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2.06 09:57
아만다 녹스, 다시 법정으로..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아만다 녹스(Amanda Knox)’ 사건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각)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이탈리아 피렌체 법원은 이날 이탈리아 유학 중 룸메이트를 살해한 혐의로 4년간 복역했다가 무죄방면됐던 미국인 여대생 아만다 녹스(27)에 대해 다시 살인죄를 인정해 징역 28년 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2011년 무죄판결을 받고 미국에 돌아온 녹스는 이번 판결로 다시 감옥에 가야 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아만다 녹스 사건은 ‘살인과 집단 섹스, 마약, 미모의 여대생’이란 자극적인 소재가 한데 얽혀 지난 몇 년간 전 세계의 가장 뜨거운 법정 이슈 중 하나였습니다.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녹스는 청순하고 아름다운 외모로 피의자 신분임에도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그녀의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가 제작돼 미국 케이블 TV에서 방영됐고 잇따른 방송출연과 인터뷰, 회고록 출판 계약으로 녹스는 돈방석 앉았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늘 두 가지 꼬리표가 따라붙고 있습니다. ‘타지에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불쌍한 여대생’과 ‘선한 얼굴을 지녔지만, 실제론 추악한 마녀’가 그것입니다. 이번 <즐겨찾기>에선 아만다 녹스 사건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살인사건
'아만다 녹스' 사건의 주요 인물들. 오른쪽 사진부터 살인피의자 아만다 녹스, 녹스의 룸메이트이자 살인피해자 메러디스 커처, 사건 당시 녹스의 남자친구이자 공범혐의를 받은 라파엘 솔레시토./AP뉴시스
'아만다 녹스' 사건의 주요 인물들. 오른쪽 사진부터 살인피의자 아만다 녹스, 녹스의 룸메이트이자 살인피해자 메러디스 커처, 사건 당시 녹스의 남자친구이자 공범혐의를 받은 라파엘 솔레시토./AP뉴시스
지난 2007년 11월 2일 이탈리아 페루자의 한 아파트에서 영국 여대생 메러디스 커처(당시 22세)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반나체 상태의 시신에선 성폭행 흔적이 있었고 흉기에 찔린 자상이 40개나 발견됐습니다. 커처는 영국 리즈대학에서 유럽학을 전공하고 1년간 교환학생으로 페루자에 왔다가 변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나흘 뒤인 11월 6일 이탈리아 경찰은 커처의 룸메이트인 녹스(당시 20세)와 녹스의 애인인 이탈리아 남학생 라파엘 솔레시토(당시 23세)를 살인 혐의로 체포했습니다. 녹스는 미국 시애틀 출신으로 워싱턴 대학을 다니던 중 이탈리아어와 독일어, 창작문예 등을 공부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유학온 상태였습니다.

경찰은 녹스가 커처에게 솔레시토와 또 다른 용의자였던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루디 구데(당시 20세) 등과 단체 섹스를 하자고 제안했다가 거부당하자 감정이 상해 싸움을 벌이다 커처를 잔인하게 살해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솔레시토와 구데는 사건 당시 커처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꽉 붙잡아 녹스의 살해행위를 도왔고, 죽어가는 커처를 성폭행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경찰은 녹스가 평소 마리화나 등 마약을 복용했고 문란한 성생활을 즐겼으며 체포 직전까지 애인과 쇼핑을 즐겼다고 밝혔습니다.
이탈리아 법원이 지난달 30일 녹스에 대해 다시 살인죄를 인정하자, 녹스는 다음날 즉각 미국 방송에 출연해
이탈리아 법원이 지난달 30일 녹스에 대해 다시 살인죄를 인정하자, 녹스는 다음날 즉각 미국 방송에 출연해 "나는 죄가 없다"며 재차 억울함을 호소했다./AP뉴시스
하지만 녹스와 다른 피의자들은 혐의를 강력히 부인했습니다. 녹스는 “나는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다. 살인하지 않았으며, 성폭행이나 도둑질을 한 적도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이탈리아와 미국 언론들이 사건을 대서특필하면서 평범한 살인사건은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됐습니다. 녹스의 아름다운 외모가 크게 부각되면서 피해자인 커처의 이름은 잊혀지고 사람들은 이 사건을 ‘아만다 녹스’ 사건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대중의 관심은 사건의 진실보다도 ‘녹스의 정체는 무엇인가?’에 맞춰졌습니다. 그녀에 대한 동정 여론부터 ‘녹스에게 7명의 섹스파트너가 있었다’, ‘녹스는 살인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사이코패스다’등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각종 매체의 지면을 도배했습니다. 녹스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고, 모든 언론이 녹스를 인터뷰하기 위해 혈안이 됐습니다.

