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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지하철 화재로 새까맣게 타버린 시신들…그 속에서 기적처럼 유전자분석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입력 : 2014.02.03 22:26 | 수정 : 2014.02.04 09:19
2003년 2월18일 ‘대구 지하철에 불’이라는 보도가 급보로 전해졌다. 처음엔 그냥 지하철 일부에서 불이 난 정도겠지라고 여겼는데, 속속 보도되는 현장 상황은 매우 심각했다. 화재감식팀과 희생자 신원확인팀의 선발대가 구성됐다. 신원확인팀 선발대는 바로 대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유전자분석 분야에서는 나와 임시근 박사가 동행했다.

사건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매캐한 유독 가스가 가시지 않은 상태였고 곳곳에서 연기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마스크도, 실험복도 없이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컴컴한 현장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입구 벽면에는 컴컴한 공간을 필사적으로 탈출하기 위해 벽을 더듬으며 올라간 자국이 시커먼 그을음 속에 대비되어 뚜렷이 남아 있었다. 벽면은 온통 그을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려가는 계단 바닥에는 필사적으로 탈출한 사람들의 것으로 보이는 신발, 가방, 안경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전쟁터 같았던 시신 수습 현장

지하철은 화재 당시의 고열로 모든 것이 타버리고 큰 뼈대만 흉물처럼 앙상하게 남아있었다. 지하철의 뒷부분엔 시신이 별로 없었으나 훼손 정도가 심해 완전히 탄화된 뼈만 발견되는 곳도 있었다. 맨 끝 차량 두 대에 시신이 몰려 있었다. 육안으로는 도저히 몇 명이 희생되었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아마 불을 피해 모두 맨 뒤 두 차량으로 피했다가 희생을 당한 것 같았다. 이 두 차량의 시신 상태도 고열로 심하게 탄화되어 형체를 전혀 알아 볼 수 없었다. 수없는 참사 현장을 보았지만 그렇게 심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어마어마한 고통 속에서 숨져 갔을 희생자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메어 왔다.

2003년 2월 대구 지하철 화재 현장.
2003년 2월 대구 지하철 화재 현장.

최악의 상황이었다. 보이는 것은 모두 탄화된 뼛조각과 조금씩 남아 있는 형체밖에 없었다. 유전자 분석이 가능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간의 경험상 웬만큼 탄화된 시신에서도 유전자 분석이 가능했던 만큼 최선을 다해 분석이 가능한 시료를 모두 채취했다.

다음날 차량을 현장에서 기지창으로 옮겨 시신을 수습하기로 했다. 차량 내부를 밝은 곳에서 다시 살폈더니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생각보다 많은 시신들이 그곳에 있었다. 시신 수습 작업이 본격화된 건 하루 뒤였다. 서울에서 시신 수습 및 신원 확인과 관련된 모든 장비들이 내려왔다. 각 팀별로 정신 없이 뛰었다. 현장은 마치 전장(戰場) 같았다.

희생자 신원확인은 여러 개 팀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물론 유전자분석이 가장 강력한 신원확인 방법이지만 보통 법의감정, 유전자분석, 치과감정, 유류품 감정 등 많은 팀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적인 분석을 한 후 이를 종합하여 최종적으로 신원을 확인한다. 이 사건 같이 시신이 완전히 탄화된 경우는 유전자형이 검출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각 팀별 협동이 매우 중요했다.

차량 안의 시신들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유류품 등에 대해서도 철저한 감정을 실시했다. 차량 안에서 나오는 모든 물건들에 대해 사진을 찍고, X-ray 촬영을 해 금속 등의 유류품 등을 선별했다. 유전자분석을 위한 시료 채취도 같이 진행했다. 매일 아침 8시부터 밤 12시 넘어서까지 현장 및 시신에 대한 수습 작업을 강행했다. 어떤 때는 철야를 해야 했다. 하루 종일 석면이 있는 먼지 구덩이 속에서 피곤과 추위와 싸웠다. 며칠 지나면서 모두 녹초가 됐다.

시신 수습 전 전동차 내부의 모습.
시신 수습 전 전동차 내부의 모습.


