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3.06 15:04

모두가 기다렸던 전쟁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
8월 1일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
8월 2일 독일이 프랑스에 선전포고
8월 4일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
8월 5일 오스트리아-헝가리가 러시아에 선전포고
8월 10일 프랑스가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포고
8월 12일 영국이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포고
8월 23일 일본이 독일에 선전포고

옥스퍼드 대학의 석좌 교수인 휴 스트라칸은 양차 세계대전을 비교하면서 제2차 대전이 대전략 개념 하에 총체적으로 전선 전체의 관리가 이루어진 반면, 제1차 대전은 그런 노력이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순차적으로, 그리고 개별적으로 각 전역이 발발한 제2차 대전과 달리 제1차 대전은 위에서 알 수 있듯이 거의 대부분의 참전국이 마치 약속한 듯이 전쟁 발발과 동시에 총을 쏘고 달려들었을 만큼 오히려 크게 시작하였다.

상식적으로 따진다면 전쟁은 오스트리아-헝가리와 세르비아 간의 국지전으로 끝나야 했다. 전쟁 전에 맺은 삼국동맹이나 삼국협상처럼 회원국의 안전을 보증하는 다자간 조약 때문에 판이 커졌다고 하지만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암살이 영국과 독일이 전면전을 벌일 이유가 되기에는 상당히 근거가 부족하다. 결론적으로 페르디난트 황태자의 암살은 호시탐탐 전쟁의 발발을 벼르고 있던 이들에게는 단지 좋은 명분이었을 뿐이었다.
페르디난트 황태자를 암살한 프린시프의 체포 모습. 이 사건 발발 후 불과 한 달 만에 전 세계는 전쟁에 뛰어들었다.
페르디난트 황태자를 암살한 프린시프의 체포 모습. 이 사건 발발 후 불과 한 달 만에 전 세계는 전쟁에 뛰어들었다.
전쟁 발발 전에는 삼국동맹의 일원이었지만 이익을 쫓아 연합국에 합류한 이탈리아나, 삼국협상의 일원이었지만 무력 동원 의무까지는 없었던 영국이 독일의 벨기에 침공을 명분으로 내세워 참전하였다는 사실 등은 이 전쟁이 너무나 많은 복합적인 요인으로 발생하게 되었다는 증거다. 다시 말해 제1차 대전에 참전한 주요 당사자들이 아귀처럼 일거에 달라붙어 싸워야 했을 만큼 이미 쌓여 있는 것이 많았다는 뜻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과거에도 전쟁은 그렇게 쉽게 벌어지는 가벼운 행위가 아니다. 전쟁이 시작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각국에서 전쟁 참전을 독려하는 미친 시류가 세계를 휩쓸었지만 그렇다고 전쟁이 평화보다 좋다고 생각한 이들은 단 한명도 없었다. 하지만 평화에 대한 의지만 있다면 전쟁을 막을 장치는 분명히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쉽지만 당시에 그런 노력이 있었다는 증거를 발견하기는 힘들다.
개전 선언에 독일과 오스트리아 황제의 초상을 들고 환호하는 베를린 시민들. 이해가 가지 않지만 당시 유럽 각국은 전쟁에 열광하였는데 한마디로 오랜 기간의 평화로 말미암아 전쟁의 무서움을 망각한 미친 시류였다.
개전 선언에 독일과 오스트리아 황제의 초상을 들고 환호하는 베를린 시민들. 이해가 가지 않지만 당시 유럽 각국은 전쟁에 열광하였는데 한마디로 오랜 기간의 평화로 말미암아 전쟁의 무서움을 망각한 미친 시류였다.
한 가족이었던 존엄하신 그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전쟁의 발발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최근에 밝혀진 자료에 의하면 독일의 압력에 의해 피동적으로 전쟁에 참여했다는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을 만큼 전쟁 진행 과정을 살펴보면 그다지 주체적인 입장은 아니었다. 오스만투르크, 이탈리아, 미국, 세르비아, 불가리아, 일본 등은 전쟁 발발과 거리도 멀고 단지 이해타산 때문에 시간이 흐른 후 유리한 편에 붙어 참전했다.

그러면 주요 참전국 중 프랑스, 독일, 영국, 러시아가 남게 되는데 공화정인 프랑스를 제외한다면 나머지는 왕국들이었다. 개전 당시에 이들 3개국의 국가원수들을 소개하면 독일의 카이저 빌헬름 2세, 영국 국왕이자 인도 황제였던 조지 5세, 그리고 마지막으로 러시아제국 차르였던 니콜라이 2세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들 세 명은 서로 친척이다.
좌에서 우로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영국의 조지 5세, 독일의 빌헬름 2세. 이들은 전쟁 발발 당시 각국의 군주들이었는데 핏줄로 맺어진 가까운 사이다. 그럼에도 전쟁을 막지 못하였고 오히려 독려하였다.
좌에서 우로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영국의 조지 5세, 독일의 빌헬름 2세. 이들은 전쟁 발발 당시 각국의 군주들이었는데 핏줄로 맺어진 가까운 사이다. 그럼에도 전쟁을 막지 못하였고 오히려 독려하였다.
그것도 어떻게 따진다면 일가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구체적으로 영국 최대 번영기의 군주였던 빅토리아 여왕까지 올라가 살펴봐야 하지만 이와 별개로 혈연관계는 이중 삼중으로 맺어져 있다. 사실 그들만의 혼인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유럽 왕실의 복잡한 혈연관계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예를 들어 현재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와 필립 공은 부부이면서 덴마크 크리스티안 9세를 매개로 7촌간이다.

그러면 앞서 언급한 전쟁의 주체들은 빅토리아 여왕과 어떻게 연결되는 관계일까? 우선 조지 5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친손자이고 빌헬름 2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자다. 따라서 조지 5세와 빌헬름 2세는 사촌간이다. 조지 5세의 어머니 알렉산드라 C와 니콜라이 2세의 어머니 다그마가 친자매이므로 이들 사이도 사촌간이다. 거기에다 니콜라이 2세의 처 알렉산드라 F는 조지 5세 및 빌헬름 2세와 사촌간이다.
더해서 빌헬름 2세와 니콜라이 2세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후손들로 7촌간이다. 이들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커다란 종이에 가계도를 그려가면서 따져봐야 할 정도로 심하게 얽혀 있는데, 가계도는 단순한 듯하면서도 위에서 언급한 것보다 사실은 좀 더 복잡하다. 그런데 이처럼 가까운 사이였음에도 이들은 정작 싸움을 말리지 않고 오히려 가장 높은 곳에서 전쟁에 깊게 관여하였다. (계속)
1893년에 있었던 결혼식에 모인 빅토리아 여왕 일가의 사진 속에서 빌헬름 2세, 조지 5세, 니콜라스 2세를 발견 할 수 있다. 이처럼 유럽 각국의 대부분 군주들이 빅토리아 여왕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1893년에 있었던 결혼식에 모인 빅토리아 여왕 일가의 사진 속에서 빌헬름 2세, 조지 5세, 니콜라스 2세를 발견 할 수 있다. 이처럼 유럽 각국의 대부분 군주들이 빅토리아 여왕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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