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2.25 05:35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캐럴라인 케네디(Caroline Kennedy ·57) 주일 미국 대사는 많은 걸 경험한 사람이다. 아버지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을 여섯 살에 잃었고, 세 살 아래 동생 존 F. 케네디 주니어는 서른아홉 살 나이에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졌다. 본인 역시 1975년 영국 유학시절 아일랜드 공화국군(IRA· Irish Republican Army) 테러사건으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가 작년 주일 대사로 임명되었을 때 일본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국영방송 NHK는 마차를 타고 일왕을 만나러 가는 그녀의 모습을 생방송으로 중계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런 케네디 대사가 올해 초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일본 돌고래 어업의 비(非)인도성을 강하게 비판했다. 와카야마(和歌山)현 다이지(太地)초에선 매년 돌고래를 몰아넣고 작살로 잡는다. 피바다로 변한 시뻘건 물속에 갇힌 돌고래들은 살아남으려 꿈틀거린다. 수컷은 암컷을 보호하려 하고, 어미는 새끼를 감아 싼다. 하지만 무슨 소용 있겠는가? 인간들에게 둘러싸인 돌고래들은 모두 작살에 찔려 죽어 넘어간다. 일본 정부 반응은 강경했다. 다이지초의 돌고래 어업은 오래된 전통이라고. 미국 사람들은 스테이크를 먹지 않느냐고? 왜 소고기는 먹어도 되고, 전통 깊은 돌고래 사냥은 안 되냐고?

그로부터 한 달 후, 덴마크 코펜하겐 동물원은 '마리우스'라는 어린 기린을 도살하기로 결정한다. 죽을 병에 걸린 것도, 사고당한 것도 아니다. 이미 다른 기린들과 너무 비슷한 유전을 갖고 있기에 죽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더구나 동물원은 마리우스의 시체를 아이들을 포함한 관람객들이 보는 앞에서 해체하고 사자 우리에 던져주기까지 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죽음은 당연한 거라고. 아이들도 삶과 죽음이라는 '잔인한'자연의 법칙을 알아야 한다고.

물론 자연은 잔인하고 모든 생명체는 언젠가 죽는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자연의 잔인함을 '자연스럽게'받아들이지 않았기에 인간은 동물과 구별된 '문명'이란 걸 만들 수 있었다. 냉동실에서 꺼낸 스테이크와 살아있는 돌고래의 살을 작살로 직접 잘라낸 피 흐르는 고기. 물론 둘 다 고기다. 하지만 우리들의 뇌에는 큰 차이가 있다. 후자는 잠자는 뇌의 잔인한 본능을 다시 깨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워진'잔인함은 더 큰 잔인함을 가능하게 한다. 죄인들의 공개처형을 마치 소풍 나오듯 아이들과 함께 관람하던 중세기인들이 잔인함에 무뎌졌던 것 같이 말이다.

일본 와카야마(和歌山)현 다이지(太地)초의 고래 박물관을 찾은 방문객들이 돌고래를 만지고 있다.
일본 와카야마(和歌山)현 다이지(太地)초의 고래 박물관을 찾은 방문객들이 돌고래를 만지고 있다. /블룸버그
유럽 최고 문화국이라던 독일인들의 나치 만행을 경험한 독일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d Brecht)는 이렇게 말했다. "문명이라는 페인트는 조금만 긁어도 추하고 잔인한 인간의 본모습이 드러나더라"고. '자연으로 돌아가자'가 다 좋은 게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자연에서 더 멀어져 '문명'이라는 페인트를 더 두껍게 칠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김대식 | KAIST 교수·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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