작업 속도는 예상보다 더뎠다. 생각했던 것 보다 실제 수습 과정이 쉽지 않았다. 초조한 마음에 무리하게 진행하면서 한 명이 탈진해 병원으로 실려갔다. 모두들 석면 가루를 뒤집어 쓴 터라 몸에 붉은 반점이 생겼다. 작업등의 영향으로 얼굴이 타 얼굴 표피가 벗겨졌다. 추위 탓에 감기 환자도 속출했다.

며칠 지나 지원팀이 도착하면서 속도가 조금 빨라졌다. 그 사이 한쪽에선 유족들을 상대로 희생자의 생전의 특성을 조사하고, 유가족 대조를 위한 시료도 채취했다. 채취된 시료들은 분석을 위해 바로 서울로 이송됐다.

1000개에 달했던 시료…모을 수 있는 건 다 모았다

약 2주 이상의 힘든 작업 끝에 유전자분석을 위한 검체(시신에서 얻은 시료) 채취가 끝났다. 채취는 대검찰청 팀과 같이 진행했는데 채취한 검체는 거의 1000개에 달했다. 조금이라도 유전자분석 가능성이 있는 시료는 모두 채취를 했기 때문에 시료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다. 이들을 모두를 6개의 큰 아이스박스에 넣고 봉했다. 아이스박스를 봉고차 뒤에 싣고 우리도 차에 올랐다. 봉고차는 바로 서울 본원의 실험실로 향했다. 서울에 도착하니 새벽 1시였다.

전동차 내부에서 유품을 수습하는 모습.
전동차 내부에서 유품을 수습하는 모습.


다음날 작업이 또 시작됐다. 채취해 온 검체들에서 정성들여 DNA를 분리하고, 이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분석하는 작업이 매일 밤 12시 넘게까지 계속됐다. 경력 10년 이상의 고참들이 작업에 참여했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운영하기 시작한 자동유전자염기서열분석기 덕분에 밤에도 계속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자동유전자염기서열분석기는 쉴 틈 없이 분석 결과를 쏟아 내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얻은 결과를 입력하고 이미 의뢰되었던 가족들과 가족 관계를 분석하는 작업이 계속되었다. 단 하나의 오차도 발생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결과를 일일이 점검하고 입력하고, 분석 방법을 다르게 해 교차 점검하고, 다른 사람이 다시 확인하고 하는 작업이 반복되었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검체에서 모두 유전자형이 깨끗하게 검출되었고 결과가 하나하나 쌓여 갔다. 그 사이에도 유가족의 혈액은 계속 의뢰되었다. 작업은 의외로 빨리 진행됐다. 일부 신원이 확인된 사람도 나타났다. 그러나 계속되는 작업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은 지칠대로 지쳤다. 휴일도 없이 일한 지 한 달 이상이 흐르고 있었다.

한달쯤 지나 확인되기 시작한 시신의 신원
기적처럼 모든 희생자들의 시신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어 확인 가능

일부이긴 하지만 일단 20여명의 신원을 확인해 통보했다. 유전자분석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거의 불가능할 것 같은 샘플들에서 모두 유전자형을 확보할 수 있어 자신감이 더해 갔다. 가톨릭대학교 테니스 선수였던 희생자의 신원이 확인돼 가족들이 장례식을 치렀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한 분 한 분 찾을 때마다 기분은 말도 못할 정도로 벅찼다. 너무 힘들었던 작업 과정이었지만 오로지 사명감 하나로 모든 것을 이겨 나갔다. 순간순간 체력의 한계를 느꼈지만 기다리는 유가족을 생각하면 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하철 화재 현장에서의 신원 확인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경우였다. 사실 사고 초반엔 너무 현장이 처참해 시신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유전자분석을 하고 신원을 확인하면서 다행이라고 생각된 것은 그 혹독한 상황에서도 모든 희생자들의 시신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 실험을 한 결과 채취한 샘플에 대한 결과를 거의 다 얻을 수 있었다. 그건 어쩌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자신을 꼭 찾아 달라는 호소 같았다. 나중에 우리는 분향소에 들러 돌아가신 영령들을 위해 고개를 숙였다. 만감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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