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1.14 06:00

논설문은 사회적 문제에 대한 생각들을 늘어놓는 글이 아니라 자기 주장 밝히는 글
“이런 주장이 옳지만 저런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는 식의 ‘兩非論’ ‘兩是論’은 곤란

오늘부터는 3회에 걸쳐 논설문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함께 생각해 봅시다. 논설문은 어떤 주제에 관해 자신의 생각, 혹은 주장을 체계적으로 밝히는 글입니다. 주장이나 생각이 뚜렷하게 드러나야 좋은 논설문입니다. 그런데도 학생들에게 논설문을 써 보라고 하면 도무지 무슨 주장을 하려는 것인지 알기 어려운 글을 쓰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문장 하나 하나, 단어 선택은 흠잡을 데가 별로 없는데 글 전체의 문맥은 횡설수설에 가까와 이상한 글이 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학생들의 교복과 두발 자유화, 이렇게 생각한다’라는 제목을 주고 짧은 논설문을 써 보라고 했더니 이렇게 쓴 학생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학생 두발과 복장 자유화가 이뤄지면 학생들 품행이 더 나빠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우리 학교의 경우 두발-복장 자유화를 했지만 학생들 태도가 더 나빠지지는 않았다. 세계에서 학생들 두발과 복장을 제한하는 나라는 드물다. 세계 흐름에 맞춰 자유화하는 것은 좋은 움직임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붉은색 등으로 머리를 염색하거나 퍼머한 것을 보고 성인들이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두발 복장 자유화는 장점과 단점을 모두 지니고 있다. 획일적으로 실시하기보다는 각 학교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필자가 두발-복장 자율화를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를 잘 알 수 없어 갑갑했습니다. 글의 앞머리에서는 “자유화를 했지만 학생들 태도가 더 나빠지지는 않았다”고 하여 자유화를 지지하는 줄 알았더니 학생들의 염색이나 퍼머에 대한 거부감을 언급해 자유화를 전면 지지하는 것은 아님을 밝혔습니다. 글의 끝 부분에서는 자유화가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갖고 있으니 학교의 자율에 맡겨 실시해야 한다는 ‘지당하신 말씀’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본인의 주장이 모호합니다. 이런 글은 제대로 된 논설문이라고 할수 없습니다. 같은 주제에 관해 다른 학생이 쓴 글 한 편을 비교해서 읽어 봅시다. 학생의 두발-복장 규제가 인권 침해라는 입장에서 자신의 주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학생 두발-복장 자유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운다. 그러나 획일적인 것이 학생다운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학생의 본분은 배움인데, 배움은 오직 학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교우 관계,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 등이 모두 배움이다. 개성을 표현하는 것은 학우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는 과정 중 하나다. 이를 위해서도 복장-두발 자유화는 필요하다. 학생이 자신을 꾸미는 일에 시간을 쏟으면 학업에 지장이 있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학생이 하루의 모든 시간을 학업에 쏟는 것도 아니고, 모든 시간을 자신을 꾸미는 일에 소비하는 것도 아니다. 학생은 학생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헌법에 명시된 신체의 자유를 누릴 권리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
청소년 두발 규제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 모습(2005년). 사회적으로 찬성-반대가 날카롭게 부딪치는 쟁점을 다루는 논설문을 쓸 때는 자신의 주장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청소년 두발 규제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 모습(2005년). 사회적으로 찬성-반대가 날카롭게 부딪치는 쟁점을 다루는 논설문을 쓸 때는 자신의 주장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논설문은 사회적 문제에 대해 생각나는 것들을 이것저것 늘어놓는 글이 아닙니다. 주장을 명확하게 밝히는 글입니다. 학생 복장과 두발 문제 처럼, 논설문의 논제들 중에는 찬성-반대의 두 의견들이 맞서는 주제들이 많습니다. 논쟁적인 테마를 논설문에서 다룰 때는 특히 자신이 어느 편을 지자하는지 밝히는 것이 필요합니다.

