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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갑식의 하드보일드] 불륜 스캔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변양균 前 청와대 정책실장

입력 : 2014.01.11 07:39

'그때 그 사건' 반성은 하지만 후회는 안해… 그 여자가 쓴 책 읽어보지도 않았어요


잊을수 없는 盧 前대통령… 사표낸 날 ? 뒷산으로 불러
'부인이 가장 상처받을 테니 잘 위로해 드리세요' 합디다


성장에 반대하는 건 바보들
한국, 1998년부터 성장만으론 살아갈 수 없는 나라 됐지만


1000년된 나무도 커야 살듯… 성장은 국가의 필요조건


코미디 같은 보수 對 진보
北 붕괴시 약 100兆 들어요… 누가 손해겠어요? 부자예요
그런데도 보수는 찬성해요, 반대로 진보는 돈 안들이고 지지자 생기는데 반대해요

[Why] [문갑식의 하드보일드]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반성은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옆에‘입춘대길’이라는 한문이 적혀있다. 과연 그에게도 새봄은 희망의 계절이 될 수 있을까. / 문갑식 기자
가족을 지키며 불륜(不倫)도 쟁취하려는 야망을 가졌던 사내를 만나러 가고 있다. 변양균(卞良均·64)은 노무현 정부에서 기획예산처장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다. '노무현 경제'의 설계자요, 집행자였던 인물이다.

남녀의 막장 드라마가 조선일보 특종 보도로 밝혀지면서 이후 행각은 중계방송되는 듯했다. 여자는 수인(囚人)번호 4001번을 달고 1년 6개월 동안 복역했다. 남자는 다섯 가지 혐의 중 직권남용죄에서 유죄(집행유예)를 받았다.

한국 사회는 사건이 사건을 덮는다. 여자가 자서전을 들고나오지 않았다면 이 남녀의 일도 잊혔을 것이다. 여자는 책에서 기자들이 공짜 밥 먹고 공짜 술 마시고, 공짜 명품까지 챙겨줬는데 자길 배신했다고 주장했다. 책에는 자기 몸을 탐한 기자와 유명 대학 총장 이름까지 나온다. '내가 당한 만큼 너희도 당해봐라'는 식이다. '일부함원 오월비상(一婦含怨 五月飛霜)',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 내린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여자의 붓방아엔 브레이크가 없었다. 변씨를 '똥아저씨'라고 부르며 첫 만남, 첫 성관계, 도피 중 나눈 대화까지 깡그리 기록한 것이다. 사마천(司馬遷)이 살아 있다면 이 노골적 기술(記述)에 놀라 자빠졌을 것이다.

이렇게 고초 겪었으면 아내의 바람처럼 침묵하면서 살 일인데 변양균은 2012년부터 세상에 슬그머니 고개를 내민다. '노무현의 따뜻한 경제학' '어떤 경제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라는 두 권의 책을 들고서다. 변 전 실장은 자기 때문에 고통받다 세상을 뜬 주군(主君) 노무현을 말하고 싶어 했다. 기자는 여자와 그 여자 때문에 받은 고통을 감내한 아내의 얘기를 듣고 싶었다. 이것은 상반된 목적을 가진 두 사람의 기록이다.

―노 전 대통령이 어떻게 해줬길래요.

"사표를 내던 날 부르셨어요. 관저(官邸) 뒷산 벤치에 앉아 잊을 수 없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일 상처받을 사람이 부인이니 부인 잘 위로해 드리세요.' 본인이 직접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권양숙 여사께 부탁했답니다. 다음 날 권 여사가 제 아내를 따로 만났어요."

―대통령도 엄처시하(嚴妻侍下)였다던데 동병상련이었나요?

"권 여사와 관련된 루머는 저도 들었는데…전부 엉터리입니다. 뭐, 권 여사가 골초라서 청와대 벽지에 냄새가 배 몇달 간다는 이야기 있었죠? 대통령이 권 여사 때문에 담배를 끊은 분입니다. 정 못 참으면 참모 회의할 때 한 대씩 얻어서 그것도 숨어서 피웠고."

―골프의 대가란 얘기도 있었습니다.

"거짓말입니다. 2007년 봄인가. 대통령 부부가 우리 부부를 초청해 골프를 쳤는데 권 여사, 핸디 100은커녕 초보티가 확 나던데요. 그 소문을 제게 전한 아내부터 감동했는걸요."

―골프 못 쳐서요?

