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1.26 17:19 | 수정 : 2014.01.27 08:24

나중에 법무부장관까지 오른 인물…그와의 악연 이어져

초임검사 시절, 사건 처리 과정에서 검찰 조직 내부의 윗사람들로부터 질책과 면박을 당했던 사례는 이밖에도 수두룩하다. 아직 신출내기로서 미숙한 측면도 없지 않았겠지만 검찰 간부들이 직책을 이용해 사건을 마음대로 주무르려 했던 측면도 다분했다. 그렇게 해서 벌어진 충돌이 대부분이었다.

한번은 남편이 바람을 피워 제기된 이혼소송과 관련한 사건을 처리하게 되었다. 여배우 출신의 어느 며느리가 사건의 당사자였다. 무술배우 출신인 그녀가 인천의 부잣집 아들에게 시집을 갔다가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파는 바람에 파경에 이르렀던 사건이다. 문제는 시어머니도 아들의 외도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이혼 법정에서 그런 사실이 없다며 잡아뗐던 것이다.

여배우 출신 며느리가 시어머니 위증 혐의로 고소한 사건
시어머니, 아들 외도 사실 알고도 법정에서 딱 잡아떼

결국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위증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고, 그 공방이 계속 이어지다가 드디어 검찰로 넘겨진 사안이었다. 일반적으로 위증 혐의 수사기록은 두께가 얇은 편인데 그 사건기록은 두툼했다. 증거는 없이 정황적 진술로만 공방이 이뤄진 때문이었다. 경찰 판단은 일단 무혐의 쪽이었다.

그러나 고소인을 불러 얘기를 들어보니 입장이 딱했다. 그녀는 얘기를 하면서도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처음부터 다시 기록을 훑어보다가 그 남편이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있다는 아파트 부분에 눈길이 쏠렸다. 뭔가 문득 떠오르는 느낌이 있었다.

일러스트 김도원 화백
일러스트 김도원 화백

아파트 경비원 조사 과정에서 그 남편의 방문기록이 적힌 메모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결정적인 증거였다. 더 나아가 그 메모 자체가 고소인 시어머니의 부탁으로 기록한 것이라는 진술까지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시어머니 위증 혐의 확인해 구속영장 청구하려 했으나
그와 친분있던 대검 검사장, 욕 퍼부으며 사건 개입

문제는 이 대목에서 다시 시작됐다. 그 시어머니에 대해 위증 혐의로 영장을 청구하기로 방침을 정했으나 즉각 간섭이 들어온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부장검사로부터 호출이 떨어졌다. 부장검사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 시어머니가 대검 검사장을 개인적으로 잘 안다고 하는데….” 가볍게 처리하면 어떻겠느냐는 뜻이었다.

하지만 검찰 간부를 안다는 이유로 가볍게 처리하기에는 죄질이 너무 악질적이었다. 사안에 대해 자초지종을 설명을 드렸더니, 부장검사도 “그렇다면 자네가 알아서 처리하라”며 한발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 영장을 쓰고 있는 사이에 전화가 걸려왔다. 그런데 전화통을 집어든 직원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지는 것을 곁눈질로도 느낄 수 있었다. 한마디 대꾸도 못하고 벌벌 떠는 모습이었다. 내가 전화를 받았더니 “네가 서 검사냐”라며 다짜고짜 욕설이 튀어나왔다.

나에게는 한마디 말할 틈도 주지 않고 험한 욕설이 이어졌다. 그 시어머니와 알고 지낸다는 대검의 간부였음은 물론이다. 기왕 욕까지 먹었는데 나로서도 더 이상 굽힐 필요가 없었다. 당초 방침대로 그대로 영장을 작성해서 결재를 올렸다.

그러자 부장검사가 나를 다시 호출했다. 자기도 똑같이 전화로 욕설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기소는 하되 불구속으로 처리하면 안 되겠느냐”며 내 생각을 물어왔다. 나로서도 한걸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끝내 불구속으로 낙착되고 말았다. 사회정의를 세운다는 검찰이 연줄에 의해 마치 사조직처럼 움직이고 있었던 셈이다.

당시 나는 초임검사에 불과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선배들처럼, 그야말로 모든 것을 소화해서 넘길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검찰 내부의 이러한 모습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얘기가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자기 집무실로 불러 호통 치기도…
검찰을 지저분하게 만들었던 수치스런 얘기

며칠 지나서 그 대검 간부가 문제의 사건 기록을 전부 갖고 오라며 나를 자기 집무실로 불렀다. 나름대로 브리핑을 준비하고 집무실을 찾아갔다. 그는 몇 마디를 듣다가 기어코 신경질적인 호통을 내뱉고 말았다. “야, 네가 총장 다 해 먹어라.” 기록은 들춰보지도 않았다. 애초부터 기록을 보려고 부른 것이 아닌 듯했다.

나에게 욕설을 퍼부었던 그 대검 검사장은 그 뒤 법무장관에까지 올랐다. 부하 직원에 대한 배려 부분만 제외한다면 나름대로는 유능했던 인물이다. 문제는 그와의 악연이 그 뒤로도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내 개인적인 얘기이지만 동시에 검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지저분하게 만들었던 수치스런 얘기이기도 하다.

이 사건엔 후일담이 있다. 법원은 이 사건으로 기소된 그 시어머니에 대해 몇차례 공판을 한 뒤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그런데 재판장이 선고를 하는 도중에 피고인이던 그 시어머니가 혼절 상태에 빠져 끝내 사망하고 만 것이었다. 너무 긴장했던 나머지 “징역 O년, 집행유예 O년”이라는 선고 부분에서 앞의 징역 부분만 듣고는 충격을 받았던 때문일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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