1심과 2심의 엇갈린 판결

2009년 12월 1심에서 페루자 법원은 솔레시토의 칼에서 검출된 커처의 혈흔과 녹스의 DNA를 증거로 인정해 녹스와 솔레시토에게 각각 징역 26년형과 25년형을 선고했습니다. 다른 용의자인 구데는 30년형을 선고받았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뒤에 16년형으로 감경됐습니다. 녹스가 애초 범인으로 지목했던 술집 주인 파트릭 루뭄바의 변호인은 그녀를 “천사와 악마의 두 얼굴을 가진 영혼”이라고 법정에서 공개 비난했습니다. 녹스와 솔레시토는 혐의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곧바로 항소했습니다.
2011년 2심 법원에서 최종 변론을 하기 직전의 녹스. 녹스는 2심에서 증거부족으로 살인 혐의를 벗었다./AP 뉴시스
2011년 2심 법원에서 최종 변론을 하기 직전의 녹스. 녹스는 2심에서 증거부족으로 살인 혐의를 벗었다./AP 뉴시스
2011년 10월 열린 2심 판결에서 녹스는 반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항소심 법정은 경찰이 사건 발생 40여일이 지난 뒤에야 DNA를 채취해서 표본이 오염됐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1심 판결을 뒤집고 녹스와 솔레시토에게 무죄판결을 내렸습니다.

녹스는 최후 변론에서 “나는 4년 전과 같은 사람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고통 뿐”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고 무죄 선고를 듣자 오열했습니다. 녹스의 가족들은 “악몽이 끝나서 다행”이라고 판결을 환영했고, 커처의 가족들은 “피해자는 잊혀지고 가해자만 스타가 됐다”며 분노했습니다. 감옥에 있는 구데는 “살인은 명백히 녹스가 저질렀다. 나는 성폭행에만 가담했을 뿐”이라며 “녹스는 마약에 찌들어 섹스를 탐닉하는 마녀”라고 비난했습니다. 이탈리아 언론은 무죄판결을 받고 자국으로 돌아간 녹스를 ‘폭시 녹스(Foxy Knox·여우 같은 녹스)’라고 부르며 법원 판결이 잘못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이탈리아 검찰은 “이번 사건은 언론의 굉장한 압력 속에 진행됐다”며 곧바로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

스타가 된 녹스…그녀의 정체는?

4년 만에 미국에 돌아간 녹스는 ‘방송 섭외 1순위’ 스타가 됐습니다. 녹스는 ABC 방송 등 각종 토크쇼와 뉴스에 출연해 자신이 겪었던 일을 늘어놓았습니다. 일부에선 ‘살인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방송에 나와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며 녹스를 비판했지만, 그녀를 향한 대중의 관심 속에 힘없이 묻혔습니다.
아만다 녹스 회고록 표지
아만다 녹스 회고록 표지
2012년 초 녹스는 언론재벌 루퍼스 머독 소유의 뉴스코프 계열사인 하퍼콜린스 출판사와 400만 달러 상당의 회고록 출판 계약을 맺고 돈방석에 앉았습니다. 새로 사귄 남자친구와 거리를 거니는 모습이 파파리치 사진에 찍혀 인터넷에 퍼질 정도로 녹스는 유명인사가 됐고, 실현되진 않았지만 녹스의 연예계 진출을 돕겠다는 사람도 다수 나왔습니다.

하지만 녹스에게 다시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지난해 3월 이탈리아 대법원이 무죄로 결론난 2심 판결을 파기 환송한데 이어 이번에 다시 법원이 녹스와 솔레시토에게 살인죄를 인정한 것입니다. 솔레시토는 다시 구금됐으며, 이탈리아 법원은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미국에 녹스의 신병 인도를 요청할 것을 검토 중입니다.
2009년 1심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나오는 녹스./AP뉴시스
2009년 1심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나오는 녹스./AP뉴시스
신병 인도 요청이 들어올 경우 미국 정부의 판단에 따라 녹스의 앞날은 결정될 전망입니다. 녹스는 “부당한 판결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스스로는 이탈리아에 가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녹스의 변호인 측은 다시 대법원에 상고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입니다. AP통신은 ‘미국인 중 상당수가 녹스는 사건의 희생양이며 아무 죄가 없다고 믿고 있다’고 지난달 31일 보도했습니다.

2007년에 시작된 법정싸움은 7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기나긴 다툼이 어떻게 결론 맺을지, 녹스는 과연 어떤 사람인지 여전히 미스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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