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2.19 17:17 | 수정 : 2014.02.20 14:16

중공군은 손자병법 이상의 군대, 현실적이고 영리하고 교활했다

(6) 중공군은 강했다

“지긋지긋했던 군대”

중국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전쟁을 겪은 나라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들은 크고 작은 전쟁을 셀 수 없이 많이 겪었다. 중국은 그래서 병법(兵法)이 아주 발달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우리가 흔히 요즘에도 언급하는 <손자병법(孫子兵法)>이 대표적인 경우다.

2500년 전 나온 그 병법에 관한 모색은 가히 세계적인 수준이다. 이는 다른 문명권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그만큼 중국은 오래 전에 전쟁을 생각했고, 전쟁을 벌여왔으며, 전쟁에 대비하며 깊은 생각을 키워왔던 곳이다.

중국 사람들은 그 점을 자랑하는 경우가 많다. 2500년 전의 군사적 사상인 <손자병법>이 아직도 유효하며, 자신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세계 최강의 미군 군대도 이를 중요한 군사 교재로 지정한 뒤 연구를 거듭한다고 자랑한다. 일부 중국 사람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프랑스의 나폴레옹도 이 <손자병법>으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고 소개한다.
압록강을 넘어가고 있는 중공군 병사들을 위해 중국 군악대가 환송곡을 연주하는 모습.
압록강을 넘어가고 있는 중공군 병사들을 위해 중국 군악대가 환송곡을 연주하는 모습.
그렇다. 중국인들이 내세우는 대로 <손자병법>을 필두로 한 중국의 병법서가 다른 세계 어느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군사 철학의 뚜렷한 흐름을 이룬 점은 맞다. 중국인은 분명히 <손자병법>이 나온 중국의 계승자인 만큼 전쟁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고, 전쟁에 나서서도 그 특유의 전통에 따라 매우 잘 싸울 줄 알았다.

1950년의 상황도 그 점을 잘 말해주고 있었다. 중공군의 전법은 매우 특이했다. 누구도 주목하지는 않았으나, 실제 전선에 나선 중공군의 움직임은 늘 우리의 예상을 비켜갔고, 의외의 상황을 연출하면서 우리를 당황케 했다. 도대체 종잡을 수 없다 싶을 만큼 그들의 공격은 항상 우리의 의표를 찌르며 펼쳐졌다.

미군은 특히 그들의 전법에 매우 당황했다. ‘도대체 이들은 어떤 군대냐’는 탄성이 흘러 다녔다. 그들은 밤에만 공격했고, 이상한 나팔과 꽹과리 소리를 울려대며 다가왔다. ‘세계 최강’이라던 미군이 상대하기에도 매우 거북한 군대였다. 당시의 여러 증언들은 그 때 우리가 지녔던 당혹감을 잘 말해준다.

1950년 10월 말 평북 운산에서 내가 이끄는 국군 1사단의 노무자로 근무했던 한 전직 목사는 당시의 중공군에 대해 “마치 굿판을 벌이는 무당집 분위기 같았다. 한 밤 중의 적막감 속에서 기괴하게 들려오는 피리소리, 이어 울리는 꽹과리 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머리가 오싹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중공군은 공격할 때 나팔을 불고 징을 치는 등 유엔군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 나팔과 피리를 불며 공격 신호를 하고 있는 중공군.
중공군은 공격할 때 나팔을 불고 징을 치는 등 유엔군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 나팔과 피리를 불며 공격 신호를 하고 있는 중공군.
미군은 특히 더 당황했다. 처음 마주친 중공군의 군대는 그들에게 매우 고약했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어두운 밤에만 공격을 벌이며, 정면보다는 측면과 보이지 않는 구석을 따라 다가온다는 점에서 그랬다. 낮에는 전투를 하고, 밤에는 휴식에 들어가는 미군의 전투 관행으로 볼 때 그들은 아주 낯설고 두려웠다. 어느 한 미군은 중공군을 “정말 지긋지긋한 군대”라며 넌더리를 쳤다.

교묘한 싸움꾼, 중공군

한반도 전쟁에 뛰어들던 1950년 10월 말 무렵의 중공군은 그런 점에서 매우 두려운 군대였다. 적어도 이듬해 1·4 후퇴로 서울을 내주고 아군 전체가 북위 37도선에까지 밀릴 때는 그랬다. 그들은 늘 화려한 공격술을 선보였다. 저보다 강한 상대는 피하면서, 아군의 시야가 어둠에 묻혔을 때 제가 제압하기 쉬운 상대를 골라 은밀하면서도 강력하게 공격을 벌여왔다.

중공군에게 가장 취약한 부분은 공군이었다. 그들은 당시 전투기를 제대로 몰 만한 파일럿이 없었다. 따라서 공군 비행기도 운용할 만한 게 없었다. 대부분 소련의 공군 지원을 받아야 했는데, 당시 소련을 이끌던 스탈린은 미국과의 전면전을 회피하기 위해 자신의 공군력을 지원하는 데 매우 인색했다.

