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1.07 06:00

확인없이 단정하지 않는 태도, 기자 뿐 아니라 블로거에게도 필요
사실과 추측, 전언(傳言), 주장을 글 속에서 명백히 구별해 표현해야

저는 사건기자 시절, 어느 신문이 어처구니 없는 대형 오보를 내는 과정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던 스포츠 스타가 마약 복용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고 잘못 보도한 것입니다. 모 신문 사회부 기자가 야근 때 경찰서를 돌다가 취재하고 썼습니다. 저도 그 날 야근이었으니 하마터면 큰 사고를 함께 낼 뻔했습니다.

오보 사태가 벌어진 건 경찰서에 그 선수로 의심되는 사람이 마약 사범으로 붙잡혀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명 금메달리스트와 이름의 한자, 나이가 똑같았고 얼굴 모습도 꽤 닮았습니다. 사실이라면 큰 뉴스이기에 저도 그에게 직접 물어 봤습니다. “올림픽 금메달 딴 ○○○선수 맞습니까?” 그런데 그는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어휴…말 시키지 마세요…”라며 괴롭다는 표정만 지었습니다. 이 사람을 그 유명 선수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모 신문의 기자는 마(魔)의 함정에 빠졌습니다. 동명이인인 엉뚱한 사람을 스포츠 스타로 단정하고 오보를 낸 것입니다.

이름과 나이가 같고 얼굴까지 비슷하다면 ‘혹시 그 선수가 아닌가?’ 추측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명예에 치명적 손상을 줄 수 있는 기사를 쓰려면 사실을 100% 확인해야 합니다. 추측만으로 쓸 수는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큰 관심이 있는 중대 사안에 관해 합리적 의심을 할 만한 정황이 드러날 경우 언론은 가끔 추측을 전하기도 합니다.그 경우에도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 추측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표현을 해야 합니다.

사실의 확인은 신문 기사 쓰기의 생명입니다. 사실과 추측을 명확히 구별하는 것도 기사를 쓸 때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는 원칙입니다. ‘유명 선수 마약 혐의’ 오보는 기자의 잘못된 추측이 부른 사고입니다. 경찰에 잡혀 온 사내가 ‘내가 그 메달리스트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명확히 부인하지 않았다는 것만 가지고 ‘그 선수 맞는 듯하다’고 추측한 것이 화근입니다.

기자를 오보의 수렁으로 빠뜨리는 또 한가지 함정이 있습니다. 취재원이 실수로 전해 주는 부정확한 정보나 고의적인 거짓말입니다. 몇해 전 이란의 유명 여배우에 관해 국내의 어느 매체가 이런 기사를 썼습니다.

<프랑스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란의 영화배우 골쉬프테 파라하니가 프랑스 패션 주간지 마담 피가로에 상반신 누드 촬영을 한 뒤 이란 정부로부터 입국금지 통보를 받았다. 파라하니는 18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잡지에 상반신 누드사진이 실린 뒤 이란 정부 관리로부터 입국을 거부당하고예술활동을 하려면 다른 곳에서 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얼마 뒤 이 보도 내용은 사실과 거리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됐습니다. 사실 이 기사 안에 허점이 보입니다. 첫 문장, 즉 리드에서는 여배우가 ‘입국 금지 통보를 받았다’고 사실인 것처럼 쓰고 있으나 그 근거가 영국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여배우 본인이 한 말 뿐입니다.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미디어에 과장 혹은 거짓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민감한 사실은 언제나 확인을 해야 합니다. 그 확인도 없는데 기사 첫머리에 ‘입국 금지 통보를 받았다’고 단정적으로 쓴 것은 부적절한 것입니다. <여배우 파라하니가 “이란 정부로부터 입국금지를 당했다”고 주장했다.>고 쓰면 좀더 정확한 기사가 됩니다. 이런 식의 기사 표현은 남의 말을 전한다는 점에서 보면 ‘전언(傳言)’의 형태입니다. 또한 사실과 구별되는 ‘주장(主張)’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집 SUV 차량이 아이들을 짐칸에 태웠다'는 인터넷 글과 사진을 상당수 매체들이 보도했다가 사실과 거리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 정정보도를 냈다. 사실과 추측의 엄정한 분별이 얼마자 중요한지 생각하게 한 사건이었다.
'어린이집 SUV 차량이 아이들을 짐칸에 태웠다'는 인터넷 글과 사진을 상당수 매체들이 보도했다가 사실과 거리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 정정보도를 냈다. 사실과 추측의 엄정한 분별이 얼마자 중요한지 생각하게 한 사건이었다.
사실을 엄격히 확인하고 글을 쓰는 태도가 기자에게만 요구되는 것은 아닙니다. 블로거도 남의 명예에 손상을 줄 수 있는 내용의 글을 올릴 땐 신문 사회면 기사를 쓸 때처럼 엄정한 태도로 사실을 확인해야 합니다. 특정 식당의 불친절을 지적하는 등 소비자 입장에서 어떤 업소를 비판하는 글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죠.

