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2.27 05:13
1. 이튼 학교 졸업생 세계대전에서 약 2000 명 전사…영국여왕도 공주시절 참전

남명 조식 선생 초상 /조선일보 DB
남명 조식 선생 초상 /조선일보 DB
현재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공주시절인 2차 세계대전시 전투요원인 수송병으로 참전하였다. 영국 최고 명문 이튼 칼리지 졸업생들은 1, 2차 세계대전에서 약 2천명이 전사했는데 일 년에 250명 졸업하므로 10 년간의 졸업생 80%가 10 년간의 양 세계대전에서 전사했다는 뜻이다. 이 2000여명 전사자의 이름이 모두 학교 본부 벽에 다 기록되어 있다.

한국의 소위 명문이라 하는 학교들은 한국전쟁이나 월남전에서 졸업생 누가 전사했는지, 그리고 전사자의 수는 얼마인지는 전혀 관심이 없고, 누가 출세했는지에만 관심이 많다. 전두환 대통령 때 6개월 복무의 소위 임관 제도를 만든 적이 있었다. 실세 장군들을 비롯한 특권층의 아들들 상당수가 이 6개월짜리 특혜 장교 군대생활로 병역의무를 약게 마쳤다. 당시 돈 없고 빽 없는 젊은이들 대부분은 자랑스럽게 3 년간의 군대생활을 전방에서 빡빡 기면서 하였다.

북한군의 전면 불법 남침으로 일어난 한국전쟁에 미국 장군들의 아들들이 142명 참전했다. 그 중 유엔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 대장 아들과 미 8군 사령관 제임스 밴플리트 대장 아들의 전사를 포함하여 35명이 전사했거나 부상당했다. 반면 국군 전사자 수 약 278,000 명(실종 포함)중에 한국 고위층 아들이 전사한 사례는 신태영 참모총장의 막내아들 신박균 하사 단 하나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 노블리스 오블리주 교육이 있는가? 지금은 없지만 조선시대에 그 교육을 강하게 시킨 분이 있다. 바로 조선 중기의 대학자 남명 조식 선생이다.
60회 생일을 맞은 미 8군 사령관 밴플리트 대장과 그의 외아들(공군 중위, 폭격기 조종사)의 모습. 외아들은 한국전쟁에서 전사했고, 이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60회 생일을 맞은 미 8군 사령관 밴플리트 대장과 그의 외아들(공군 중위, 폭격기 조종사)의 모습. 외아들은 한국전쟁에서 전사했고, 이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2. 참모총장의 17세 아들 신박균, 사병으로 최전방에 지원하여 전사

신박균 하사(지금의 상병)는 중학 3학년 재학 중 17세의 어린 나이로 1950년 8월 한국전쟁에 참전을 지원해 포병이 되었다. 당시 그의 아버지 신태영 장군(중장 전역, 1952년 국방부 장관)은 한국전쟁 발발 전인 1949년에 이미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한국 군대의 거물 중의 거물이었고 그의 큰형 신응균 장군(중장 전역)은 당시 한국군 포병사령관이었다. 신박균 하사가 포병학교 교육을 마칠 때 포병학교장은 신 하사의 큰형인 신응균 장군이 지휘하는 포병사령부로 배치해 준다고 했다.

그러나 신 하사는 단호하게 거절하고 최전방을 지원하여 가평지구에서 치열하게 전투를 하다가 1951년 1월 2일 17세의 어린 나이로 장렬하게 전사를 하였다. 신 하사는 “형이 사령관으로 있는 포병사령부로 보내 줘요” 라고만 하면 후방에서 목숨을 보전하면서 군대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안일을 버리고 겨레를 위하여 눈보라 치는 겨울 전쟁터에서 산화했다.
 
 
3. 대학자 남명 조식이 칼을 차고 다닌 이유

남명 조식은 1501년(연산군 7년)에 창녕 조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15세 때 부친 조언형(문과 장원)이 함경도 단천군수로 갈 때 함께 가서 유교경전 뿐만 아니라 병법, 무예, 천문지리, 의학 등을 공부함과 동시에 백성들의 고통을 직접 보고 그들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실천적 지식을 탐구하였다. 조식은 18세 때 부친을 따라 서울로 와 기묘사화와 을사사화로 조광조와 숙부 조언경을 비롯한 많은 선비들이 죽는 것을 보고 탄식은 하였으나 과거에 응시도 했다. 그러나 25세 때 성리대전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아 출세보다는 유학의 본질을 공부하는 방향으로 바꾸었다. 조식은 경(敬)과 의(義)를 학문적 지표로 삼았는데, 경으로 내적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에 집중하고 의를 갖고서 밖으로 올바른 행동을 결단한다는 주역의 말을 만고의 진리로 삼았다.