"카트 타는데 제 자리 내주려고 대통령이 쪼그려 앉는 모습을 보고 아내가 그러더군요. '누가 누굴 모시는지 모르겠다. 당신은 저런 대통령 모셨으니 다른 대통령은 앞으로 못 모실 거다'라고요."

―노 대통령이 인간적이라는 건 인정합니다.

"그분 처음 만난 게 2002년 경선(競選) 때였어요. 김근태·이인제…, 이런 주자들이 당료들을 불렀죠. 전 정부 파견 수석전문위원으로 몇번 가봤는데 재미없는 자리였어요. 제 부하 한 명이 머뭇거리며 노무현 모임에 가자더군요. 가봤는데 달랐어요. 축제 같았습니다. '자발적인 지지가 저런 거구나' 하고 느꼈죠."

―그 부하는 왜 머뭇댔는데요.

"절 노 대통령이 속해 있는 집단과 달랐다고 본 거 같아요. 나는 가해자, 그 사람들은 피해자…."

―그게 바로 인간적이라던 노 대통령의 친노(親盧)가 종파주의자, 분열주의자처럼 비치는 이유 아닌가요?

"노 대통령은 한·미 FTA를 추진했습니다. 친노가 그 문제점을 지적하는 건 괜찮지만 '안 된다'는 도그마에 사로잡히면 안 됩니다. 제주해군기지도 노 대통령 시절 추진됐어요. 해군기지의 환경문제나 이런 걸 지적하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념적으로 접근해 '안 된다'면 곤란하죠."

―한·미 FTA는 유령(幽靈)같이 선거 때마다 등장합니다.

"제가 가장 믿고 맡긴 협상 책임자가 대통령께 보고하기 전 가져온 서류에 '경우에 따라 깰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간 겁니다. 크게 질책하고 수정을 지시했는데 정작 대통령 앞에서 그 얘길 또 꺼내요. 제가 대통령 앞에서 화낸 게 그때 처음입니다. 진보, 386 중에 반대가 굉장히 심했습니다."

―왜 진보, 386은 반미(反美)를 상징처럼 달고 다닐까요.

"저보고 친미주의자냐 반미주의자냐고 묻는다면 친미를 자처하겠습니다. 주구(走狗)나 앞잡이가 되는 것은 곤란하지만 우리나라는 미국과 가까워지지 않고서는 살아나갈 수 없습니다."

―지금 중국·일본의 움직임을 보면 제주해군기지도 안 해선 안 될 거였죠.

"제주기지는 역사가 부산과 거제를 잇는 거가대교 건설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북한이 거가대교를 파괴하면 진해해군기지가 고립되니 신항(新港)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거가대교가 폭격당할 정도면 전쟁이 끝난 거나 마찬가지니 전제가 잘못되긴 했지만… 어쨌든 그 논리를 받아 우리도 트인 곳에, 급할 때 나가서 싸울 수 있는 해군항을 만들자고 의견이 모인 겁니다."

―변 실장은 친놉니까.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을 친노라고 한다면 전 친노죠. 지난달 일요일 서울시청 행사 같은 데는 안 나갔습니다. 1월 봉하마을 추모 행사에는 갔습니다."

―친노는 진보 좌파입니까?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좌파의 실종'이란 책, 무척 공감합니다. 좌파는 가난하고 힘든 사람을 도와야 하지만 그 사람들만으론 안 됩니다. 지식인, 부자, 중산층과 같이 가지 않으면 집권 못 합니다. 노무현이란 정치인은 힘들고 가난한 사람이 더 타격받지 않는 정책을 펴려 했던 것이고 지금 친노 중엔 다수가 형편없거나 친노를 이용하려고만 하죠."

―그런 논리면 문재인도 가짜 친노 등쌀에…. 그분도 친노 맞습니까?

"그분만큼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작년 대선 때 문제가 있었어요. 저는 당시 건강이 안 좋아 사이드에서 조언만 했는데, 이정우 교수(문재인 캠프 좌장)와 다툰 적이 있어요. 제가 내놓은 정책을 전해들었는지 '후보의 정체성을 훼손한다'며 발끈하더군요. 선거가 뭡니까. 51대49 아닌가요? 문재인이 학잡니까? 정체성 운운하게?"

―그럼 안철수는 어떻습니까.

