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2.11 06:00

핵심 요약형, 의문문형, 인용문형, 현장 묘사형, 특이사실 소개형 등 대표적
아무리 고민해도 첫 문장 안 떠오를 때의 해법은? "두 번째 문장부터 쓰는 것"

고백하건대 수십 년 간 직업적으로 글을 써 온 저에게도 첫 문장은 언제나 넘기 힘든 벽입니다. 글 쓰기 위한 자료도 충분히 모았고, 글 전체의 뼈대도 머릿속으로 정해 놓았는데, 컴퓨터 앞에 앉으면 첫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 한참 동안 텅 빈 화면만 보며 멍하니 있을 때도 있습니다.여러분도 그런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어려움을 덜어드리기 위해 첫 문장의 몇 가지 유형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최근 조선일보에 실린 기자의 글과 문인·전문가 등 글쓰기 프로들의 기고문을 대상으로 첫 문장의 대표적 패턴 5가지를 예문과 함께 정리해 봤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첫 문장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첫 문장이 도무지 써지지 않을 땐 이런 유형 중 하나를 선택하여 써 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습니다.

1.핵심요약형
가장 일반적인 첫 문장의 유형입니다. 글 전체의 핵심을 압축해 이를 평서문으로 써서 첫 문장으로 내세우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스트레이트 기사들이 이런 식의 첫 문장을 씁니다. 일부 논설문에서도 글의 요지를 맨 첫 문장에 쓰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버지니아주에서 시작된 '동해 병기'가 미 전역으로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지나치게 '이슈화'시키면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우선 이 이슈가 지나치게 부각되고 한ㆍ일 대결 구도로 흐르면 미국 측이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 있다.> ( 2월 10일자 조선일보 기사 )

이런 방식의 첫 문장은 매우 정직하기는 한데, 글의 핵심이 아주 재미있지 않으면 독자를 강하게 끌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자칫하면 글의 시작이 밋밋하게 느껴질수 있습니다.

2.의문문형
때로눈 글의 첫 문장에 글 내용을 다 알려 주는게 능사가 아닐 때가 있습니다. 독자가 궁금증을 갖고 글의 다음 부분을 계속 읽어 보도록 하기 위해서 쓰는 방법 중 하나는 글쓴 이 스스로가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차례차례 답해가며 글을 풀어나가는 것입니다. 이럴 때 첫 문장은 일반적 의문문이 됩니다.

<소득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뭘까. 대부분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란 모범답안을 떠올리기 쉽다.하지만 UC버클리대 경제학과 교수인 엔리코 모레티의 답은 이런 상식을 깬다.> (2월 3일자 조선일보 기사)

<세계 TV시장을 호령했던 소니는 어쩌다 TV부문을 떼어내는 처지로 전락했을까.과거 성공에 도취, 단기적 성과에 집착한 전문 경영인의 잇따른 실책이 몰락을 자초했다는 평가이다. >(2월 10일자 조선일보 기사)

3.인용문형
한 인물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인터뷰 기사는 물론이고, 그 외의 글에서도 구어체 표현을 그대로 내세운 생생함이 있어 독자들을 잡아당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마흔 이하 젊은이들은 한자를 몰라서 의사 소통 과정에서 오해가 많이 생겨요.” 독일인 한국학자 베르너 사세 전 한양대 석좌교수가 최근 본지 인터뷰 중 “학생들이 한국 문화에 대해 너무 무지해서 놀랐다” 며 한 말이다.> (2월 3일자 조선일보 기사 )

인용으로 시작한 남의 글의 첫 부분을 다시 인용하여 자기 글의 첫 문장으로 삼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세계 경제 시스템의 붕괴는 경제학자들이 이 세계의 작동 원리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나는 앞으로 경제학 대신 한국 드라마를 가르칠 것이다." 이 비장한 출사표는 미국 프린스턴대 공공정책대학원 '우드로 윌슨 스쿨' 우버 라인하트(Reinhardtㆍ76) 교수가 대학 홈페이지에 올린 '한국 드라마 개론(Introductory Korean Drama)'의 첫 문장이다. > ( 2월 10일자 조선일보 기사)

인물들이 뱉어낸 여러 가지 말이 중요할 경우엔 여러 개의 인용문을 글 첫머리에 내세우기도 합니다. 다음 예문은 4개의 인용문을 맨 앞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당 차원에서 공동으로 출석하지 않기로 했다”(1차)/ “국회 예산·법안 심사 일정이 있으니 시기를 늦춰달라”(2차) / “….” (3차) / “반성을 해도 모라랄 판에계속 통보하는 검찰 태도에 아연실색할 따름이다.”(4차) …> (2월 10일자 조선일보 기자수첩)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 직전 벌어진 ‘국정원 여직원 감금 사건’에 관련된 야당 의원들이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판하는 기자 칼럼입니다. 소환 때마다 이런저런 구실로 응하지 않는 야당의 태도를 맨 앞에 보여 주고 싶어 소환받았을 때 야당 의원들의 발언들을 열거함으로써 인상적인 서두가 됐습니다.
'폐업처분 세일'을 내세워 소비자를 현혹하는 '메뚜기 상인들'의 속임수와 탈세 수법을 고발한 지난 2월 13일자 조선일보 사회면 톱 기사. 첫 문장은 폐업 세일을 하는 어느 현장의 스케치였다. 현장감 가득한 이런 첫 문장은 기사에 곁들인 현장 사진과 함께 사회 고발 기사의 박진감을 느끼게 한다.
'폐업처분 세일'을 내세워 소비자를 현혹하는 '메뚜기 상인들'의 속임수와 탈세 수법을 고발한 지난 2월 13일자 조선일보 사회면 톱 기사. 첫 문장은 폐업 세일을 하는 어느 현장의 스케치였다. 현장감 가득한 이런 첫 문장은 기사에 곁들인 현장 사진과 함께 사회 고발 기사의 박진감을 느끼게 한다.