경(敬)에 충실한 그는 평생 술 한 방울도 먹지 않았고, 부인과의 성생활도 요즘 같으면 이혼을 당할 정도로 절제하였으며, 재물, 벼슬, 미인 등 어떠한 달콤한 유혹도 끝내 물리쳤다. 조식은 평소 칼을 차고 다녔다. 경상감사 이양원이 칼을 차고 있는 조식을 보고 “칼이 무겁지 않소” 하고 묻자 그는 “뭐가 무겁소, 공의 관복 금대가 더 무거울 것 같소” 하고 응대를 하여 경상감사가 부끄러워했다. 그는 “내 내장에 먼지가 있다면 칼로 배를 갈라 맑은 물에 씻어 내리라” 할 정도로 항상 칼날을 자신의 내적 마음을 향해 겨누었다. 그가 칼을 차고 다니는 이유는 아래 그림에 나타나 있다.
 
 
4. 퇴계 이황에게 “청소하는 법도 모르면서 입으로만 사람들 속이지 말라” 훈계

조식의 인품과 학문이 전국에 알려지자 13대 명종과 14대 선조 때 여러 번 벼슬이 제수되었으나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특히 1555년 명종 때 단성현감에 제수되자 거절 상소를 올렸다. 그는 거절 상소문에서 나이 어린 왕 명종을 ‘어린 고아’라 하고 어린 왕의 생모로서 모든 권력을 갖고 있는 대비 문정왕후에 대해 ‘궁중의 일개 과부가 정치하는 썩은 조정’이라 하여 나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정말 목숨을 건 대단한 기개였다. 그는 당대에 학문은 물론 정치적으로도 거물인 회재 이언적과 성리학의 대가 퇴계 이황의 벼슬길 추천도 모두 거절했다.

조식은 퇴계 이황에게 “청소하는 법도 모르는 사람이 입으로만 천리(天理)를 논하면서 세상 사람들을 속이는 일은 이제 그만하라”고 서신을 보낼 정도로 현실성 없는 논리를 배척하였다. 시세말로 교육자, 학자들 대부분은 입만 살아 있어서 물에 빠지면 입만 물 위에 뜬다고 하는 맥락과 같다. 조식은 백성이 임금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백성의 삶과 고통을 직시하고 그들의 삶에 보탬이 되는 실용적인 학문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실을 바로 보고 실용과 실천을 중시하는 그의 학문적 자세는 조선 후기 실학사상으로 연결되었다. 왕과 대비의 잘못에 대하여 돌직구를 던지는 기개와 유림의 존경을 받는 대학자 퇴계 이황을 “입만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꾸짖는 용기야 말로 바로 지금 한국의 학자들과 교수들이 본받아야 할 자세이다.


5. 병법과 무예 교육해 제자들 의병 활동

조식의 경(敬)의 수행 목적은 내면적으로는 바른 것만 생각해 모든 악의 달콤한 유혹을 배격하고, 외부적으로는 타인을 존중하고 어떠한 조직 권력의 방해와 위협에도 목숨을 걸고 백성들의 고통을 해결하고 그들의 삶에 혜택을 주는 의(義)를 실천할 수 있는 강한 용기와 결단력의 내적 심리자본을 함양하는 데에 있다. 다음은 조식의 경의 수행이라는 내적심리자본 함양교육과 의(義)의 실천인 제자들의 의병활동 관계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조식은 알기만 하는 지식은 무용지물이라 하였고 의(義)를 행할 수 있는 지식이야 말로 가치 있는 지식이라 하였다. 그리고 각자 개인의 사회적 지위에 따른 책무를 수행하는 것도 의(義)라 하며 그것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을 때에는 반드시 제재를 받아야 한다며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주장했다. 그는 교양 공부로 과거와 자신을 반성하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역사와 시사 공부를 강조했다. 그는 백성들이 전쟁으로 위태로움을 당할 때 그들을 구하기 위한 의(義)를 행하기 위해서 군사력이 필요하다고 하여 학문은 물론 무예와 병법, 천문지리를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이러한 그의 교육을 받은 제자들은 학자들임에도 곽재우와 정인홍 등 50 여명이 조일전쟁(임진왜란)때 의병장으로 일어나 패배만 하는 관군과 달리 일본군에 대승을 거두었다. 아래 그림은 조식의 교양교육과 제자들의 의병활동과의 관계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와 같은 조식의 교양 교육은 지금 개인 스펙만 중시하는 한국의 학교 교육에 통찰력, 타인존중, 예절, 협동심 등 미래지향의 전인적 인격 형성을 위해 꼭 필요하다.
 
 
6. 조식의 내적 심리자본 함양 방식은 현대 기업경영에도 효과적

요즘 미국 경영학계에서는 개인의 긍정 심리자본이 경제적 자본보다 중요하고 우선한다고 한다. 이 긍정 심리자본의 구성요인은 자기효능감 (자신감), 낙관적 사고, 희망, 복원력 등 4개라 하며, 이 4개의 요인들이 잘 형성된 사람은 본인도 성공하고 조직에 기여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조식의 내적 심리자본 함양인 경(敬)의 수행은 자신의 사회적 성공을 위한 것이 전혀 아니며 내면을 바르게 하여 절망적 상황에서도 백성과 정의를 위한 희생을 목적으로 한다.

