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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 신상 털려 범죄표적 될라… 문 잠그는 엄마 블로거들

입력 : 2013.12.28 07:40

악성 댓글부터 신변 위험까지

집 위치·가족 동향 등 노출, 사기꾼 접근해 절도사건도…

"블로그 정보 통해 아기 납치" 괴담까지 떠돌아 불안 증폭



부모들, 신원 확인된 사람만 정보 공유하게 블로그 제한



해외도 '아기 감추는 부모' 늘어

"아기의 벌거벗은 모습이나 똥·오줌 사진 악용 가능성"

언론·전문가들 잇단 경고, 자녀가 커서 상처받을 수도

'사생활 노출' 육아 블로그
'아이 얼굴 나오고, 사생활이 나오는 부분들은 전부 이웃 공개(서로 이웃으로 등록해야만 글을 볼 수 있는 것)로 바꿀 예정이에요. 본인이 재밌게 블로그 보셨으면 거기서 끝내주세요. 말 옮기지 말아주세요.'

1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구독하는 육아 블로그 운영자 김모(27)씨는 지난달 '신원이 확인된 사람에게만 개인적인 정보를 공유하겠다'는 글을 썼다. 블로거 김씨는 "사실 육아 블로그는 이제 그만둬야 하나 싶다"고 했다. 그는 최근 시어머니에게 "내 친구가 우리 집이 어떻게 사는지, 손녀가 뭘 입고 어딜 갔는지 블로그에서 다 봤다더라. 어린 손녀의 사생활이 너무 많이 노출되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모임에 나가 손녀 사진을 자랑했는데 친구가 "블로그에서 봤다"며 알아본 것이다. 김씨는 "시아버지의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도 걱정되고 사람들이 시어머니에게 '며느리가 돈 받고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 같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하더라"며 "'어디 문화센터에서 봤다' '동네에서 뛰어가는 걸 봤다'는 글도 자주 올라와 더는 아이 관련 정보가 보이지 않게 바꿔뒀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오상민씨도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비슷한 공지를 올렸다. '아빠로서 일기를 계속 남기겠지만, 공유는 하지 않습니다. 일단은 기분 나쁜 댓글들. 이상한 분들이 꽤 있습니다. 제 아내와 아이를 모욕하는 것은 정말….' 의사인 오씨가 아이의 육아일기를 공유하던 이 블로그는 1년여 만에 3600여명이 이웃으로 등록할 만큼 소문이 났다. 악성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그는 공지 글에서 '아이의 정보가 노출돼 위험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찍어 올리는 부모들이 넘쳐나던 건 옛말. 인터넷 블로그와 SNS에서 아이를 '감추는 부모'가 늘어나고 있다. 아이의 육아 과정을 남들에게 공개하면서 '공유하던 부모'들이 각종 소문과 신변 위험에서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감추는 부모'로 변신하기 시작한 것이다. 육아 블로그를 운영하던 부모들이 화장품이나 패션 블로거로 전향(轉向)하기도 한다. 이들은 왜 자신의 아이들을 감추기 시작한 걸까?

◇'셰어런츠'에서 '하이드런츠'로

올해 5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아이와 관련된 것을 무조건 찍어 올리는 부모들을 '셰어런츠'(Share+Parents·아기를 공유하는 부모)라고 부르며 부모들의 행위가 아이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디언은 "엄마가 올린 오줌 싼 이불 사진이 아이가 어른이 되어 수상 자리에 오른 뒤에도 인터넷을 떠돌면 어떻게 할 거냐"고 꼬집었다.

