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2.06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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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 사회부 기자

5일 0시쯤 경기도 화성직업훈련교도소 정문 앞.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의 단초가 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만기 출소한다는 소식에 20여명의 취재진이 몰렸다. 한 시간가량 추위에 떨며 정문 앞을 서성거리던 기자들은 0시 5분 전 앰뷸런스가 뒷문을 통해 교도소 내로 들어온 것을 보고 불안해했다. 박 전 회장이 일반 재소자와 똑같이 정문으로 나오면 몇 마디 질문이라도 해볼 요량이었지만 교도소 담장 안에서 응급차를 타버리면 말 붙일 기회조차 사라지기 때문이다. 카메라 기자들은 박 전 회장이 응급차에 타는 모습이라도 찍으려고 차가운 담장에 착 붙어 있었다.

그 직후 본관 건물 옆 철문이 스스륵 열리더니 응급차가 그 안으로 들어갔고, 철문은 다시 아래로 쾅 닫혔다. 누가 응급차에 타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게 된 것이다. 0시 5분쯤 문이 다시 열리자 응급차는 검은색 승합차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유유히 정문으로 빠져나갔다. "어차피 (박 전 회장을) 못 찍을 것"이라던 교도소 직원의 말이 현실화되는 순간이었다.

박 전 회장이 언론을 피하고 싶어한다는 건 이미 예상했다. 그러나 교도소가 이런 식으로까지 특별 대우하며 보호해줄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취임 후 '특권은 없다'는 방침에 따라 기업인·정치인 등 사회 지도층의 가석방이나 사면을 불허하면서 법 앞의 평등을 강조해왔다. 최근 이상득 전 의원이나 정두언 의원도 출소할 때는 정문을 통해 걸어나와 카메라 앞에 섰다. 그러나 이날 '범털'인 박연차 회장은 머리카락 한 올 드러나지 않게 꼭꼭 숨기며 깍듯이 예우를 받았다. 이날 오히려 카메라에 찍힐까 봐 전전긍긍한 사람은 정문으로 나와야 하는 다른 출소자들과 그 가족이었다.

박 전 회장의 건강이 위태로워 응급차를 교도소 내로 대기시켰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응급차를 에스코트할 승합차까지 몰래 뒷문으로 들여보내고, 철문으로 응급차를 가려주는 '센스'는 누구에게서 나왔을까. 박 회장이 출소하는 날까지 이런 특별 대우를 받았다면 그동안 교도소 생활은 어떠했을까.

교도소는 범죄자가 잘못한 대가를 치르는 곳으로 우리 사회의 법 정의가 가장 분명하게 실현되는 최전선이다. 그러나 교도소만큼 수감자의 계급(?)이 적나라하게 갈리는 곳도 없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교도소 내 기업인·정치인 등 유명 인사들이 하루 두 번까지 면회를 누리는 VIP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수감 생활이 상대적으로 편한 교도소에 배치되려면 '배경'이 있어야 한다는 건 정설이다. 지난해 서울구치소의 한 교도관은 사기 혐의로 수감된 카지노 회장에게 지인들의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비서 노릇을 하고 9000만원을 받아 챙겨 구속됐다.

교도소는 보안 구역이라는 이유로 취재가 허용되지 않는다. 감시의 사각지대다. 불투명한 곳일수록 한 번 불신이 생기면 그 신뢰를 되찾기 어렵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국민은 교도소에서 벌어질 수 있는 온갖 비리에 대해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것이다.

류정 |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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