그의 내적 심리자본 형성인 경(敬)의 수행은 안으로 본인의 마음에 칼날을 겨누어 내면에 오는 모든 악과 유혹을 제거하면서 올바른 것만을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백성들의 유익과 국가의 부정, 부패 제거를 위해 목숨도 버리면서 의(義)를 실행할 용기와 기백을 갖는다. 그러므로 조식의 내적 심리자본은 어떠한 권력도 파괴할 수 없어서 위대하며 미국 경영학계의 긍정 심리자본 이론을 초월한다. 그의 내적 심리자본 함양을 현대기업 경영에 적용하면 아래 그림과 같다. 적용하면 조직의 부정 문제는 모두 해결이 되고, 특히 기업이 위기에 빠졌을 때 구성원들이 희생하여 기업을 구할 것이다. 나아가서 고객의 미래 유익을 창조하는 창조경제도 달성할 수 있다.
 
 
7. 조식 제자들 몰락당한 후 청과의 전쟁에서는 의병활동 미미

조식의 사후 20 년 뒤인 1592년 일어난 조일전쟁(임진왜란) 동안 경상남도에서 의병 활동을 한 학자 정인홍 등 조식의 제자들은 개혁성향의 광해군과 뜻을 같이 하게 되었다. 광해군(조선 15대 왕)이 왕위에 오르자 그들은 권력을 잡아 전후복구와 동의보감의 편찬, 대동법의 전신인 선혜법의 실시 등 내정개혁을 하였고 국제정세에 밝아 명국과 청국 사이에서 유연한 실리 외교를 하여 전쟁을 방지하였다. 그러나 왕의 계모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시켜 조선의 통치 개념인 효를 위배하여 인조반정의 명분을 제공하였다. 조식의 제자들은 의를 실행할 수 없으면 벼슬길을 나가지 말라고 한 스승의 가르침을 잊고 정치에 나서서 보수파 서인들과 권력투쟁을 하다가 인조반정으로 패배하고 거의 몰살을 당했다.

명국에 대한 사대주의 보수파 김류, 이귀 등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의 성공으로 명국과 청국 관계에서 중립적 실리외교를 하여 전쟁의 위기를 막았던 광해군은 쫓겨났다. 서인들은 권력을 잡자마자 반대파 북인들(조식의 제자들)을 거의 모두 죽이고 야만족 여진족이 세운 후금(후에 청)이 명을 공격하는데 도와주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강한 명분론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청국은 1636년 10만 대군으로 조선을 침략했으며 이를 조청전쟁(병자호란)이라 한다.

그런데 조청전쟁 시에는 조일전쟁 때와 달리 의병활동이 아주 미미하였다. 국가 위기 시 백성을 위하여 희생하여야 한다는 노블리스 오블리주 교육을 제대로 받은 인물들은 대부분 조식의 제자들이었는데 그들이 인조반정으로 거의 죽임을 당하여 의병활동이 저조했던 것이다. 인조반정으로 조식의 교육사상의 맥이 끊어져 국가의 위기를 막지 못하고 청국과의 전쟁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것이다. 다음 그림은 인조반정 후 조청전쟁의 원인과 결과를 보여 주고 있다.
 
 
8. 노블리스 오블리주 위해 공직자, 기업인, 교육자들은 군사교육 받아야

한국 전쟁 당시 한국군 사병들이 전사할 때 “빽! 빽!” 하면서 외쳤다고 한다. 빽이 없어 일선에 끌려나와 억울하게 전사한다는 뜻이다. 한국전쟁 시 국군 장병들의 육체만 한국인의 것이고 무기서부터 숟갈까지 군수품 거의 모두에 U.S.A.가 새겨져 있었다. 미국은 10개 사단 이상의 30만 대군을 파병해 약 37,000 명이 전사했다. 미국의 총체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한반도는 적화되어 우리는 지금 김정은 치하에서 온갖 고통과 기아로 신음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어떠한 전쟁도 우리만의 힘으로 승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식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교육이 필요하다. 한반도 주변지역에서 한국은 북한과는 물론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의 국가와도 언제든지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다.

전쟁이 나면 누가 먼저 금, 보석, 돈과도 바꿀 수 없는 단 하나의 목숨을 내던지며 전쟁터에 나가야 할까? 말할 것도 없이 사회지도자(리더)들과 그들의 자녀들이다. 리더란 희생에 앞장선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이제는 한국전쟁 때와 달리 대통령 등 모든 고위 공직자, 기업인, 장군, 교수 등 사회 지도자들의 자녀들이 앞장서서 전쟁터로 나가야 한다. 그것이 싫으면 지도자 자리 탐내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애국가의 가사와 같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이 나라가 최강국으로 보존될 수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사회의 모든 지도자들이 스스로 조식의 주장대로 역사와 군사교육을 받으면서 노블리스 오블리주 실천에 앞장 서야 한다. 그러면 그들의 자녀들과 추종자들도 자랑스럽게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교육 효과는 아래 그림과 같은 과정을 거쳐 나타나 결국에는 항상 승리하는 최강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