인터넷 보안 업체 AVG는 "부모가 올린 사진이 소셜 미디어에 올라와 있는 영국 아이들은 전체 아이들의 3분의 1"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부모들이 아이에 대한 흔적을 인터넷에 처음 남기는 시점이 '아이의 첫니도 나기 전'"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심리학자 애릭 시그만은 "소셜미디어가 사생활을 침해하는 요즘 추세에서 (아이 정보를 공유하는 건) 상당히 위험하다. 아이들의 인격을 형성하는 데도 큰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인터넷에는 '일본에서 블로그에서 얻은 정보를 이용해 아이를 납치하려고 한 사건이 있었다' '중국에서도 아이가 유괴됐다'는 괴담이 떠돈다. 정말 일본이나 중국에서 이런 범행이 일어났는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부모들은 블로그에 올린 '흔적'이 범죄에 이용될 수 있다는 생각에 '셰어런츠'를 떠나 '하이드런츠'(Hide+Parents·아이의 사생활에 대한 내용을 감추는 부모)를 자처한다.

실제로 육아 블로그의 아이 사진 등으로 파악한 정보로 블로거에게 접근해 물건을 훔쳐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17일 한 육아 부문 블로거는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아이 엄마에게서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고향과 나이가 같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사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성은 '남편의 나이도 똑같고 자녀의 연령대도 비슷하다'고 말했고, 두 사람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이 여성은 아이 엄마가 아닐 뿐 아니라 전과 7범의 전문 사기꾼. 며칠 뒤 이 여성을 만나러 간 블로거는 차 안에 두었던 가방과 카메라, 선글라스 등을 도둑맞았다. 그는 "내 공간이라 생각했던 블로그가 누군가에게는 의도적으로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게 무서웠다"며 "이제 개인적인 글을 이웃 공개로 돌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사생활 노출로 직접적인 피해를 보자 '하이드런츠'를 선언한 것이다.

◇아이의 모든 것이 공개되는 '트루먼 쇼'

지난해 한 포털 사이트가 선정한 육아 부문 파워 블로거는 총 11명으로 이들의 블로그를 정기적으로 즐겨 찾는 '이웃'은 평균 1만7500여명이다. 한 육아 파워 블로거는 5만8500여명이 '이웃'으로 등록돼 있다. 블로그를 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악성 댓글과 이상한 소문이 퍼질 확률도 높다.

육아 블로그를 운영하는 김씨는 "엄마의 육아 블로그가 아이에겐 영화 '트루먼 쇼'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영화 '트루먼 쇼'는 하루 24시간 일거수일투족이 생방송으로 방영(放映)되지만 이를 몰랐던 주인공 트루먼이 자신의 삶 모두가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벌이는 탈출기를 그린 영화. 부모가 아이의 삶을 인터넷에 '방영'하는 것이 아이에게는 '탈출해야 하는 삶'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하루 200~300명이 블로그를 찾을 땐 문제가 없었는데 방문자 1만명이 넘어가자 밖에서 아이 이름만 불러도 사람들이 알아보더라"며 "블로그를 통해 내 생활 반경과 아이의 신상 정보가 공개되고 있었고, 언제 어디서든 날 찾을 수 있는 건 아이에게도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오상민씨도 공지 글에서 '아직은 아이와 아내에게 못생겼다는 디스(헐뜯는 것)밖에 없었지만, 앞으로 더 어떤 기분 나쁜 말을 들어야 할지 알 수 없겠죠?'라고 했다.

미국의 온라인 잡지 '맘닷미'는 '온라인에 올리지 말아야 하는 아기에 대한 정보 9가지'를 소개하며 '부모들이 신중할 것'을 강조했다. 내용은 '아기의 똥, 오줌 사진은 흑심을 품은 괴한들의 손에 들어갈 수 있으니 올리지 마라' '발가벗은 아이의 사진도 위험하다' '가까이서 찍은 아이의 얼굴 사진도 상업적으로 이용될 수 있으니 올리지 마라'는 등이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는 "가장 중요한 건 아이에게 접근할 수 있는 '위치 정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라며 "아이의 생일을 공개하거나 계좌번호가 보이는 아이 통장 사진 등을 올리는 건 전 세계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범죄에 필요한 정보를 찾는 요즘 시대에는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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