"그 사람 정당하게 성공한 거 맞잖아요. 그런 분이 지도자로 등장하면 민주당에 '메기 효과'가 날 겁니다. 피라미 노는 물에 메기가 등장하면…정신 차리게 해줄 거란 얘깁니다."

―친노와 민주당이 의심받는 게 대북(對北) 자세죠.

[Why] [문갑식의 하드보일드]
사진 왼쪽에서 두번째부터 차례로 노무현 전 대통령,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 조선일보 DB
"민주당은 '민주'라는 이름을 버려야 집권합니다. 문제는 버릴 수 없다는 데 있죠. 제가 이정우 교수 못지않게 놀란 게 있어요. 임수경씨를 국회의원 시킨 거. 우리 정치를 보면 극단이 판을 칩니다. 진보나 보수나 1/n이 n/n 노릇 하려 하잖아요. 주장도 전부 구닥다리고."

―뭐가 구닥다리란 겁니까.

"북한 붕괴, 보수는 찬성하고 진보는 반대하잖아요. 거꾸로 된 겁니다. 북한이 망하면 어떻게 됩니까. 2000만명에게 한 달에 50만원씩 1년에 12개월씩 보조금을 줘야 할 텐데, 그거 한 100조 됩니까?"

―(한참 계산하고 있는데)

"그 돈을 어떻게 마련합니까? 북한 망하면 진짜 손해는 부자들입니다. 반대로 진보 좌파는 돈 안 들이고 지지자 생기고 좌빨이나 종북(從北) 딱지도 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서로 반대로 하니 코미디죠. 민주당은 북한에 대한 개념 규정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어떻게요?

"북한은 '왕조 전제 체제'입니다. 3대에 걸쳐 20대가 왕이 된 사례가 공산주의·사회주의 국가 어디에 있습니까. 북한 영문 국호가 DPRK인데 데모크라틱이 있어요, 피플이 있어요, 리퍼블릭이 있어요. 언젠가 미국 교과서를 봤는데 우리 역사를 이렇게 기술하더군요."

―왕조(王朝)로?

"고려는 룰드 바이(Ruled by) 몽골리아, 조선은 룰드 바이 만추리아(Manchuria), 딱 한 번 대한제국이 있다가 1910년부터는 오큐파이드 바이(Occupied by) 재팬. 그러곤 김일성 일가에게 지배당하니 북한 인민은 왕조를 벗어난 적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 지금도 가장 원초적인 본능인 먹는 문제를 배급제로 통제하죠. 최근 그들 스스로 왕조임을 자임하는 징조도 있어요."

―무슨 소린가요.

"백두 혈통이란 말 많잖아요. 스스로 '김씨 왕조=백두 혈통'을 인정한 거죠. 그런 왕조와 통일이 되면 별의별 문제가 다 생길 겁니다."

―통일 비용 얘깁니까.

"자본주의 경험을 전하려면 모든 게 인건비로 귀결됩니다. 교사 전원 교체해야죠, 검찰·경찰·변호사 싹 바꿔줘야죠. 일자리 줘야죠. 북한 산업 시설은 어떻습니까. 동서독이 통일됐을 때 가장 골치 아픈 문제가 이른바 '스크랩 비용'이었습니다."

―스크랩 비용?

"차라리 없으면 낫죠. 철거하는 데 어마어마한 비용이 소요됩니다. 화학 공장 같은 거는 철거비가 건설비의 3배입니다. 제가 황장엽 선생 귀순했을 때 합동신문조에 들어갔다가 하루 만에 그만두겠다고 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황 선생이 자본주의를 너무 몰라서?

"그분은 남한은 고급, 북한은 저급품 생산하면 서로 보완관계 아니냐고 하던데 그건 자본주의 경제학을 너무도 모르는 겁니다. 원칙은 저급품이라도 중국 거나 베트남 거를 쓰는 게 맞는 겁니다. 잘못하다간 경제학 원론 강의하고 나올 것 같아서 하루 만에 국정원 간부한테 '별 도움이 안 되겠다'고 하고 중단했습니다."

―다가올 통일 비용을 마련하려면 성장을 더 해야겠죠.

"1998년부터 우리나라는 성장만 가지곤 살아갈 수 없는 수준의 국가가 됐습니다. 그렇다고 성장에 반대하는 것은 바보들이죠. 1000년, 2000년 된 나무도 성장을 해야 살 수 있습니다. 사람도 성장을 멈추면 죽음을 향해 가잖아요. 성장은 국가에 필요조건입니다. 충분조건은 아니지만요."

