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1.27 05:20 | 수정 : 2014.04.09 11:49
지난 18일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기념관이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哈爾濱)역에서 개관되었다. 개관에 즈음해 이 기념관의 설립 과정 중 지난 30여 년간 중국 정부의 태도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저격한 이 쾌거의 기념관을 만들려고 많은 사람이 꿈을 꾸었다. 아마 사건이 발생한 1909년부터 한 세기 간 이런 꿈은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가 이 일을 알게 된 것은 1982년이다. 그때부터 30여 년간 많은 재외동포와 한국인이 안중근의사 거사(擧事)의 기념물을 만들려고 끊임없이 하얼빈을 다녀갔다. 그러나 흑룡강성 정부는 모든 제의를 거절했다. 하다못해 저격한 자리에 표지물, 이를테면 말뚝이라도 세우고 글자 몇 자 적자고 해도 안 된다고 했다. ‘한국에 대한 선입견 때문일까?’ ‘북한을 의식해서일까?’ 라는 생각이 들어 “북한과 같이 하면 어떻겠는가”라고 제의해도 요지부동이었다. 중국정부의 속셈은 도대체 무엇인가? 알 바가 없었다.

그러다가 1992년 10월 필자는 그 원인을 알 수가 있었다. 1991~95년 필자는 북경에서 해마다 조선족대학생 운동회를 조직했다. 남학생 축구와 여학생 배구 경기를 열었는데, 2개월 간의 예선전을 거치고 마지막 결승전 날 저녁 큰 잔치를 여는 것으로 끝을 낸다.

1992년의 결승전은 10월 25일(일요일) 중국인민대학 운동장에서 치르고 그 학교의 식당에서 잔치를 치르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결승전이 끝나자마자 대학 측에서 약속과 달리 “식당을 빌려주지 못하겠다”는 긴급 통보를 해왔다. 뿐만 아니라 교내 다른 장소도 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원인은 일본천황이 중국을 방문하는 특수기간이기 때문이란다. 일본천황은 10월 23~28일 중국을 방문했다.

조선족대학생 운동회는 경기 자체보다 결승전 후의 잔치가 더 중요한 행사다. 600여 명의 조선족대학생이 모여 술을 마시고 노래 부르며 춤추는 오락은 정말 장관이다. 그 열광적인 장면에서 민족자부심이 최고로 고양되고 민족의 얼이 재삼 확인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런 중요한 행사를 치르지 못한 필자는 원통하기 짝이 없었다.

필자는 고위층 친구를 통해 사석에서 그 원인을 알아보았다.
“일본천황이 뭔데 우리 활동까지 구속하느냐? 만족스러운 답을 받지 못하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하자 그쪽에서 “중국 개혁개방에 필요한 자금은 대부분 홍콩, 대만, 해외화교 및 일본의 투자와 융자 형태로 들어온다. 일본의 투자와 융자가 외국 자본의 80% 정도를 차지한다. 만약 일본 자본이 끊기면 중국의 근대화는 큰 곤란을 겪게 된다. 이 때문에 일본을 자극하지 말라는 것이 국가의 중요 시책이다”

그때서야 나는 깨달았다. ‘아하! 이것이 바로 안중근 기념물을 반대하는 이유로구나!’

당시 일본군이 과거 학살만행을 저질렀던 남경(南京)에선 “일본으로부터 전쟁배상금을 받아내야 한다”는 민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정부는 일본천황의 방중 기간에 반일 데모가 일어날까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조선족운동회 모임에서 누군가가 불쑥 ‘일본의 전쟁배상금을 청구하자’는 구호를 외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나? 수백 명이 이에 호응하면서 그 열기가 가두로 확산돼 전 북경시가 휘말려들면 어찌 되겠나? 사태에 대한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당신은 행사를 막은 당국에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 그들의 말을 듣고 필자는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10년이 지난 후, 한 번은 한국 모 기관의 두 분이 북경으로 와 필자를 찾았다. “일본이 교과서로 역사를 왜곡한 행위에 대해 한국의 온 국민이 의분에 차 들끓는데 중국은 왜 건성으로 신문에 손바닥만 유감 성명을 발표하고 마느냐?”고 항의했다.

필자는 이에 대해 “일본만 역사교과서를 왜곡했나? 6·25를 북침이라는 중국의 역사교과서는 왜곡이 아닌가? 일본보다 더한 왜곡일 지 모른다. 그런데 왜 한국국민은 중국에 대해 의분에 차 들끓지 않나? 왜 천안문 앞에서 손가락 자르며 농성하지 않나? 중국은 일본의 도움이 필요하므로 참고 있는데 한국도 중국이 필요하기 때문에 묵과하는 것이 아닌가? 역사나 정치라는 것이 다 그렇고 그런거 아닌가? 앞으로 중국이 일본의 도움이 필요치 않을 때 어떻게 하나 보라. 한국보다 더 의분에 차 들끓지 않을 거라고 자신할 수 있나”라고 말했다. 한 시간 예정됐던 우리의 대화는 10분만에 끝났다.

필자의 예견이 맞았다. 2005년 반파쇼전쟁 승리 60주년 때 중국에 반일을 주제로 한 영화와 드라마가 대거 쏟아져 나왔다. 중국은 대형 드라마 한편을 제작하는데 10년이 걸리는 비효율적인 국가다. 중국은 지난 10년간 드라마를 만들며 칼을 갈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731세균무기문제 등을 공개했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더 많은 화제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지금 중국은 G2로 부상했다. 외환보유액이 가장 많은 나라다. 중국으로서는 일본의 도움이 이전만큼 중요하지 않게 됐다. 국력이 계속 성장하는 중국이 앞으로 ‘문화 반일(反日)’을 넘어 ‘정치 반일’과 ‘군사 반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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