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3.03 09:28 | 수정 : 2014.03.03 09:29
이건희 회장, “사업의 본질을 파악해야 성공한다”
반도체사업은 양심산업, 시계는 패션산업
백화점은 부동산업, 호텔은 장치산업…
자율경영 맡은 CEO들에게 본질 파악 강조

“호텔 사업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1980년대 후반 이건희 회장이 신라호텔의 한 임원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 임원은 서비스업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이에 수긍하지 않았다. “다시 제대로 한 번 잘 생각해보세요”라고 말할 뿐이었다. 이 회장은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해답은 경영진 스스로가 연구하고 찾아내기를 원했다. 그것이 바로 자율경영의 실체이기도 했다.

그 임원은 해답을 얻기 위해 일본 등지로 출장을 나가서 해외 유명 호텔을 벤치마킹 하면서 호텔 사업의 본질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돌아와 이 회장에게 호텔사업은 ‘장치산업과 부동산업’에 가깝다는 보고를 했다. 입점지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갈리고, 새로운 시설로 손님을 끌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제서야 이 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장치산업이자 부동산업으로서 호텔의 발전 방향에 대해 구체적인 전략을 논의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지난해 8월 1일 새로 문을 연 서울 신라호텔의 야외수영장‘어번 아일랜드’. 새로운 시설로 손님을 끌어야 한다는 점에서 호텔사업은 장치산업이라는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이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8월 1일 새로 문을 연 서울 신라호텔의 야외수영장‘어번 아일랜드’. 새로운 시설로 손님을 끌어야 한다는 점에서 호텔사업은 장치산업이라는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이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성공하려면 사업의 본질 이해하라

이 회장이 경영진에게 항상 강조한 것이 ‘업(業)의 개념’이다. 지금 하는 일을 정확히 정의해 그에 맞는 사업의 방향과 전략을 세울 것을 강조했다. 조직 구성원 각자는 자신이 맡고 있는 직책과 업무내용에 따라 업의 개념을 이해하고, 이에 맞게 일하라는 메시지다. 해당 사업의 특성과 핵심 성공요인을 어려운 경영전략 용어 대신 업의 개념이라는 짧고 쉬운 말로 소통한 것이다. 이 회장은 1989년 동남아 출장 중 경영진에게 “업의 개념은 입체적인 사고를 통해 자기자신을 이해하고 기업이 영위하는 사업의 본질과 특성을 이해해 직급에 따른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 회장이 ‘업의 개념’을 중요하게 여긴 것은 최고경영진에게 경영을 자율적으로 맡겼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을 중시하는 자율경영의 요체는 자신이 맡은 업의 개념을 ‘스스로’ 파악하고 이를 경영의 근간으로 삼고 있느냐이다. 자율경영의 성공 여부도 ‘업의 개념’을 깨닫고 이를 실천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삼성토탈은 지방에 있어도 인재 유치

1990년 삼성석유화학 대표이사에 취임 후 이 회장과 처음 오찬을 하게 된 박웅서 사장은 처음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 회장이 “석유화학의 업의 개념은 인력 훈련에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조언에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막연히 이익 극대화나 시장 점유율 확대 등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 사장은 한참 연구 끝에 기술자립을 위한 인력 양성에 나섰다. 이를 통해 단순한 하청 생산에서 벗어나 고급 기술을 요하는 고품질 생산에 도전하게 된다. 또 안전이 가장 중요한 석유화학의 특성을 고려해서 안전 운영을 위한 인력 훈련에 몰두했다. 그 덕택에 삼성석유화학은 안정적인 생산공정을 갖추게 되었다.