―무죄판결 후 노 대통령을 만났습니까.

"몇 번 보자고 연락이 왔지만 제가 안 갔습니다. 마치 대통령처럼 연루된 거같이 국민이 보게 되고…. 제가 그분께 그렇게 누(累)가 됐는데 면목이 없었습니다. 뭔가 정리된 후에 뵈려 했는데 떠나셨어요."

―책을 쓴 게 대통령 때문입니까.

"그분이 경제를 망쳤다는 평가가 있는데 저라도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따뜻한'이라는 제목은 직접 붙인 겁니까.

"그건 출판사 쪽에서. 제가 생각한 제목은 '노무현의 무한도전'이었습니다."

―지금 MCS라는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죠?

"미들클래스소사이어티는 사회적 협동조합입니다. 중산층을 위한 행동강령도 만들고 돈 되는 사업도 해보려고요. 일종의 자서전 비슷한 책도 구상 중입니다. 죽음에 대하여, 친구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같은 항목들로."

―먹고살기가 힘듭니까.

"공무원연금도 있고 자그마한 회사 두 곳에 고문으로도 가끔 나가서 먹고살 순 있어요."

―'사랑에 대하여'라…, 이렇게 명쾌한 분이 왜 여자에 빠졌습니까.

"그 이야긴 안 했으면 좋겠는데… 아내가 절대 언론 인터뷰에서 그 부분은 말하지 말라고 했고."

―묻지 않으면 독자들이 절 바보 같은 기자라고 할 겁니다.

"평생의 신조랄까, '반성은 하되 후회는 안 한다'는 겁니다. 반성을 안 한다는 게 아니라 지금 와서 그때 이야길 해서 무슨 소용 있겠어요."

―지금도 그 여자 만납니까.

"무슨, 그 사건 이후 본 적이 없습니다. 재판받을 때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책을 냈던데 한 권 보냈나요.

"보내겠습니까?"

―여자의 책을 보니 아직도 애정이 대단하던데.

"읽어보지도 않았어요. 내가 아는 범위에서 썼다면 읽어볼 필요 없는 거고, 틀리게 썼다면 제가 항의를 하겠습니까?"

―여자의 어머니가 유명 정치인 부인이 혼전(婚前)에 낳은 딸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변 실장이 그걸 알고 접근했다는 말도 있고요.

"말도 안 되는 억측입니다."

―아내에게 지금도 잘못을 빌고 있습니까?

"제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오빠 채동욱(전 검찰총장) 혼외 자식 맞아 안 맞아?'라고요. 전 '그걸 나한테 물어볼 필요가 뭐 있느냐'고 했는데 채동욱씨가 왜 그렇게 부인했겠습니까. 부인을 위해 부인하지 않았겠어요? 전 김구 선생 이야길 하고 싶어요."

―김구?

"선생이 21세 때 일본군 중위를 살해한 후 부모에게 고백했어요. 부친은 도망을 권했는데 선생이 '나는 떳떳한 일을 했다'고 버텼습니다. 부친이 이랬대요. '멸문(滅門)되지 뭐.' 그렇지만 채동욱은 김구 선생이 아니잖아요. 그 사람도 가정이 있는데 '내 애가 맞는데 뭐가 더 이상 잘못됐느냐'고 말할 수 있었겠어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김구랑 채동욱이 어떻게 비교됩니까?

"비교가 잘못됐나? 채동욱은 김구 선생처럼 위대한 사람이 아니고 평범한 인간인데 왜 세상은 평범한 사람에게 위대성을 요구하느냐는 거죠."

―부인이 그 사건 후 가만히 놔두던가요.

"사건 터지자마자 저뿐 아니라 그 사람도 검찰 불려다녔고 그 후엔 제가 구치소 갔고. 구치소 나온 후엔 몸이 아팠으니 혼낼 겨를이 있었겠어요. 미국에 부부 여행을 다녀오긴 했어요."

―구치소에선 반성했습니까.

"구치소에선 맥반석계란 사먹은 기억밖엔 없는데요. 영양 보충하려고."

―사주(四柱) 본 적 있습니까?

"자주 봤죠. 고시 1차 보고 네 명이 함께 갔는데 나만 붙을 거래요. 진짜 그렇게 됐죠. 'TV에 자주 등장할 것'이란 말도 들었는데 난 그게 유명해져서 TV에 나올 거란 소리로만 알았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죠."
문갑식 |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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