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2.31 06:00

객관적 사실 전달 위한 보도 기사에 기자의 주장·느낌 함께 쓰지 않는 게 원칙
독자 가르치는 대신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방법, '보고문' 쓰기에 참고할 만

지금부터 80~90년 전 발행된 옛 신문들을 읽다 보면 웃음이 저절로 나오는 기사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1921년 7월 27일자 조선일보 사회면의 어느 기사는 “친구 찾아 보러 갔다가 시계를 훔친 나쁜 놈…‘ 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친구 집에서 시계를 훔친 절도 사건을 전하는 스트레이트 기사인데, ’나쁜 놈‘이라며 기자의 의견까지 밝히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앞선 시대의 신문들을 보면, 폭행 사건을 보도할 때도 ’포악한 △△△가 가련한 ○○○양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는 식의 기사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쓴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친구 물건을 훔쳤으면 나쁜 놈이고 남을 때린 자는 포악한 놈입니다.하지만 오늘의 잣대로 보면, 이렇게 쓴 신문 스트레이트 기사는 낙제점입니다.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는 데 치중하는 스트레이트 기사에서 기자의 판단이나 주장을 개입시키면 안 되는 것이 기사 작성 원칙입니다.

이런 원칙을 왜 세우게 됐을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사실(fact)만을 최대한 엄정하고 냉철하게 전달해야 하는 스트레이트 기사에서 주장이나 의견까지 섞어 쓰면 객관과 주관의 경계가 무너져 독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가 주장인지를 제대로 구분짓지 못하게 하니까요. 물론 기자도 주장을 할 수 있으나, 주장은 논설이나 칼럼 같은 별도의 형식에 담아 전하면 됩니다.

스트레이트 기사에서 주장이나 의견을 섞지 않는게 좋은 이유가 또 있습니다. 독자들에 대한 뉴스 미디어의 적절한 자세를 갖추기 위해서입니다.‘친구의 시계를 훔쳤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 만으로 독자들은 ‘나쁜 사람’이라는 판단을 합니다.굳이 신문이 스트레이트 기사에서까지 비난의 표현을 넣을 필요가 없습니다. 독자를 가르칠 게 아니라 독자 스스로 판단하고 느끼게 하는 것이 뉴스 매체 본연의 자세입니다.

사실 위주의 기사가 설득력도 더 클 수 있습니다. 사람에겐 남에게서 이래라 저래라 가르침 받는 것을 싫어하는 심리도 있습니다. 가르치려 드는 느낌을 주지 않고 객관적 사실만 나열한 기사가 독자들 마음을 움직입니다.

기사에서 주관적 의견을 함부로 표출하면 공정성을 잃을 위험도 있습니다. 양쪽이 다투는 내용을 보도할 때 특히 그렇습니다. 분쟁이란 종종 그 진실이 드러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야말로 ‘나쁜 놈’이라고 판단해 비판하는 표현으로 기사를 썼는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무고하게 비난받은 것으로 밝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위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객관적 사실에 치중하여 보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2008년 2월 10일 밤 국보 1호 숭례문이 방화로 불타 무너져 버린 사건을 보도한 조선일보 1면 머릿기사. '끔찍하고,어처구니 없고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기사는 물론 제목에서도 주관적 주장이나 느낌들을 배제하고 사실 전달에 치중하고 있다.
2008년 2월 10일 밤 국보 1호 숭례문이 방화로 불타 무너져 버린 사건을 보도한 조선일보 1면 머릿기사. '끔찍하고,어처구니 없고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기사는 물론 제목에서도 주관적 주장이나 느낌들을 배제하고 사실 전달에 치중하고 있다.
아직도 여러 보도 매체의 기사들 중에는 스트레이트 기사에 기자의 주관을 섞어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로 큰 사건을 보도할 때 그렇습니다. 지난 2008년 2월 10일 밤 국보 1호 숭례문이 방화로 불타 무너지는 사고가 터졌을 때의 기사들을 봅시다. 먼저 조선일보 기사입니다.

<10일 오후 8시 48분쯤 국보 1호인 숭례문(남대문ㆍ서울 중구 남대문로4가)에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 4시간 만에 숭례문 2층 누각이 완전 붕괴했다. 불이 난 직후 소방차 39대와 소방관 88명이 출동했으나, 소방 당국의 오판과 안이한 대응으로 화재 초기 불길을 제대로 잡지 못해 국보를 소실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다음은 어느 통신사가 인터넷에 띄운 기사입니다.

<10일 오후 8시 48분께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있는 숭례문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당국이 긴급 진화에 나섰지만 초기 대응 미숙으로 국보 1호를 전소시키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불이 나자 인근 소방서에서 소방차 28대와 소방인력 90여명이 긴급 출동해 초기 진화 작업을 벌여 연기만 계속되고 불길은 진화된 것으로 보였다. >

통신사 기사의 첫 문장은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며 기자가 직접 나서서 비판의 목청을 높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표현 없이 국보 1호가 방화로 불타는데 초기에 불길을 못 잡았다는 사실만 전달해도 독자들은 어처구니 없다고 생각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인식 아래 조선일보 기사는 사실 전달에 치중했습니다. 당국의 미숙한 대응에 대해서는 기자가 직접 비판하는 대신 ‘소방 당국의 오판과 안이한 대응 ~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며 비판론이 있다는 ‘사실’을 전하기만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 처럼, 기자가 먼저 결론을 내리고 “아 정말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여러분도 어처구니 없어 하세요”라며 주입식으로 독자를 가르치려는 글 보다는 설득의 효과가 더 높을 수 있습니다.

객관적 사실의 전달에 치중하는 스트레이트 기사 쓰기란 매우 신문적인 글 쓰기입니다. 기자가 아니더라도 글을 잘 쓰려는 분들은 이런 방식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어떤 현장을 탐방하게 한 뒤 리포트를 써 보라고 하면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본인의 주관과 객관적 사실을 뒤섞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일보 역사 자료를 정리한 사료관을 견학하고 글을 쓰게 했더니 많은 학생들이 이렇게 쓰더군요.

<사료관에는 필름 카메라 시대에 사용하던 30㎏의 사진 전송기도 있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몇 분만에 가능한 작업들이 당시에는 그처럼 힘들게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런 자료들을 보여주는 사료관은 소중한 역사 체험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전달과 소감이 섞여 있습니다. ‘보고문 + 감상문’의 어정쩡한 글이 된 것입니다. 학생들이 ‘탐방하고 글 쓰기’ 같은 학교 숙제를 하면서 생긴 습관 때문 아닌가 생각합니다. 박물관에 가 보고 글을 써 오라고 하면 ‘○○도 봤고 △△도 봤다. 참 재미있었다’라는 식으로 많이 쓰지만 최선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자기소개서 든 학교에 제출할 보고서든, 사실 전달이 중요한 글을 쓸 때 주장이나 의견을 뒤섞지 말고 사실 위주로 써 보십시오. 훨씬 더 깔끔하고 냉철한 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령 ‘초등학교 2학년의 어린 나이에 학생미술대회 금상을 받는 큰 성취를 이뤘습니다’라고 쓰는 것과 ‘초등학교 2학년때 서울학생미술실기대회에서 금상을 받았습니다.’라고 쓴 것중 어떤 쪽에 좋은 느낌을 갖게 되는지 한 번 판단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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