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 첫 문장 잘 쓰면 글의 절반은 쓴 것

입력 : 2014.02.04 06:00

계속 읽을지 말지를 좌우하는 첫 문장, 따분하고 뻔한 내용이라면 낙제점
"아니 이건 뭐지?" 라는 느낌 주며 궁금증 자극할 수 있어야 독자 빨아들여

이번 회부터는 여러분의 글을 한 단계 위로 도약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약 10회에 걸쳐 알려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 말씀 드리고 싶은 건 첫 문장에 커다란 공을 들이자는 것입니다.
제 경험에 비춰 본다면 영화도 처음 5분간이 인상적인 영화를 계속 흥미롭게 보게 됩니다. 시작한지 10분이 넘도록 관심을 끄는 어떤 요소도 없이 어지럽게 화면을 흔들면서 겉멋만 부리던 어떤 영화는 결국 끝까지 따분했습니다.

중요한 게 영화의 첫 장면뿐이겠습니까. 사람의 첫 인상, 노래의 첫 소절에서 첫 키스까지 모든 처음은 그 중간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첫 문장도 글의 다른 부분보다 몇 십배, 몇 백배 중요합니다. 저의 경우, 첫 문장이 잘 풀려 멋지게 써지면 글의 절반은 쓴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첫 문장은 어떻게 써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평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나 뻔한 사실, 공자님 말씀처럼 당연한 말을 문장의 맨 첫머리에 내세운다면, 그 글은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집니다. 뜻밖이거나 새롭거나 신기하거나 놀랍거나 흥미로운 내용을 써야 합니다. 글을 읽기 시작한 독자를 최단 시간 내에 글 속으로 빨아들여 계속 읽도록 호기심을 자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글의 초반에 독자를 붙들지 못하면, 따분한 TV프로그램 채널 돌아가듯 독자의 시선은 글을 떠날지 모릅니다.

새롭고 신기하고 흥미로운 내용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그 문장을 읽은 직후 ‘아니, 이건 뭐지?’하는 느낌이 들면 됩니다. 아래 두 글은 같은 인물을 다룬 글인데 첫 문장에 주의하여 비교하며 읽어 봅시다. .

<예문1>
기업체 대표인 박열 씨의 휴대폰은 일년 중 70, 80일은 꺼져 있다. 그에게 연락이 안 된다면 십중팔구 이 지구상 어느 사막이나 고산 지대나 밀림 같은 오지에 틀어박혀 있다고 보면 된다. 지난 1980년 사는 게 너무 삭막해떠났던 네팔 여행에서 새로운 충격을 경험한 후, 박씨는 한 해 너댓 번씩 세계의 오지로 날아가지 않고는 살 수 없게 됐다. 지난 22일 타클라마칸 사막 여행을 마침으로써 김씨의 오지 순례는 100회를 넘겼다.

<예문2>
전 세계 곳곳의 사막이나 밀림 같은 오지를 가 보면 관광 명소에서 느끼지 못하는 여행의 맛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삶의 새로운 활력을 찾아 틈 날 때마다 여러 나라의 오지들만 찾아다니는 사람이 있다. 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박 열씨가 그 사람이다. 그는 삶에 지칠 때면 한 해에 4~5번씩 세계의 오지로 날아가 마치 영양제 주사 맞듯 삶의 활력을 수혈받고 온다 이젠 나의 삶에서 오지 여행을 빼 놓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오지 여행이 벌써 100회를 넘겼다.

예문1이 훨씬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예문2의 첫 문장은 ‘오지엔 관광지에 없는 매력이 있다’는 뻔한 이야기를 담았지만 예문2의 첫 문장은 ‘박씨의 휴대폰이 일년 중 70,80일은 꺼져있다’고 함으로써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앞에서 제가 제시한 대로 ‘아니, 이건 뭐지?’하는 느낌을 부르지 않습니까. 잘 쓴 첫문장입니다.(실은 제가 쓴 기사의 일부인데 칭찬하려니 좀 부끄럽습니다.)

예문1의 첫문장이 재미있는 건 글 쓰는 사람이 좀더 많은 사실을 수집했기 때문입니다. 즉 취재를 잘 했기 때문에 박씨의 휴대폰이 일년중 70,80일 꺼져있다는 흥미로운 내용을 첫 문장에 쓸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재미있는 사실을 취재하고도 이걸 첫 문장에 활용할 줄 모르고 글 중간에 써 버려 맥빠지게 합니다. 어느 남학생이 ‘내 얼굴’이라는 제목으로 쓴 수필의 첫머리를 봅시다.