‘업의 개념’이 또 다른 신경영의 원칙과 결합되면서 거대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사례가 있다. 삼성의 대표적인 석유화학계열사인 삼성토탈은 ‘인력훈련’을 ‘업의 개념’으로 파악하고 고급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생산할 수 있는 고급 인력을 채용했다. 그러나 이들은 대산공장이 위치한 충남 서산에서 오래 버티지 못했다. 대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낄 수 있는 자녀 교육과 문화생활 때문이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꿔라”라는 신경영 선언의 핵심 문구를 되새겨보면, ‘마누라와 자식’은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뜻이다. 그래서 ‘인력 훈련’이라는 ‘업의 개념’에 신경영 선언 문구를 조합해 ‘업의 개념’을 확대했다. 그래서 사원 아파트 내에 있는 상가를 개조해서 교육문화센터를 만들었다. 센터에는 사원 자녀들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는 독서실을 설치하고,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또 명문대 석·박사급 사원들을 학습 도우미로 배치해 중고등학생들의 학습지도와 멘토링을 실시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아이들이 더 이상 사교육에 신경 쓰지 않고 학업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게 되면서 대산공장이 또 다른 교육 1번지로 떠올랐다. 나아가 운영위원회를 설치해 주부는 물론 가족들의 문화 생활을 책임지도록 했다. 서울 못지 않은 문화를 누리게 되면서 고급 인력들의 지방 사업장 이탈현상이 격감했다. 이러한 ‘인력 훈련’에 힘입어 삼성토탈은 삼성그룹 내 1인당 생산성 1위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삼성토탈은 명문대 석-박사급 사원을 학습도우미로 배치해 자녀 교육문제를 해결하면서 고급 인력의 이탈을 막았다.
삼성토탈은 명문대 석-박사급 사원을 학습도우미로 배치해 자녀 교육문제를 해결하면서 고급 인력의 이탈을 막았다.
“신용카드사는 외상값을 잘 받아야 한다”

“신용카드업은 외상관리가 핵심이다. 한마디로 외상값을 잘 받아야 한다. 아무리 영업을 잘해도 돈을 제때 받지 못하면 망한다. 결국 채권 관리가 생명이다.”
이 회장은 1994년 금융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신용카드업의 개념’에 대해 이렇게 설파했다. 이 얘기는 당시 실적 위주에 빠져서 마구잡이로 회원을 늘리는 데 급급했던 카드사에 경종을 올렸다. 회원이 늘어나면 매출도 늘어나고 단기적으로는 경쟁사에 앞서면서 외형적으로는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채권 회수가 부실해지면 커진 외형만큼 그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결국 영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채권 관리라는 것이다. 삼성카드 관계자는 “2003년 카드대란 사태 때 그나마 부실을 최소화해 심각한 수준의 위기는 면할 수 있었던 것은 10년전부터 채권관리에 신경써 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의 ‘업의 개념’은 매우 현실적이었다. 그는 계열사들의 ‘업의 개념’을 이렇게 정의한다.
“보험업은 사람을 모집하는 것이 중요하고, 증권업은 상담을 하는 것이 핵심이다. 시계는 패션산업, 백화점은 부동산업, 호텔은 장치산업, 가전은 조립 양산업, 에스원은 단결력이 업의 본질이고 반도체는 양심산업이자 시간산업이다.”

이 회장의 ‘업의 개념’은 자신의 실질적인 체험과 분석에서 나온 것이다. 일례로 시계가 패션산업이라는 것은 이 회장 스스로가 수많은 시계를 분해하고 재조립하면서 깨달은 것이다. 최고급 스위스 명품시계에서 저가의 전자시계에 이르는 무수한 시계를 분해하면서 고가의 최고급 시계일수록 사용이 불편한 기계식 무브먼트를 사용하고 저가의 전자시계는 간편하고 고장도 잘 안 나는 전자식 무브먼트를 사용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결국 소비자들은 무브먼트의 정확성 보다는 시계의 브랜드 가치와 패션 가치를 구매한다는 결론을 얻고서 시계는 패션산업이란 결론을 얻은 것이다.

경쟁사보다 앞서야 하는 반도체사업은 시간산업

이 회장의 ‘업의 개념’은 삼성그룹의 주력사업 중 하나인 반도체사업에서 정점을 이룬다. 먼저 수천 명에 달하는 인력이 300여개의 공정에서 작업을 하려면 어느 누구 하나 실수하지 않고 책임을 떠넘기지 않는 한마음이 돼야 한다. 그래서 이 회장은 반도체는 기본적으로 ‘양심산업’으로서 모두 한 가족, 한마음으로 서로 믿고 일하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어서 반도체는 시간에서 승패가 나는 ‘시간 산업’이라고 강조하면서 경쟁사 보다 한 발 앞설 것을 늘 강조했다.

1993년 전세계 반도체 회사들이 각축전을 벌일 때, 돌연 이 회장의 지시가 떨어졌다.
“모두가 하는 6인치로는 일본을 뛰어넘을 수 없다. 삼성은 8인치에 승부를 건다.”
당시만 해도 6인치 웨이퍼 생산이 주류였다. 8인치 웨이퍼가 생산성이 높기는 했지만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길이었기에 위험부담이 컸다. 이 회장의 지시 이후 삼성전자는 결국 8인치를 선택하고 이를 성공시킨다. 그 후 세계 1위의 자리를 20여년간 지켜오면서 ‘반도체 신화’를 창조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