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1.08 10:08 | 수정 : 2014.01.08 14:22

아베와 소고기

2006년 5월,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지방선거 당시 커터칼 테러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일본 관방장관이었던 아베 신조 현 일본 총리가 명품 소고기, 고베 와규(和牛)를 위문 선물로 보냈다.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였을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유정복 의원은 “병원에 입원했던 박 대통령에게 국내외 많은 인사들이 편지를 보냈지만 아베 총리는 소고기를 보내 무척 인상적이어서 뚜렷이 기억난다”고 했다.

뜬금없이 웬 소고기일까 싶었는데 함께 보낸 편지에 설명이 있었다. 하루 속히 회복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일본 관습에 따라 편지와 선물을 전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낯선 문화지만 일본에서는 환자를 문병할 때 소고기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 왜 환자에게 소고기로 문병하는 관습이 생겼을까?
2006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테러를 당했을 때 아베 신조 총리는 고베 와규를 선물로 보냈다. 사진은 2013년 10월 7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시아ㆍ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박근혜(왼쪽)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2006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테러를 당했을 때 아베 신조 총리는 고베 와규를 선물로 보냈다. 사진은 2013년 10월 7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시아ㆍ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박근혜(왼쪽)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아베, 2006년 커터칼 테러 당하고 병원 입원한 박근혜에 소고기 보내

일본에서는 소고기가 음식이 아니라 약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환자가 아니면 소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 이는 일본의 음식문화와 관련이 있다.

일본인들은 약 1200년 동안 고기를 먹지 못했다. 서기 675년 덴무 일왕이 살생금지령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소, 말, 개, 원숭이, 닭을 죽이면 안 된다. 그 밖의 동물은 금지하지 않는다. 위반하는 자는 처벌 한다.” 최초의 육식금지령이었다.

표면적인 배경은 살생을 금하는 불교의 영향 때문이었다. 하지만 종교뿐만 아니라 경제적, 군사적 목적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소는 농업에 필요해서, 말과 개는 군사적 목적, 닭과 원숭이는 민속 종교의 영향이 컸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살생금지령이 선포된 것을 보면 명령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몰래 가축을 잡아먹다 먼 섬으로 귀양을 갔다는 기록도 있다.
소고기 전골을 장려한 일본의 개화 소설 아구라나베(安愚樂鍋)의 삽화
소고기 전골을 장려한 일본의 개화 소설 아구라나베(安愚樂鍋)의 삽화

육식금지가 해제된 것은 19세기 말, 메이지 유신 무렵이다. 이번에는 메이지 일왕이 솔선수범해 고기를 먹으면서 육식을 장려했다. 키가 작아 왜(倭)로 불리던 일본인의 체형을 고기를 먹는 서양인처럼 키우기 위해서였다.

일본에서는 소고기가 ‘음식’ 보다 ‘약’이었다

통치자의 필요에 따라 “소고기를 먹어라, 먹지 말아라” 간섭한 일본의 육식금지 역사도 독특하지만 소고기가 이렇게 환자의 위문품이 된 배경도 특별하다. 아픈 사람한테는 소고기 식용을 허락했기 때문이다. 음식으로 소고기를 먹을 수는 없었지만 약으로는 ‘복용’할 수 있었다.

‘나라에 정책이 있으면 백성에게는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라는 중국 속담처럼 임진왜란 이후인 일본의 에도시대에 소고기가 약으로 유행한다. 이름 하여 우육환(牛肉丸)이다. 소고기를 뭉쳐 약으로 만든 것이지만 본질적으로 우리의 소고기 완자, 서양의 미트볼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말린 소고기로 만든 간우환(刊牛丸)이라는 약도 있는데 육포에 다름 아니다.
구육환 광고
구육환 광고

1867년 도쿄에 최초로 문을 연 소고기 전골집의 간판도 보양식품 소고기라고 광고했다니 역사적으로 일본인에게 소고기는 약으로 인식됐다.

일본의 육식금지 역사를 알고 보니 일본인에게 소고기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예전 아베 총리가 왜 소고기를 위문품으로 보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우리에게는 낯선 소고기 위문품이 뜬금없다는 느낌은 여전히 지울 수 없다. 위문품마저도 자기중심적이었던 아베 총리의 행태가 요즘 일본의 행보와도 많이 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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