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아랑과 함께 달린 '아빠의 낡은 트럭'

입력 : 2014.02.19 05:33

[3000m 계주에서 金 따기까지]
- 15년간 트럭 하나로 키운 딸
전국 돌며 창틀 설치 일 하며 어렵게 딸 훈련·장비비용 대
"아빠 부끄러워하지 않은 딸이 오히려 대견하고 고마워"
- 서울 유학… 독해진 순둥이
'중국 애들 본때 보여주마' 일기장에 각오 다지기도

김아랑의 아버지 김학만씨가 새시(창틀) 일을 하며 15년간 전국을 누빈 1톤 트럭 사진
김아랑의 아버지 김학만씨가 새시(창틀) 일을 하며 15년간 전국을 누빈 1톤 트럭. /윤동빈 기자
전북 전주시의 한 오래된 아파트 앞 길가에 파란색 1톤 트럭 한 대가 서 있었다. 여기저기 움푹 파이고 흠집이 난 1999년형 '포터' 트럭이다. 화물칸 옆쪽으로 건축에 쓰이는 각종 공구들이 상자에 담겨 있었다. 18일 소치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선에서 금메달을 따낸 김아랑(19·전주제일고)을 '키워낸' 트럭이다.

김아랑의 아버지 김학만(52)씨는 이 트럭을 타고 15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새시(창틀)를 설치하는 일을 해왔다. 스케이트 선수인 큰아들 명홍(21)씨와 둘째(김아랑)의 훈련 비용을 대기 위해 일거리가 있는 곳이면 전국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트럭을 몰았다. 한 달에 2~3일만 집에 들를 정도로 고단한 생활이었지만, 딸이 각종 대회에서 메달을 땄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아버지는 신바람이 났다고 했다.

아버지 김씨는 낡은 트럭을 어루만지며 "명홍이와 아랑이, 막내딸 서연(12)이까지 우리 집 삼남매를 책임진 트럭"이라며 "가족들과 함께 트럭을 타고 시내를 다니면서도 부끄러워한 적 없는 아랑이가 대견하고 고맙다"고 했다.

김아랑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오빠를 따라 스케이트를 처음 신었다. 아버지 김씨는 군 복무 시절 부대 대표로 스케이트 대회에 나갔을 정도로 스케이트를 좋아했다. 아버지는 남매가 어렸을 때부터 자주 스케이트를 타며 함께 놀아줬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김아랑(왼쪽에서 셋째)이 18일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경기에서 금메달이 확정되자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날 네 번째 주자로 나섰던 김아랑은 “마지막 바퀴를 돌았던 심석희가 결승선을 통과하기 전부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말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김아랑(왼쪽에서 셋째)이 18일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경기에서 금메달이 확정되자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날 네 번째 주자로 나섰던 김아랑은 “마지막 바퀴를 돌았던 심석희가 결승선을 통과하기 전부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말했다. /AP 뉴시스
아버지 김씨는 "아랑이가 어린 시절 워낙 자주 아프고 야위어서 튼튼해지라고 운동을 시켰다"고 했다. 툭하면 병원에 갈 만큼 몸이 허약하고, 경기에서 손해를 보는데도 몸싸움을 자꾸 피해서 별명이 '헐랭이' '순둥이'였다고 한다. 그래도 스케이트만 신으면 펄펄 날았다. 훈련할 때 실력이 뛰어난 언니 오빠들을 엉엉 울면서도 악착같이 따라붙을 정도로 근성이 대단했다.

김아랑은 훈련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중2 때부터 대표팀 선배인 박승희(22·화성시청)의 집에서 하숙 생활을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딸을 혼자 서울로 보내고 부모는 속상한 적이 많았다고 한다. 남매의 전지훈련과 장비에 많은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장갑이나 운동화가 너덜너덜해져도 제때 바꿔주기 어려웠고, 하숙비나 레슨비도 몇 달씩 밀리기 일쑤였다.

초등학교 시절 국민생활체육회가 주최한 스케이트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김아랑 사진
초등학교 시절 국민생활체육회가 주최한 스케이트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김아랑. /김아랑 선수 가족 제공
어머니 신경숙(44)씨는 "수입이 들쑥날쑥해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가 많았다"며 "아이들에게 쇼트트랙을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고 했다.

객지 생활은 '순둥이 스케이터'를 독하게 만들었다. 서울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김아랑은 아무리 피곤해도 매일 훈련 일지를 썼다. 어려서부터 수학을 잘했던 김아랑은 경기장 한 바퀴를 돌 때마다 코치가 불러준 시간 기록을 모두 기억했다가 훈련 일지에 전부 적어두었다. '하숙집 언니'인 박승희와 친자매처럼 지내며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빙속 여제의 ‘따뜻한 응원’… ‘빙속 여제’ 이상화가 18일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에 출전한 대표팀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
빙속 여제의 ‘따뜻한 응원’… ‘빙속 여제’ 이상화가 18일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에 출전한 대표팀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 /김경민 기자
국제 대회 경험이 쌓이면서 김아랑은 몸싸움에서도 밀리지 않고 과감한 플레이를 하기 시작했다. 일기장에 '중국 애들이 자꾸 틈만 나면 (나를) 제끼려고 한다. 언제 한번 본때를 보여주마'라고 쓰기도 했다. 지난해 세계주니어선수권 1000m와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낸 김아랑은 그해 10월 서울에서 열린 국제빙상연맹(ISU) 월드컵 대회 1500m에서 세계 랭킹 1위 심석희(17·세화여고)를 제치고 시상대 맨 위에 올랐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김아랑은 긴장을 심하게 한 탓에 급성 위염에 시달렸다. 지난 15일 1500m 결선에서 상대 선수와 엉켜 미끄러진 뒤엔 어머니와 통화하며 엉엉 울기도 했다. 이날 네 번째 주자로 나섰던 김아랑은 시상식을 마친 뒤 인터뷰에서 "첫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TV로 경기를 지켜본 어머니 신씨는 "중간에 운동을 포기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며 밝게 웃었다.

전주=윤동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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