상에 대해 제대로 알고나 있었을까?
앞장서서 전쟁을 막을 수 있었던 왕족들은 오히려 비극을 잉태하는데 앞장섰다. 한마디로 전선에서 어떠한 지옥이 벌어질지에 대한 걱정은 없었던 것이었다.
앞장서서 전쟁을 막을 수 있었던 왕족들은 오히려 비극을 잉태하는데 앞장섰다. 한마디로 전선에서 어떠한 지옥이 벌어질지에 대한 걱정은 없었던 것이었다.
기록에는 제1차 대전 발발 직전에 고뇌하는 군주들과 정치지도자들의 모습이 언급되어있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전쟁을 막으려 하였는지는 의문스럽다. 전쟁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너무나 쉽게 동조하였기 때문이었다. 빌헬름 2세만도 해도 그와 핏줄로 맺어진 니콜라이 2세나 조지 5세와 대화를 통해 평화를 유지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안심하고 전쟁에 나서라고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요제프 1세를 설득하였을 정도였다.

그것은 전쟁이라는 최후의, 그리고 최악의 수단을 반드시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는 뜻이었다. 진정으로 고뇌하고 평화를 원하였다면 어떻게든 대화를 시도하였을 것이다. 특히 설득할 수 있는 상대가 사촌이거나 8촌이라면, 오늘날 국제기구를 통한 어렵고 복잡한 회의보다 오히려 합의점을 찾기가 쉬웠을 것임은 분명하다. 설령 국민들 사이의 감정이 나쁘더라도 지도자들이 적극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면 전쟁은 일어나기 어렵다.

물론 단지 몇 사람만의 노력으로 제1차 대전 같은 거대한 전쟁의 발발을 막기는 어려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여 만일 페르디난트 황태자의 암살 사건이 없었다면 마땅한 구실이 없으니 거대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즉,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전쟁을 막을 수 있었고 그런 어렵고 난해한 일들을 각국 지존들이 충분히 솔선수범할 수 있었다.
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경과하면서 비참한 전선의 현실이 후방에도 알려지게 되었고 서서히 염전 사상이 대두되었다.
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경과하면서 비참한 전선의 현실이 후방에도 알려지게 되었고 서서히 염전 사상이 대두되었다.
욕심의 결과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전쟁을 반겼다. 이미 선전포고를 하고 모든 국력을 모아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나선 이상 상대방은 나의 핏줄이 아니었다. 결국 그들이 나서서 보호하여야할 국민들은 전쟁의 화마 속에 고통스럽게 사라져 갔다. 단지 몇 백 미터를 전진하기 위해 수십만의 생명이 고통 속에 죽어가는 지옥을 그들은 앞장서서 연출한 주역들이 된 것이었다. 그 대가는 결국 고스란히 그들에게 돌아갔다.

영국 왕실은 그들의 조상인 독일과 절연을 선언해야 했다. 뿌리를 부인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 인연을 끓어야 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윈저 가로 개칭하는데 그것이 강요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자발적인지는 문제가 아니고, 확실한 것은 왕실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그렇게 하여야 했다는 점이다. 독일과 전쟁을 하는데 독일 출신 왕가에 국민들이 존경을 표할 수는 없는 것은 상식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정도는 행운이었다.
(좌에서 우로) 1927년 네덜란드 망명 당시의 황태자, 빌헬름 2세, 손자. 전쟁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독려하였던 그들이 얻은 역사의 대가는 몰락이었다.
(좌에서 우로) 1927년 네덜란드 망명 당시의 황태자, 빌헬름 2세, 손자. 전쟁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독려하였던 그들이 얻은 역사의 대가는 몰락이었다.
독일은 왕정이 폐지되는 운명을 맞았다. 빌헬름 2세와 황족들이 국민들의 분노를 피해 망명길에 오르면서 천신만고 끝에 만들어진 독일 제국은 50년도 못되어 먼지처럼 사라져 버렸다. 오래전부터 이런 종말을 막기 위해서 통일 재상 비스마르크는 노심초사하였지만 욕심 많은 젊은 황제와 그를 비호하는 세력의 득세는 결국 그들 스스로의 운명을 재촉하여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일가족이 총살당하며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러시아 황실의 최후에 비한다면 그나마 양호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제정 러시아의 멸망은 오래 전부터 누적되어 온 체제 모순의 결과였지만 만일 성급하게 제1차 대전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그처럼 비참한 마지막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당시 러시아의 전쟁 참여는 이미 많은 어려움을 겪던 보통의 국민들에게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이러한 극적인 결과들은 전대미문의 참혹한 전쟁에서 왕실이 과연 어떤 역할을 했었나 하는 진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평화를 위해 주군으로 모셨지만 정작 그들은 전쟁에 앞장섰고 이로 인한 고통은 일반 백성들의 몫이었다. 이처럼 제1차 대전은 한 시대의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한 극적인 분수령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욕심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결국 20년 만에 인류는 더 큰 전쟁을 치러야 했다.
폐위 되어 우랄 지방의 민간에서 살던 1917년 당시의 니콜라이 2세와 가족들. 하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총살당하며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하게 되는데 어쩌면 전쟁을 막지 못한 업보일 수도 있다.
폐위 되어 우랄 지방의 민간에서 살던 1917년 당시의 니콜라이 2세와 가족들. 하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총살당하며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하게 되는데 어쩌면 전쟁을 막지 못한 업보일 수도 있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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