사람의 겉모습 중 이미지를 결정하는 제일 큰 부분은 얼굴이다. 얼굴이 마음에 들면 나는 그 사람에게 끌리게 된다. 그런데, 맘에 들지 않으면 먼저 피하곤 한다. 일단 내 얼굴은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서 좀 하얗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여자 아이들까지도 가끔 질투를 할 정도다.

어떻습니까. ‘사람의 겉모습 중 이미지를 결정하는 제일 큰 부분은 얼굴이다.’라는 문장을 읽고나서 ‘아니, 이건 뭐지?’라는 물음이 나옵니까. 안 나오죠.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첫 문장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닙니다. ‘얼굴이 마음에 들면 나는 그 사람에게 끌리게 된다. 그런데, 맘에 들지 않으면 먼저 피하곤 한다.’는 두 번째, 세 번째 문장 역시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이래 가지고는 독자를 사로잡기는 커녕 ‘너무 고리타분한 글 아닌가’하는 선입견을 줄 수도 있습니다. 이 글에선 정작 재미있는 내용이 뒷 부분에 나옵니다. ‘내 얼굴이 너무 하얘서 여자애들가지도 가끔 질투한다’는 대목입니다.바로 이런게 첫 문장 감입니다. 재미있어서 호기심을 끌기도 하고 ’너무 흰 내 얼굴에 대한 나의 생각‘이라는 글 전체의 내용을 대표하기도 합니다. 이 남학생은 그걸 첫머리에 쓰지 않는 실수를 한 것이죠. 제가 이렇게 수정해 주며 지도했습니다.

나는 남자이지만 내 얼굴을 보고 여자 아이들까지도 가끔 질투를 한다. 피부가 매끈하고 다른 아이들보다 유난히 희기 때문이다. 어릴 때 바깥 활동을 그리 즐기지 않아 햇볕을 많이 쏘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조지 오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 '1984년'의 한 장면.  오웰의 이 대표작은 지난해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가 선정한 '문학사상 가장 빛나는 첫 문장을 가진 걸작 소설 30편'에 포함됐다. “4월, 맑고 쌀쌀한 날이었다. 괘종시계가 13시를 알렸다”는 '1984년'의 첫 문장은 ‘13시’라는 이상한 시간을 설정하여 앞으로 소설이 펼쳐 보여줄 낯설고 끔찍한 빅 브라더의 세상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였다.
조지 오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 '1984년'의 한 장면. 오웰의 이 대표작은 지난해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가 선정한 '문학사상 가장 빛나는 첫 문장을 가진 걸작 소설 30편'에 포함됐다. “4월, 맑고 쌀쌀한 날이었다. 괘종시계가 13시를 알렸다”는 '1984년'의 첫 문장은 ‘13시’라는 이상한 시간을 설정하여 앞으로 소설이 펼쳐 보여줄 낯설고 끔찍한 빅 브라더의 세상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였다.
인상적이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만으로 최고의 첫 문장은 아닙니다. 그 인상적인 첫 문장이 앞으로 전개할 글의 내용과 긴밀한 연관이 있어야 합니다. 글의 전체 내용을 함축해도 좋고 글의 분위기를 암시해도 좋습니다.

2013년 1월 영국의 한 일간지는 ’문학사상 가장 빛나는 첫 문장을 가진 걸작 소설’30편을 선정했습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조지 오웰의 ‘1984년’ 실비아 플라스의 ‘벨 자’ 등 선정된 걸작들의 첫 문장 역시 멋지고 인상적일 뿐 아니라 소설 전체 내용에 관한 암시가 들어 있거나 작품의 주제가 스며 있었습니다.

“재산깨나 있는 독신남은 아내가 꼭 필요할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적인 진리이다”는 ‘오만과 편견’의 첫 문장은 영국 부르주아 계층의 부조리한 생각을 비꼬는 분위기가 가득합니다. ‘1984년’의 첫 문장은 “4월, 맑고 쌀쌀한 날이었다. 괘종시계가 13시를 알렸다”는 문장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13시’라는 설정 하나만으로 전체주의적 권력자인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낯선 세계로 독자를 안내합니다.
프란츠 카프카 작 ‘변신’의 첫 문장은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거북한 꿈에서 깨어나면서, 자신이 침대에서 괴물 같은 벌레로 바뀐 것을 발견했다”입니다.

여러분이 주로 써야 하는 논설문이나 수필의 첫 문장이 걸작 소설의 첫 문장처럼 문학적일 필요는 없겠지요. 다만 평범하지 않으면서 글이 갈 길을 예고하는 첫 문장은 모든 글에서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 회에는 첫 문장을 어떤 식으로 쓰면 좋은지를 예문을 들어가며 구체적으로 알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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