따라서 중공군은 미군의 공군력을 가장 두려워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야간에 병력을 이동시키고, 병사 한 사람씩 야산의 나무를 베서 등에 지고 이동하다가 미 공군기가 뜨면 그 나무를 세워놓고 주저앉는 방식으로 공습을 피했다. 아울러 산 가득히 나무를 태워 그 연기로 연막(煙幕)을 형성해 미군 조종사의 시야로부터 숨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줄기차게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한국 전선에 뛰어든 중공군 병사들이 나무를 베어 멘 채 이동하고 있다. 미군 공군 정찰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한국 전선에 뛰어든 중공군 병사들이 나무를 베어 멘 채 이동하고 있다. 미군 공군 정찰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는 앞에서 소개한 그대로다. 아군은 계속 밀리면서 순식간에 서울까지 내줬다. 월튼 워커 중장의 후임으로 한국 전선에 온 매슈 리지웨이 장군이 눈부신 작전을 펼친 끝에 겨우 그들의 공세를 꺾은 뒤 서울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때 중공군으로부터 입은 아군의 피해는 결코 작지 않았다.

중공군의 당시 싸움 방식이 뛰어났다는 점은 인정할 만하다. 일부 자료에서는 세계 최강이라고 자부하던 미군이 중공군의 거센 공세에 밀리면서 그들의 전법을 연구하는 데 골몰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도쿄의 유엔군 총사령부에서는 중공군의 전법을 알기 위해 중국인 전문가들을 불러 특유의 전법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그리고 잘 알려진 <손자병법>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연구했다는 내용이다.

이는 내가 알지 못하는 부분이다.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나는 그 내용을 들은 바는 없다. 혹자는 그런 당시의 중공군이 남긴 강력한 인상으로 인해 미 육군사관학교가 <손자병법>을 중요한 교과서로 지정해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소개하고 있다. 미 웨스트포인트에서 <손자병법>을 참고 교재로 지정한 것은 맞다.
1950년 10월 말 평북 운산 근처에서 첫 공세에 나선 중공군에게 포로로 잡히고 있는 미군 장교와 지프.
1950년 10월 말 평북 운산 근처에서 첫 공세에 나선 중공군에게 포로로 잡히고 있는 미군 장교와 지프.
그러나 중공군의 강력한 전투력을 <손자병법>과 직접 연결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손자병법>이 매우 뛰어난 고전이기는 하지만 그 책 한권이 전쟁의 실체를 모두 다 커버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나도 그 책을 연구한 적이 있다. 개인적인 결론이기는 하지만, <손자병법>의 귀결점은 다른 데 있지 않다. “가능하면 싸우지 말자”는 게 결론이다.

‘현실’에 충실했던 군대

아울러 정규 병력의 육성을 강조는 하고 있지만 이 책의 주안점(主眼點)은 어찌 보면 비정규적인 병력과 전법의 운용에 있다. 책에서는 정규전의 요소를 정(正), 비정규전의 요소를 기(奇)로 규정한다. 그렇지만 책의 논지는 대부분 비정규전의 기(奇)를 중심으로 풀어간다는 느낌을 준다.

인상으로 볼 때 1950년 한반도 전선에 뛰어든 중공군은 그와 닮은 점이 많다. 정면보다는 측면을 노렸고, 우회와 매복에 중점을 두고 공격을 펼쳤으며, 낮보다는 밤 시간을 이용하기 좋아했다. 그런 점을 “병력의 운용은 흐르는 물처럼 해야 한다”는 손자(孫子)의 가르침과 직접 연결하는 게 바람직할까.
인해전술을 펼치고 있는 중공군.
인해전술을 펼치고 있는 중공군.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들은 2500년 전 위대한 군사 사상가 손자의 계통을 이은 사람들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그들의 전법이 손자의 그것을 그대로 따랐다는 시각에는 반대한다. 손자의 가르침은 원론(原論)에 불과하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싸움에서 지지 않는다는 식의 가르침은 군사적 충돌의 현장에 선 지휘관에게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손자가 말하는 나머지의 가르침도 마찬가지다. 원론에 가깝지, 그를 실전에 응용해 실제 전쟁터에서 써먹을 수는 없다. 당시 중공군의 강점은 다른 곳에 있었다. 우선 손자를 비롯한 병법 사상가들이 펼쳤던 ‘원론’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병법에 나오는 그런 원론대로만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의 강점은 ‘현실’을 직시할 줄 알았다는 점이다.

미군에게는 있으나, 당시의 중공군에게는 없었던 게 있다. 없었다고까지는 할 수 없으나, 적어도 미군의 그것에 비해서는 현저하게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장비(裝備)와 화력(火力)이었다. 이 둘은 현대전의 핵심이다. 이제는 첨단 과학기술이 합쳐져 아주 빼어난 군사 기술이 등장하고 있는 시점이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은 그런 점에서 큰 불균형이었다. 세계 최강의 미국은 그를 이미 갖춰가고 있던 상황이었으나, 중공군은 그렇지 못했다.

그 점을 만회하기 위해 중공군이 선택한 것이 바로 야밤의 기습이다. 아울러 피리와 꽹과리를 동원했으며, 작전을 정면에서 펼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펼치는 우회와 매복 전법을 구사했다. 그들은 그 점에서 매우 철저했다. 아주 영리하고 교활했으며, 매우 침착했다. 전쟁을 잘 이해하는 사람만이 펼치는 그런 전법이었다. 6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는 당시의 중공군을 사람 머릿수만으로 밀어붙이는 ‘인해전술(人海戰術)’의 군대로만 이해한다. 과연 그런 인식이 옳을까.

<정리=유광종, 도서출판 ‘책밭’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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