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1.02 22:35 | 수정 : 2014.01.03 09:06

지난주에는 ‘탈북자 위장 간첩 1호’인 원정화 씨가 7월 만기 출소한 뒤 저와 이봉규 교수가 함께 진행하는 TV조선 ‘정치 옥타곤’에 출연했습니다. 원 씨는 북한 보위부 지시를 받고 입국한 뒤 군 장교 등과 접촉해 군사 기밀과 북한 이탈 주민의 정보를 북한에 넘긴 혐의로 지난 2008년 5년 형을 선고받아 복역했습니다. 검거 당시 35세였던 그녀는 매력적인 외모와 남성 편력으로 ‘한국판 마타하리’, ‘미녀 스파이’로 불리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저는 실물을 보기에 앞서 미디어를 통해 그녀의 얼굴을 봤는데, 솔직히 ‘미녀 스파이’라는 말에는 선뜻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스튜디오에서 면대면으로 접하자 원씨의 매력이 뭔지 알 것 같더군요. 사람 자체는 에너지가 넘치는 ‘여걸형’인데, 체구는 160cm가 될까 말까 아담하면서 애교가 많은 여성이었습니다.
만기 출소한 남파간첩 원정화.
만기 출소한 남파간첩 원정화.

의외의 매력에 한 번 놀란 저는 잠시 뒤 2차 충격을 받게 됐습니다. 간첩이었던 그녀가 우리나라를 심히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원씨는 대한민국 군인을 접할 때마다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이 군인인지 일반인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무질서했다”고 밝혔습니다. 원씨는 지난 2001년 대한민국에 탈북자로 위장 입국한 뒤 2007년까지 군부대에서 안보 강연을 했는데, 군인들을 앞에 두고 “한국 전쟁은 북침이다. 북한 핵무기는 자위권의 발현이다”같은 종북 발언을 쏟아냈다고 합니다.

군인 세뇌를 목적으로한 이런 강연은 무려 52차례나 이어졌습니다. 두세번 제지를 당할 때도 있었지만, 별 무리 없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남한의 군인들이 북한 군인들과 너무나 비교됐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나마 대대장급 이상은 군율이 잡혔는데, 사병들은 그들의 말도 잘 듣지 않는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그녀가 유일하게 사랑했다는 황 대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황 대위는 그녀가 간첩이라는 것을 안 뒤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는데, 일주일 만에 기적적으로 깨어났고 6개월 이상 원씨와의 관계를 이어왔습니다. 황 대위는 우리군 최고 엘리트인 육사 출신이었습니다.

원정화 사건이 보도될 당시 북한이 탈북자로 위장한 여성 간첩을 남파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줬습니다. 그 후 5년이 흘렀습니다. 이제 만기 형을 다 살고 나와 더 이상 덧셈, 뺄셈해가며 거짓말할 필요가 없는 그녀가 던진 말은 더욱 충격적입니다. 덧셈, 뺄셈 없는 군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비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간첩 원정화. 그녀의 존재는 북한보다 군율이 무너진 우리 군이 더 위협적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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