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2.20 17:36 | 수정 : 2014.02.21 09:06
산불 감시 공공근로자가 부산 금정산을 오르다 이상한 물체를 발견했다. 무엇인가 담겨져 있는 쓰레기봉투가 여러 개 버려져 있었다. 다가가 살펴봤더니 봉투 안에 담긴 것은 끔찍하게 살해된 토막 난 시신이었다. 1999년의 일이었다.

시신은 일곱 토막으로 잘려진 채 쓰레기봉투 5개에 담겨 있었다. 시신이 심하게 훼손돼 처음에는 신원을 밝히는데 매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주변의 실종자를 중심으로 탐문 수사를 진행한 결과 시신은 주점 종업원으로 일하던 김모(46·여)씨인 것으로 밝혀졌다.

피해자 주변 인물을 대상으로 수사가 활발하게 진행됐다. 그 와중에 피해자와 교제를 하고 있었던 남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힐 수 있었다. 그는 집을 나간 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수사관들은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그가 전세로 살고 있던 집 주위에 며칠씩 잠복했으나 허탕이었다. 사건 이후 그는 한번도 그곳에 나타나지 않았다.

일러스트 윤현영
일러스트 윤현영


해당 관서에서 우리 연구원에 현장에 대한 정밀 감정을 요청해왔다. 엽기적인 살인 사건이어서 사건을 조기에 해결해야 할 상황이었다. 루미놀 시약과 실험복, 마스크 등 현장 감정에 필요한 것들을 챙겨 사건 현장으로 갔다. 용의자의 집은 조용한 주택가에 있었다. 방 안에는 침대 하나가 좁게 놓여 있었고 앞에는 TV가 있었다. 방 앞 쪽에 다락이 있었는데, 방 옆에 있는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었다. 방의 입구에는 조그만 부엌이 하나 딸려 있었는데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부엌은 끔찍한 살인사건 현장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깨끗했고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방 안도 매우 깨끗한 상태였다. 범행 후 범인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살해 현장인 자신의 집을 깨끗하게 물로 청소한 것으로 보였다. 눈으로는 이렇다 할 증거를 발견하기 힘들었다.

혈흔의 흔적을 찾아내기 위해 혈흔검출 시험인 루미놀 시험을 실시하기로 했다. 이 시험은 극소량의 혈흔만 있어도 혈흔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 문을 모두 닫아 실내를 어둡게 한 뒤 루미놀 시약을 의심나는 곳에 분사하기 시작했다.
범인의 자살 현장에서 발견된 트럭.(왼쪽) 범인이 썼던 장비. 이곳에서 피해자 혈흔이 검출됐다. (오른쪽)
범인의 자살 현장에서 발견된 트럭.(왼쪽) 범인이 썼던 장비. 이곳에서 피해자 혈흔이 검출됐다. (오른쪽)
그랬더니 부엌 여러 곳에서 어지럽게 흩어진 혈흔을 검출할 수 있었다. 하수구 입구, 모서리 등에서도 시멘트에 흡수된 일부 혈흔이 검출되었다. 벽면에서도 사체를 훼손하면서 튄 것으로 보이는 혈흔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혈흔의 양은 많지 않았다.

침실이 있는 방 안에도 혈흔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루미놀을 분사하자 방문 입구 등에서 약한 혈흔 반응이 나타났고 다락으로 가는 계단 여러 곳에 묻힌 혈흔도 발견되었다. 침대 주위에서도 소량의 혈흔이 검출되었다. 혈흔의 분포와 형태로 보아 가해자가 방에서 피해자 목을 졸라 살해하려다 피해자가 다락으로 도망가자 쫓아가서 다시 목을 졸라 살해한 뒤 부엌에서 사체를 훼손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채취한 혈흔과 침대 등에 놓여있던 휴지, 가위 등 증거물을 수집해 연구원으로 복귀했다. 채취한 감정물에 대해 유전자분석을 했더니 대부분 피해자와 같은 유전자형이 검출됐다. 용의자가 피해자를 살해한 범인임이 거의 확실해진 것이다.

하지만 범인은 행방이 묘연했다. 경찰은 범인을 전국에 지명수배하고 뒤를 쫓았다. 용의자는 수사관들의 추적을 받던 중 서울 인근에서 자살한 채 발견되었다. 사건 발생 후 트럭을 몰고 다니며 도피 생활을 한 지 열흘 만이었다. 그 후 트럭에서 발견된 쇠톱 등의 증거물이 서울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되었다. 실험 결과 트럭에서 채취된 혈흔, 톱에서 채취된 조직 등에서 피해자와 같은 유전자형이 검출되었다. 범인의 소지품 중에는 변태적 성행위를 녹화한 테이프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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