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2.25 22:55 | 수정 : 2013.12.26 08:51

대검, 한때 사건 기록 모두 가져가 검토…"마음 고생도 했다"

실제로, 검찰 내부에서도 수사 결과를 은근히 걱정하는 분위기가 더러 감지되고 있었다. 대검은 서울지검 수사팀의 삼성그룹 사건 기록을 모두 달라고 해서는 대검 연구관 2명에게 검토를 시키기도 했다. 그들도 기록을 면밀히 검토한 끝에 “유죄가 맞다”고 결론을 내림으로써 서울지검의 결론을 뒷받침했다.

이 사실은 ‘한겨레신문’ 기사로 뒤늦게 일반에 알려지기도 했다. 내가 아직 대구고검장으로 검찰에 몸담고 있던 2005년 7월 어디서 취재했는지 몰라도 삼성 수사에 대한 검찰 내부의 얘기가 보도되었다. 그 당시는 언론보도 자체를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검찰을 떠난 후 지인으로부터 그 보도내용을 듣게 되었다. 기사의 제목 자체가 ‘검찰, 윗선 보신주의 뚫으면 철벽 로비 직면’으로 되어 있었고, 에버랜드 사건이 하나의 사례로 제시되어 있었다.

수사팀은 매우 힘겨운 과정을 통해 에버랜드 임원 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수사팀에서 우여곡절 끝에 기소 의견을 대검에 올리자 당시 검찰 수뇌부는 이례적으로 대검의 과장 1명을 팀장으로 임명해 기소가 타당한지를 재검토하도록 지시했다. 그러자 수사팀이 이 대검 과장에게 ‘우리가 1년여 동안 수사한 결론을 단 며칠 동안 검토해 뒤집는다면 우리 수사가 잘못됐다는 뜻이므로 사표를 내겠다.’고 압박했고, 결국 대검 검토 팀도 총장에게 수사팀과 같은 의견을 올렸다는 것이다. (<한겨레신문>, 2005년 7월 1일)
2008년 4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서울 한남동 삼성특검에 출석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08년 4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서울 한남동 삼성특검에 출석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서울 한남동 삼성특검팀 사무실에서 다섯시간의 조사를 받고 귀가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서울 한남동 삼성특검팀 사무실에서 다섯시간의 조사를 받고 귀가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기사의 내용이 전적으로 정확하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마음고생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내가 대전고검장으로 옮겨가자 아예 사건 담당부서가 특수부에서 금융조사부로 바뀌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기사는 여기에 대해서도 “검찰은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수사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통제하기 껄끄러운 부장검사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뒷말이 나돌았다”고까지 밝히고 있다.

그 후 내가 검찰을 떠나 변호사를 하고 있을 때인데 ‘한겨레신문’에서 위와 같은 취지의 기사를 또다시 크게 게재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 기사가 보도된 자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렇게 보도되자 대검의 전임 간부로 있던 분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나에게 “신문사에 얘기해서 해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것이 전화를 걸어온 용건이었다. 하지만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제는 관심도 없어진 사안에 대해 뭐라고 얘기할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의 편법증여 사건은 그 뒤에도 계속 논란을 빚은 끝에 2007년 12월의 대선을 앞두고 국회 논의 결과 특검으로 해결하기로 여야 간에 합의가 이뤄지게 된다. 이때의 특검에서는 에버랜드 전환사채만이 아니라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배정 사건과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선언으로 주장했던 비자금 로비의혹 등도 두루 포함되어 있었다.

문제의 편법증여 사건만을 놓고 본다면 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된 결과 1심과 2심에서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에서는 무죄로 일단락된 뒤였다. 전환사채기 발행된 과정이 형식적으로 주주배정 방식을 취했기 때문에 회사에는 손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게 무죄 선고의 취지였다. 어쨌거나, 조준웅 변호사가 특별검사로 임명되어 이건희 회장의 이태원동 개인 집무실인 승지원, 자택, 삼성그룹 본관의 집무실 등을 압수 수색하고 다시 혐의를 입증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했다고 한다.

2008년 4월 조준웅 삼성특별검사가 서울 한남동 사무실에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08년 4월 조준웅 삼성특별검사가 서울 한남동 사무실에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때도 나는 항상 수사검사의 편에 서 있었다. 수사검사가 부정한 목적을 가지고 수사를 했다면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다. 그러나 정예 수사팀을 꾸려 8개월간 수사한 끝에 내린 결론이 기소 의견이었고, 대검 검토단도 같은 기소 의견을 제시했다. 물론 우리 경제에 있어 삼성의 중요성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기소 결정이 내려진다면 국내적으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삼성에 어떠한 영향이 미칠 것인가는 누구나 짐작이 가능했다.

불법의 소지가 적게나마 도사리고 있으면 아무리 훌륭한 업적을 남겨도 빛이 바래기 마련이다. 이 광수 선생이나 최남선 선생 같은 애국지사들이 말년에 피치 못하게나마 친일을 한 행적이 드러나자 그들의 구국정신은 한순간에 퇴색되고 말았다.

우리는 어려운 결정일수록 피해가서는 안되고 더 깊이 연구하고 통찰해 해명하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나 역시 삼성 사건에 대하여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히고, 그 결과 수사검사 팀의 수사결과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것이다. 삼성 사건은 대법원의 무죄 확정 판결로 종결이 됨으로써 자칫 크게 자랄 종양(cancer)이 될 뻔한 여지가 있는 문제를 깨끗이 제거하게 되었고 결국은 전화위복이 된 것이 아닌가? 그 당시 기소를 하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끝없는 논쟁은 계속되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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