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2.27 03:51
불발로 끝난 선봉장

1940년에 독일은 놀라운 군사적 업적을 세계에 자랑했지만, 한편으로는 좌절도 겪었다. 곧이어 있었던 영국 점령에 실패하면서 최초로 팽창에 실패한 것인데, 직전에 있었던 프랑스 전역의 눈부신 승리 때문에 이는 그동안 많이 간과되어 왔던 부분이다. 흔히 공군만의 전쟁으로 알려진 영국 본토 항공전은 공식적으로 그해 7월 10일에 시작하여 10월 31일에 영국의 승리로 끝난 것으로 기록되었다.

당시 독일이 먼저 수건을 던졌기에 형식상 영국이 승리한 것이 맞지만 전투 내내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한 것은 사실 영국이었다. 독일은 마치 런던을 불바다로 만들 만큼 거세게 몰아 붙였지만 이를 위해 희생한 전투기, 폭격기 그리고 조종사들이 너무 많았다. 결국 이를 감당할 수 없어 공격을 포기한 것인데, 때리기만 하다가 패전한 제1차대전 당시 서부전선의 모습이 오버랩 될 만큼 상황이 비슷했다.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 공습 중인 독일군 Do-17 폭격기를 요격 중인 영국군 스핏화이어 전투기.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 공습 중인 독일군 Do-17 폭격기를 요격 중인 영국군 스핏화이어 전투기.
하지만 워낙 전투 수단이 제한을 받은 싸움이다보니 교전기간에 비해 실제로 규모가 컸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 싸움의 의의를 폄하할 수는 없다. 영국을 굴복시키지 못한 독일은 서쪽에 거대한 혹을 남겨둔 상태로 제2차대전을 치러야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독일의 뒤통수를 향해 비수를 겨누는 길목을 든든하게 확보한 연합국은 1944년에 유럽 대륙으로 진공할 수 있었다.

만일 당시 독일 공군의 공격이 성공해서 예정대로 ‘바다사자 작전’이 시작되었다면 롬멜의 제7기갑사단은 해협을 건너 영국 본토를 휘젓고 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의 끈질긴 저항과 해군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 독일은 작전을 취소하였고 결국 히틀러는 영국을 놔둔 상태로 궁극적 목표인 소련으로 눈을 돌렸다. 사실 독일이 서유럽을 평정하고 영국을 욕심내었던 가장 큰 이유도 소련이라는 적을 타도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

중장으로 승진한 롬멜은 만일 별다른 일이 없었다면 군단장이 되어 부대를 이끌고 바바로사 작전에 참여했을 것이다. 만일 그랬다면 과연 롬멜이 신화로 남게 되었을까하는 부분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능력을 고려할 때 뛰어난 지휘관으로서 명성을 얻었을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결코 독보적인 존재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독소전쟁은 규모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프랑스 전역 종결 직후의 롬멜. 만일 영국 본토 침공이 개시되었다면 제7기갑사단은 선봉 부대로 상륙할 가능성이 많았다.
프랑스 전역 종결 직후의 롬멜. 만일 영국 본토 침공이 개시되었다면 제7기갑사단은 선봉 부대로 상륙할 가능성이 많았다.
우연히 찾아온 기회

동부전선은 전선만 해도 남북으로 2,000킬로미터가 넘었고 양측에서 동원된 1,000만이 넘는 대군이 4년간 쉬지 않고 격렬히 충돌했던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전쟁이었다. 이 정도 크기의 싸움에서 일부 전술단위부대의 선전만으로 획기적인 전과를 올리기는 힘들다. 독일의 수많은 명장들이 활약했지만 전체 전선을 넘나들며 동시에 작전을 펼친 인물은 있지도 않았고 당시의 통신이나 이동 사정을 고려할 때 가능할 수도 없었다.

따라서 롬멜이 독소전쟁에서 활약했더라도 두각을 나타내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크다. 그가 보여주었던 독단적인 진격은 동부전선에서는 함부로 벌이기에 상당히 위험한 전술이었다. 만일 거대한 소련 땅에서 좌우를 신경 쓰지 않고 부대를 운용했다면 적진 한가운데 고립되어 녹아버리거나 전선에 구멍을 낼 가능성이 농후했다. 물론 유능한 장군이니까 때와 장소를 달리하여 작전을 펼쳤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처럼 행동할 수는 없었다.
독일의 많은 명장들이 참전한 독소전쟁은 제2차대전의 대부분을 차지한 거대 전장이었다, 하지만 롬멜은 이곳에서 활약하지 못하였다.
독일의 많은 명장들이 참전한 독소전쟁은 제2차대전의 대부분을 차지한 거대 전장이었다, 하지만 롬멜은 이곳에서 활약하지 못하였다.
더구나 전과와 별개로 군부 내에서 그의 독단적 행태를 비난하는 소리가 컸다. 야심가인 그는 이를 자신의 업적과 능력을 시기하는 것으로 치부하고 애써 신경 쓰지 않았지만 만일 동부전선에서 그런 행동을 반복한다면 곤란했다. 그렇다보니 소련 침공을 앞두고 그를 특별히 원하는 곳도 없었다. 물론 그를 시기하는 부류도 있었지만 사실 1940년 프랑스 전역만 놓고 본다면 롬멜은 그저 잘 싸운 사단장,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엄밀히 말해 그와 지휘계통에 있었던 이들 정도나 골치아파하였을 뿐이었다. 다만 그가 총통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점은 군부 내에서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롬멜도 굳이 이를 감추려 하지 않았다. 당시까지 그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총통에 대한 경외심이 실로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이런 일반적 평가는 그가 독일의 주전장인 동부전선에서 처음부터 배제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런데 만일 동부전선이었다면 그다지 부각되지 못하였을 수도 있던 롬멜이 결국 영웅이 될 운명이었는지 의외의 기회가 시나브로 찾아왔다. 20여 년 전 카포레토 전투에서 초급 장교였던 그의 명성을 드높이는데 일조하였던 이탈리아군이 이번에는 적이 아닌 아군의 입장에서 다시 기회를 준 것이다. 신화가 탄생할 장소는 롬멜이 평생 살아왔던 유럽과 전혀 다른 환경을 가진 낯선 북아프리카의 사막이었다.
아웃사이더인 롬멜에게 그의 명성을 떨칠 기회가 찾아왔는데 바로 북아프리카였다. 그런데 이곳은 독일에게 아웃사이더 전장이었다.
아웃사이더인 롬멜에게 그의 명성을 떨칠 기회가 찾아왔는데 바로 북아프리카였다. 그런데 이곳은 독일에게 아웃사이더 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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