글을 쓰는 자신의 의견 자체가 명확하게 굳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 모든 일엔 긍정적인 면도 있고 부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장점이 많지만 단점도 있다’는 식으로 모호하게 쓰면 논설문으로서의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습니다. 잘 생각하여 자신의 견해를 정리하고 일관성있게 주장을 전개해 나가야 합니다. 수필을 쓸 때도 ‘내 얼굴’이란 제목이 주어졌다고 하여 얼굴의 이모저모를 산만하게 나열한 글보다 내 얼굴에 관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에 초점 맞춰 쓴 글이 더 나은 평가를 받을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쪽 저 쪽을 모두 비판하는 양비론(兩非論)‘이나, 이 쪽도 괜찮고 저쪽도 옳다는 식의 ’양시론(兩是論)‘은 곤란합니다.

조선 시대 황희 정승의 일화가 떠오릅니다. 어느 날 황희 정승의 두 하녀가 다투다가 “누가 잘못했는지 판가름을 하자”며 정승에게 달려왔습니다. 한 하녀가 다른 하녀의 잘못을 낱낱이 말하자 황희 정승은 “네 말이 옳다”고 두둔했는데, 뒤이어 다른 하녀가 상대의 잘못을 일러바치자 정승은 이번엔 “그래, 네 말이 옳다”고 했습니다. 이걸 지켜보던 정승의 조카가 “아저씨, 왜 둘다 옳다고 하고, 바른 판가름을 해주지 않습니까?”라고 따지자 정승은 “그래, 네 말도 맞다”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다양한 의견이 있으므로 같은 생각을 여러 사람에게 강요하는 건 좋지 않다는 것을 일깨우는 일화입니다. 황희 정승의 이야기는 포용을 강조한 것인데, 한 사람이 쓴 글 안에서 ’이런 주장도 옳고 저런 주장도 일리가 있다‘는 식으로 쓴다면 낙제점을 받기 쉽습니다.

논설문을 쓸 때 핵심적인 문제를 정면으로 언급하지 않고 비켜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입니다. 미국의 어느 식당이 6세 이하 어린이들의 출입을 금지해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떠들고 장난치며 문제를 일으켜 식당의 공공 질서를 깨뜨리는 일이 많자 고민끝에 취한 조치였죠. 어떤 시민들은 ‘잘 했다’며 찬성의 입장을 밝혔지만,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우리는 외식도 하지 말란 말이냐”고 반대했습니다. 한 학생이 이 문제에 관해 쓴 논설문을 봅시다.

<요즘 아이들은 자유분방하지만 그에 따른 적잖은 문제가 이런 ‘공공장소에서의 예절 무시’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어린이들의 행동은 “가정 교육을 제대로 받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는 어른들의 생각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여기엔 문제가 있다. 개념을 상실한 아이들도 많지만, ‘아이들에 대한 개념’을 상실한 어른들도 많다. 어린이, 청소년을 돌보고 책임지는 것은 일차적으로 어른들의 책임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너무나 말을 안 듣기 때문에 더 이상 꾸짖을 수 없다’라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통제하고 타이를 것인지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

이 글은 아이들 교육의 여러 문제를 짚고 있지만 필자의 주장이 잘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개념을 상실한 아이들도 문제지만, 아이들에 대한 개념을 상실한 어른들도 문제다’는 식으로 양비론 비슷한 입장만 보이고 있습니다. 정작 ‘6세이하 식당출입 금지’에 대해 필자가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핵심을 비켜간 것이죠. 논설문은 이렇게 쓰면 안 됩니다. 좋은 논설문을 쓰려면 잘 쓴 논설문들을 열심히 읽어보면서 어떻게 주장을 펴고 있는지를 배우는 게 좋습니다. 가령 조선일보 사설들이 좋은 자료가 될 것입니다. 사회적인 여러 문제에 대해 신문사가 어느 쪽을 지지하는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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