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2.20 03:40

자기 정체성 찾지 못한 청소년들....'나'는 없고 껍데기 '옷'에 집착
잘 살고 있는 사람을 따돌려 '억울한 루저'로 만드는 사회풍조 탓도

요즘 ‘캐몽’ 이라는 단어가 인기다. ‘캐몽’은 ‘캐나다 구스(Canada goose)’와 ‘몽클레르(Moncler)’라는 초고가(超高價) 패딩 점퍼 브랜드 앞글자를 딴 신조어다. 몽클레르는 몇 해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손녀가 입어 ‘럭셔리’ 의 상징이 됐다. 캐나다구스 패딩은 한 벌이 100만원을 넘고 몽클레르는 무려 300만원 이상 호가하지만,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는 행사 당일 준비한 800여벌이 동나 없어서 못팔 정도다.
캐나다 구스 브랜드가 우리나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심지어 홈페이지에 한국어’ 메뉴까지 생겼다./캐나다 구스 홈페이지
캐나다 구스 브랜드가 우리나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심지어 홈페이지에 한국어’ 메뉴까지 생겼다./캐나다 구스 홈페이지

아동용으로 나온 몽클레르 패딩./몽클레르 홈페이지.
아동용으로 나온 몽클레르 패딩./몽클레르 홈페이지.
이렇게 너나 할것 없이 두 브랜드 옷에 집착하다보니 ‘캐몽’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긴건데, 캐몽 광풍(狂風)은 중·고등학생들 교실에도 찾아왔다. 중고생들의 초고가 패딩 열풍의 시작은 ‘노페’라고 불리는 노스페이스 브랜드의 패딩이다. 약 3년전쯤 중고생들 사이에서 몇십만원이나하는 ‘노페‘를 입어야 소위 ’잘나가는‘ 집단에 속하는 것처럼 인식되면서 대부분 학생들은 ‘교복’처럼 노페를 입었다. 부모들은 버거웠지만 아이들의 원성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지갑을 열었다. 그러다보니 ‘부모의 등골을 빼먹는다’는 뜻으로 노페는 ‘등골 브레이커’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노페 열풍이 더 고가인 ‘캐몽’으로까지 번지면서, 중고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깊은 한숨을 쉬고 있다. 한 달 생활비에 육박하는 옷값 때문에 부모는 등골 휘어 힘들고, 못 입는 아이는 박탈감에 우울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사람 힘들게 하는 ‘캐몽’ 열풍은 왜 생긴걸까?

청소년들이 캐몽에 열광하는 이유는 정체성(Identity)에 대한 갈망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보면 종종 이런 대사가 나온다. “그건 너다운게 아니잖아.” 주인공은 대답한다. “나다운게 뭔데?”,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우리는 다들 똑같이 하루 세끼 먹고, 학교를 졸업하면 결혼하고 부모가 되는 일반적인 삶을 의심없이 살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나는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한다. 이처럼 내가 누구인지 궁금해 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적인 화두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Erikson)은 ‘내가 누구인지’를 ‘정체성’(identity)이라고 이름지었다. 정체성을 확인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나를 알리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에릭슨이 주장한 바에 따르면 특히 청소년기에 가장 중요한 인생 미션(mission)이 ‘정체성’이다. 이것을 잘 달성해야 안정된 사람이 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탯줄을 끊는 순간 아이는 엄마와 분리되 독립된 개체가 되지만, 청소년때까지 내가 누군지 잘 모른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친구를 ‘나’로 착각하기 쉽다. ‘또래’에 집착한다는 얘기다. ‘친구 따라 강남간다’는 말처럼 친구가 하는 건 따라해야 안심이 된다. 그러다보니 친구따라 캐몽도 입고 싶어진다. 즉, 중·고등학생들이 캐몽에 열광하는건 단순히 비싼 옷을 입어서 자기가 만족하는 행위가 아니라, 내 정체성을 확인하는 필사적 행위이기도 하다.

특히 요즘 중고등학생들은 나에 대해 알 시간이 없다. 부모가 짜놓은 스케쥴을 따라 학원을 오가면서 공부 하기도 바쁘다. 그러다보니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모르고 주위에 쓸려가기 더 쉬워진다. 아이들은 그렇게라도 내 정체성을 확인하려고 하는 것이다. 내가 누군지 모르면 타인의 입장을 헤아려 이해하는 공감(sympathy)도 어렵다.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으니, 캐몽을 안 입으면 졸지에 이상하거나 모자란 아이가 된다. 왕따가 만연한 이유이기도 하다.

근거 없이 ‘실패자’ 만드는 사회 분위기가 청소년 ‘물신주의’ 불러

‘캐몽’ 현상에는 등골브레이커로 부모들을 힘들게 하는 것 이외에도 더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다. 청소년들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정표가 ‘럭셔리’와 ‘보여지는 것’으로 획일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경제적으로 소외돼 갖지 못한 학생들은 ‘나는 별볼일 없는 아이’ 라고 느껴 상처를 받는다.

물론 이런 현상은 청소년들만의 일은 아니다. 짜여진 하루와 거대한 자본속에 사는 현대인은 자기가 누군지 모르고 뭘 해야 진짜 행복한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보니 무작정 남따라 물건을 사는 '소비 동조성'이 사회에 만연하다. 반면에 남이 가진 걸 내가 못가지면 받아들이지 못하고 절망한다. 한 개인의 정체성이 몇가지 기준으로만 평가되다보니 고급 브랜드 가방이나 외제차가 없으면, 혹은 키가 작거나 못생기면 실패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한다. 나는 행복하게 잘 살고있는데 괜히 '루저'가 되는 억울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속출해, 트라우마로 얼룩진 사회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타자를 자신의 존재 조건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내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타인을 직접 겪고 마음으로 이해할 때, 진정한 나의 정체성도 깨닫을 수 있다는 얘기다.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 어쩌면 중고생들의 캐몽 열풍 속에는 ‘내’가 ‘옷 한벌’로 평가되고 상처받는 서글픈 시대의 자화상이 숨어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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