실제로 정확하지 않은 사실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낭패를 본 네티즌들이 있습니다. 허위사실을 악의적으로 올리는 경우보다는 불확실한 추측을 사실처럼 잘못 쓴 경우가 많습니다. 공익을 위해 누구나 비판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발전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사회면 기사 만큼의 사실 확인이 요구되는 비판의 글을 기자 만큼 훈련받지 않은 네티즌이 쓰다 보니 문제가 생깁니다.

몇 달전 어느 어린이집이 어린이들을 SUV차량 트렁크에서 내리는 듯한 고발 사진과 글이 인터넷에 올라와 큰 놀라움을 안긴 적이 있습니다. 사진을 올린 사람은 "선생님은 좌석에 탔고 아이들은 차량 짐칸에 7, 8명 정도가 2열로 앉아 놀러왔다.”고 썼습니다. 이 내용이 일간 신문에까지 보도되자 많은 어머니들이 “이럴수가…”라며 분노했습니다. “이런 어린이집은 문닫게 해야 한다”는 비난도 쏟아졌죠.

그러나 이 사진과 글은 사실과 거리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해당 어린이집 원장은 “어린이들을 태운 차량은 국산차 중 유일하게 차량 후방에 어린이 전용 좌석과 안전 벨트가 장착돼 있어 오히려 어린이들을 태우고 가는데 안전한 차량”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7,8명을 짐칸에 태운 게 아니라 “차량 뒤 칸에 4명의 어린이가 안전벨트를 하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원장의 해명에도 비판이 완전히 수그러들지 않자 사진을 처음 올려 고발했던 사람도 해당 어린이집을 방문해 확인해 보고는 “트렁크에 7명 정도의 아이가 두 줄로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아니었다”며 잘못을 인정했하고 이를 알렸습니다. 그는 “확실하지 않은 상황인데도 제 판단대로 글과 사진을 올린 것은 섣부른 행동”이라고 반성하며 “해당어린이집 원장님과 학부모님들께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또한 이 네티즌의 글과 사진을 보도한 10여개 매체들이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된 끝에, 중재 결정을 받아들여 “7~8명이 짐칸에 탑승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정정보도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잘못된 보도 행태에 대한 반성을 담은 글을 쓴 매체도 있었습니다.

‘어린이집 차량 짐칸 탑승 소동’은 정확한 사실 전달이 비판 글의 생명이며 사실과 추측을 구별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 줍니다. 애초에 인터넷에 올린 사람이 “차량 짐칸에 7.8명 정도가 2열로 앉아 있었다”는 식으로 단정적으로 쓰는 대신 “SUV 차량 뒤에서 어린이들 여러 명이 내렸는데 혹시 짐칸에 태운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정도의 글이었어도 파문이 그처럼 크지는 않았을 듯합니다.

신문 기사처럼 어떤 일을 알리는 글에서는 전하는 내용이 ’사실‘인지 ’추측‘인지 ’주장‘인지를 정확하고 정교하게 표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단계들을 잘 구분하려면 평소에 신문을 읽을 때도 기사 첫 문장의 서술어가 어떤 식으로 끝나는지 주의해서 읽어 보세요. ’…인 것으로 알려졌다’ ‘…라고 주장했다’ ‘…로 추정된다’ 등의 표현으로 끝나는 문장은 100% 사실이라고 확신하기 어려운 내용이라고 독자에게 분명히 알려 주는 표현들입니다.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