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세 쇼트트랙 女王 뒤엔 '심부삼천지교(沈父三遷之敎)'

입력 : 2014.02.10 05:37

[심석희, 올림픽 3관왕 꿈의 시작] 아빠를 위해… 수줍은 여고생 심석희, 3관왕을 노려보다

아빠의 헌신 잘 알면서도 너무 힘들어 짜증부렸던 딸 "언젠간 아빠 고생 갚아줄 것"
매주 계란말이 만들어준 아빠 "딸 오면 같이 놀이공원 가야죠"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왼쪽)의 아버지 심교광씨가 지난달 22일 소치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마지막 전지훈련을 떠나는 딸의 짐을 챙겨주고 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왼쪽)의 아버지 심교광씨가 지난달 22일 소치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마지막 전지훈련을 떠나는 딸의 짐을 챙겨주고 있다. /OSEN
쇼트트랙의 '여왕'으로 손꼽히는 심석희(沈錫希·17·세화여고)는 7년 전 아버지 심교광(51)씨와 단둘이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7세 때 강원도 강릉에서 취미로 스케이트를 시작한 딸이 운동에 재능을 보이자 아버지 심씨가 딸 뒷바라지에 전념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20년간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둔 아버지는 아무 연고가 없는 서울에서 찜질방을 전전하며 딸의 훈련을 이어갔다. 퇴직금으로 받은 1억원으로 집값 비싼 서울에서 전셋집을 구하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이후 심석희는 전이경(38)·진선유(26)의 뒤를 잇는 한국 여자 쇼트트랙의 대형 선수로 커 나갔다. 2012년 중학생 신분으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그는 ISU(국제빙상연맹) 2012~2013시즌 월드컵 시리즈에서 금메달 10개, 올 시즌에는 9개를 따냈다. 이번 올림픽에서 유력한 3관왕(1000m, 1500m, 3000m계주) 후보로 꼽힌다. 취약 종목으로 꼽히던 500m에서도 메달을 기대하고 있다.

보통 선수들이 165cm 안팎인 데 비해 아버지의 큰 키(181㎝)를 물려받은 심석희는 175cm의 장신이다. 게다가 유연성과 지구력이 뛰어나 막판 스퍼트에서 강점을 보인다. '괴물 여고생' 심석희의 무서운 성장 뒤에는 아버지 심씨의 눈물겨운 헌신이 있었다.

심부삼천지교

아버지 심씨는 딸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 7년 전 강릉에서 서울로, 5년 전과 3년 전에는 각각 강동구 안에서 전셋집을 옮겼다. 그때마다 딸의 훈련장인 서울 송파구의 한국체대 아이스링크에 가까워졌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못지않은 현대판 '심부(沈父)삼천지교'다.

심씨는 "집값이 비싼 송파구로는 도저히 갈 수 없었지만 훈련장에 최대한 가까운 곳에 집을 얻고 싶었다"며 "운동하느라 힘든 석희가 훈련장을 오가는 시간을 줄여 그만큼 쉬는 시간도 늘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집안 사정으로 아내와 떨어져 지내면서 아버지 심씨가 경제활동과 살림을 도맡았다. 낯선 서울에서 남성복 판매, 중고차 매매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 딸의 훈련 비용을 댔다.

심석희가 프랑스로 전지훈련을 떠나기 전인 지난달 22일 웃으며 인터뷰하고 있다(왼쪽 사진). 수줍음이 많은 심석희는 빙판 위에만 서면 무섭게 변한다. 지난 6일 러시아 소치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훈련 중인 모습(오른쪽 사진).
여고생의 변신 - 심석희가 프랑스로 전지훈련을 떠나기 전인 지난달 22일 웃으며 인터뷰하고 있다(왼쪽 사진). 수줍음이 많은 심석희는 빙판 위에만 서면 무섭게 변한다. 지난 6일 러시아 소치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훈련 중인 모습(오른쪽 사진). /뉴시스
2년 전부터는 딸 뒷바라지에 전념하기 위해 주로 밤에 파트타임 근무가 가능한 일을 하고 있다. 갖고 있던 땅을 팔거나 여기저기 장학금 지원을 부탁해 딸의 장비 구입비용을 마련하기도 했다.

심씨는 "석희가 훈련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최대한 지원해주고 싶었다"며 "자식이 잘되게 하고자 아버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고된 생활이었지만 하루하루 딸의 놀라운 발전을 지켜보면서 아버지는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심씨는 "내가 어렵게 뒷바라지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석희는 남들보다 빙상장을 한 바퀴라도 더 돌고, 꾀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며 "딸이 '아빠가 고생하신 만큼 꼭 보답해드리겠다'고 말할 때면 저절로 힘이 난다"고 했다.

주말마다 '아이스크림 데이트'

심석희는 '독종'으로 불린다. 위경련으로 입원했을 때도 퇴원한 다음 날 스스로 다시 훈련장에 나갔다. 오륜중 시절 담임교사였던 김대식씨는 "석희는 평소엔 말도 없고 숫기도 없는 편이지만 빙판 위에만 서면 무섭게 변한다"며 "매일 연습벌레처럼 훈련하는데도 한 번도 힘들다거나 포기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했다. 김씨는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가 돼 자만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나이답지 않게 운동에 진지한 모습에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면서 "특히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어떻게든 보완하려고 했다. 재능에 근성을 겸비한 아이"라고 덧붙였다. 쇼트트랙 입문 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써온 훈련 일지는 아버지에게도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고 한다.

아버지 심씨는 사춘기 딸을 키우면서 어려운 순간도 많았다고 했다. "석희가 중학교 2~3학년 때는 많이 힘들어하고 짜증을 자주 부렸어요. 내성적인 아이가 힘든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아버지로서 더 미안하고 속상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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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심석희가 태릉선수촌에서 집으로 외출을 나오면 군것질을 좋아하는 딸과 함께 밖에 나가 떡과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것이 아버지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였다. 심씨가 한때 원주에서 근무할 때 강릉 할머니 집에 따로 살았던 심석희는 할머니가 좋아하는 떡과 아이스크림을 즐겨 먹곤 했다.

요리에 서툰 아버지는 심석희가 좋아하는 계란말이를 주말마다 정성껏 만들어줬다. 속 깊은 심석희는 아버지를 오랜만에 만나면 괜히 트집을 잡으며 투정을 부리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아빠 그때 미안했어'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온다고 한다.

소치에 입성한 이후 심석희는 아버지와도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 아버지에게 주로 먼저 문자 메시지를 보내던 심석희는 지난달 22일 프랑스로 전지훈련을 떠난 이후엔 소식이 뜸하다고 했다. 아버지가 가끔씩 '파이팅' '밥 잘 챙겨 먹어'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낼 뿐이다. 아버지는 "석희는 하나에 집중하면 거기에만 완전히 몰두하는 스타일"이라며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그동안 흘렸던 땀이 아깝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버지 심씨는 "석희가 올림픽을 마치고 돌아오면 함께 놀이공원에 가서 딸이 좋아하는 바이킹을 같이 타겠다"고 했다.


오유교 |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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