4.현장 스케치형
흔하지 않은 사건이나 현상이 펼쳐지고 있는 현장의 모습을 묘사하는 문장으로 글을 시작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구체적인 일시· 장소를 명기해 현장감을 강하게 풍기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TV의 사회고발 프로그램에서 어느 현장에 대뜸 카메라를 들이대며 오프닝으로 삼는 것과 마찬가지의 방식입니다.

1990년대 중반 까치가 일으키는 정전사고를 소재로 인간과 동물의 공존 문제를 파헤쳐 주간조선에 게재됐던 ‘까치와 한전의 전쟁’이라는 제 기사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했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1993년 6월 1일 저녁 7시 10분. 한국전력 마산사업소 전화기 6대의 벨이 동시에 울렸다. 예고없는 정전에 대해 항의하는 시민들 전화였다. 까치들이 고압 전신주에 집을 짓다가 또 정전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현장 스케치로 첫 문장을 삼은 또 한편의 글을 봅시다. 점포정리 세일을 내세우며 저질 상품을 파는 상인들을 고발한 신문 기사입니다.
<7일오후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의 8층짜리 상가 건물. 이 건물 1층의 한 점포엔 빨간 바탕에 흰 글씨로 ‘속옷폐업SALE 90%’라는 문구와 여러 유명 브랜드 이름을 적은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2월 10일자 조선일보 기사)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 경제 침체가 한창이던 지난 201년 4월 27일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공개시장위원회(FOMC)를 막 끝낸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ed)의장이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2월 10일자 조선일보 ‘특파원리포트’ >

이런 첫 문장은 신문 기사에서 많이 쓰이지만, 박진감 있는 글을 쓸 때 첫 문장으로 한번 고려해 볼 만한 유형입니다.

5 특이사실 소개형
흔하지 않거나 희한한 일을 담고 있는 글의 경우엔 그 특이한 일을 대뜸 맨 앞 문장에 내세워 독자들의 호기심을 부르는 것도 방법입니다.
<서울 불광동 이현용(46)씨 집 아이들은 학교에 가족 관계 서류를 낼 때마다 선생님께 불려가 “이거 제대로 쓴 거 맞아?”라는 소리를 듣는다. ‘부: 이현용, 모 :이현용’ 이라고 써 냈으니 오해하기 십상이지만, 잘못은 없다. 아빠 엄마의 이름이 똑같기 때문이다. >(필자가 쓴 ‘동명이인 부부 이현용씨’ 인물화제 기사)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영화관은 CGV나 메가박스, 롯데시네마가 아니다.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 지하에 있는 씨네큐브다. 예술영화와 독립영화 , 다큐멘터리를 주로 트는 이 곳은 ‘예술영화계의 CGV’로 불린다 > (2월 10일자 조선일보 기사)

<돌아온 탕아(蕩兒)가 효자노릇을 할 때가 있다. 최근 인문학 과녈 ㄴ출판계에서 ‘감정’이 그렇다.> (2월 10일자 조선일보 김미현 기고 ‘인문의 향연 ’)

위에 인용한 첫문장들은 모두 세상에서 흔하지 않은 일, 상식을 깨는 일을 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뻔한 이야기보다 독자들의 호기심을 돋굴 것은 분명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첫 문장들의 가장 큰 목표는 하나입니다. 독자를 글로 빨아들이는 것입니다. 지난 회에 말씀 드린대로 독자가 “아니 이건 뭐지?”라는 느낌이 되어 다음 구절을 읽어 보고 싶게 만들면 성공한 첫문장입니다.

물론 첫 문장만 멋지고 인상적으로 써 놓고는 그 뒤의 내용이 기대를 못 채워준다면 글의 인상을 좋게 만들기는 커녕 독자를 짜증나게 할 수 있습니다. 그건 마치 세상의 이목이 집중된 살인사건의 범인 검거 기사에 “살인범에게 범행 동기를 물었더니…”라는 일종의 낚시 제목을 붙여 독자들 클릭하게 만들었지만 본문은 “질문에 그는 아무 대답도 안했다”는 내용밖에 없어 독자들을 화나게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끝으로 첫 문장과 관련하여 한 가지 제 경험을 더 알려드리겠습니다. 첫 문장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잘 떠오르지 않을 땐 두 번째 문장부터 쓰십시오. 너무 농담같다구요?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마음에 드는 첫 문장이 생각나지 않아 20분~30분씩 끙끙대다 보면, 두 번째 문장부터 쓰려는 생각조차 못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오래 고민하면 지칩니다. 그럴 때 고민을 잠시 접고 두 번째, 세 번째 문장을 써 보십시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첫 문장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둘째 문장부터 써 보라는 저의 조언은 결국 첫 문장을 잘 쓰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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