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1.28 05:39

나이듦이, 뱃살이 서글픈가요?
자, 애물단지 자식과 남편은 잊고 어깨와 허리, 다리를 움직이세요
꼬인 스텝일랑 염려 말아요, 몸을 일깨우면 누구나 '댄싱 퀸'
그대 행복해야 가족이 웃어요

김윤덕 문화부 차장
김윤덕 문화부 차장
와우~ 황홀한 밤이에요. 이렇게 꽁꽁 언 날, 한물간 뮤지컬 배우의 갈라쇼를 보러 와 주신 여러분에게 바친 첫 곡, 에디트 피아프의 '장밋빛 인생'이었습니다.

디자이너 노라노 선생이 그러더군요. 열아홉에 이혼하고 칠십 평생 손가락 마디마디에 굳은살 박이도록 옷이랑 싸워온 당신 삶을 누가 장밋빛 인생이라기에 비웃었다고. 한데 곰곰 생각해보니, 나 하고 싶은 일 원 없이 하며 살아온 인생이 장밋빛 아니면 무엇이겠느냐고요.

제 나이 마흔여덟. 죽음보다 외로움이 무서웠던 '작은 새' 피아프가 세상을 떠난 바로 그 나이랍니다. 내 생에 남은 반세기, 장밋빛이 될지 먹빛이 될지 모르지만 요즘 살짝 우울합니다. 젊고 예쁜 후배들에게 밀려나 서럽냐고요? 지들은 안 늙나요 뭐? 군살 늘어 서글프냐고요? 음~ 모르시는구나. 여자의 진정한 매력은 40대에 무르익고, 그 관능적 아름다움은 적당히 나와준 아랫배, 가사노동으로 튼실해진 이 허벅지에서 비롯된다는 거! 어우, 동의하시면 박수 좀 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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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살보다는 제 중학생 딸아이 때문에 나날이 잿빛입니다. 배우가 딸도 키우느냐고요? 화장발, 반짝이 의상발에 감춰진 저 또한 일·가정 양립을 위해 발버둥치는 대한민국 여인입니다. 공연 있는 날이면 심봉사 젖동냥하듯 이집저집 맡기느라 눈물 콧물로 키웠지요.

얼마나 착한 딸이었게요. 공연 끝난 다음 날이면 늦잠에서 부스스 깨어난 엄마 앞에 빗과 고무줄을 들고 나타났지요. "머리 빗겨줄게. 엄마를 백설공주로 만들어줄게." 둘이서 탭댄스 추며 노래할 때 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엄마였어요. 언제고 제 첫 공연을 보고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려주던 아이였는데, 맙소사, 어느 날 갑자기 등을 돌린 겁니다. 방문은 늘 굳게 잠겨 있고, 학교에선 허구한 날 벌점 문자가 날아들고요. 행여 넘어질까 상처 날까 가슴 졸이는 엄마는 안중에도 없이, 그저 친구들만 쫓아다닙니다. 귀를 막고 내 말은 아예 듣질 않아요. 누구 말마따나 '고스톱' 먼저 가르칠 걸 그랬나 봅니다. 낙장불입, 순간의 실수가 인생을 얼마나 뒤흔드는지, 비풍초똥팔삼, 인생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광박, 인생에 '한방'은 있어야 하지만, 피박, 사소한 것이라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는 진리를 진작에 가르쳤으면 저리 비뚤어지진 않았을까요.

그러자 친정엄마 혀를 차십니다. "너도 저랬다. 열 배는 더했다." 세 살 적 동네 노인들 모아놓고 장미화 흉내를 내고, 박수 안 치면 박수 좀 치시라고 으름장까지 놓던 별종이었다네요. 삐딱선은 중학 시절 타기 시작했지요. 연기학원 보내달라 졸랐더니 구식인 울 아버지, 형편도 안 되지만 딸 하나 있는 거 딴따라로 키울 수 없다며 금족령을 내리셨죠. 사흘 낮 사흘 밤을 굶었어요. 빈속에 장이 꼬여 떼굴떼굴 구르면서도 물 한 방울 먹지 않자 아버지가 두손 두발 드셨답니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왕따당할 만큼 성깔 별난 딸에게 단 한 번도 "넌 왜 그렇게 생겨먹었니?" 묻지 않았어요. 공부하란 말씀도 안 하셨죠. 보자기 뒤집어쓰고 꽥꽥거리면 "노래하고 춤추는 게 그리도 좋아?" 웃기만 하셨어요. 배우가 되어 고꾸라질 때마다 엄만 그러셨죠. 남들이 뭐래도 넌 너를 믿어야 한다고. 그래야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엄마의 꿈이 가수였다는 걸, 전 아주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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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전 배우 안 했으면 정신병에 걸렸을 겁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딸로 인해 솟구치는 변화무쌍한 오감(五感) 덕분에 리얼 연기 작렬하지요. 하느님은 내게 뛰어난 배우가 되라고 딸을 주신 모양입니다. 은퇴는 언제 하냐고요? 더 이상 춤을 출 수 없을 때! 막이 오르고 무대에 조명이 켜지면 나의 심장은 꿈틀대다 못해 터질 것 같답니다. 아직도 연기에 갓 입문한 그날처럼, 무대에 나가려는데 의상이 없는 꿈, 노래하려는데 목소리가 안 나오는 악몽을 꾸지요.

[김윤덕의 新줌마병법] 어느 뮤지컬 여배우의 '장밋빛 인생'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맘마미아', 그중에서도 '댄싱 퀸'을 부를 때면 얼마나 행복한지요. "당신은 춤출 수 있어요. 자이브를 출 수 있잖아요. 탬버린에서 나오는 리듬을 느껴봐요. 당신이 바로 댄싱퀸이에요." 이 노랠 부르면, 내 안의 모든 두려움이 사라져요. 불가능은 없다고 믿었던 스무 살 그때처럼 무모하게 도전하다 독박 쓸지언정,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고고(go go)' 할 것 같은 배짱이 솟구치지요. 여러분도 그렇지 않나요?

자, 몸을 움직여보세요. 어깨부터 천천히, 허리도 부드럽게 돌려보시고요. 스텝도 한번 밟아볼까요? 애물단지 자식은 잊어버려요. 몸은 간달프요, 정신연령은 피터팬인 남편도 잊자고요. 수십 년간 헌신짝처럼 내팽개쳤던 그대의 몸만 바라보세요. 몸에게 '미안했다' 사과하세요. 그대가 행복해야 가족이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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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 이 땅의 여인들을 열일곱 소녀 시절로 되돌려놓는 노래, 이번 설에도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 전 부쳐야 할 그대에게 바치는 노래입니다. 정훈희의 '꽃밭에서'.

김윤덕 |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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